미국 방송드라마 권위상인 에이미상 6개 부문을 석권한 넷플릭스 K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다시 화제다. 이정재는 456번을 달고 극중인물 성기훈으로 분하면서 상금탈환을 위해 치열한 게임의 전쟁을 벌인다. 공정과 상식은 부재하고 게임의 규칙은 반칙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치열한 사투는 현실의 모형이라 할수 있다. 자본의 경쟁은 냉혹하면서도 기형적인 현실 세계의 양극화된 현상을 담아내는 한국판 오징어 게임에 세계가 환호하면서 K드라마 콘텐츠는 중국한류의 만리장성을 넘어 세계로 진입했다.
이정재는 마지막 생존자로 상금을 쓸어 담았고, 현실에서는 세계가 인정하는 배우가 됐다. 연극배우 오영수 선생은 ‘우리는 깐부 잖아’를 유행시키며 한국배우의 노장연기를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한테 강렬하게 각인시켰는데,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일찌감치 받았어도 ‘인기는 바람 같은 것’ 이라며 연극에 대한 '깐부' 정신으로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방송, 영화로 얼굴이 알려지면 연극판을 떠나는후배 연극인들이 배울 점이다. 이런점에서 이번 수상 뒤풀이 현장에서 팔순의 나이에도 파격적인 ‘꺽기 춤’을 추며 세계와 통하는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선생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오징어 게임 성공에도 평생 고된 연극무대를 지켜온 선생은 쏟아지는 광고 제의도 고사하면서 화제가 됐었다. “광고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게 다 욕심이에요. 공익성 있는 광고에 출연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라는 모 일간지 인터뷰 글에 네티즌들은 “역시, 깐부 할아버지 대단하다”, “ 게임 할 때 할아버지 모습은 진짜 연기 그 이상 실제 같았어요. 훌륭하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두 배우는 드라마 한 편으로 달라진 우연한 성공이 아니었다. 이정재는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가 된 1995년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이 연기한 윤혜린의 보디가드 역할을 맡으면서 스타가 됐다. 그러나 배우의 감각으로 연기 잘하는 이미지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로 성공한 연기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이정재는 연기 감각을 살리고 배우의 세포로 전환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무섭게 변신을 시도했다. 영화 신세계, 관상, 암살을 통해서 달라진 연기의 감각을 보여주었고, 영화 헌트에서는 제작, 감독, 주연까지 맡으며 500만을 근접하고 있다. 운이 좋은 배우는 연기의 변신으로 마침내 비영어권 배우로는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목에 걸며 세계가 인정하는 배우가 되었다. 이정재는 오징어게임의 극중인물처럼 현실의 게임에서도 수백억의 게런티를 받을 수 있는 생존자가 되는것 같다.
1966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한 오영수 선생은 ‘낮 공원 산책’(전옥주작,1968)으로 데뷔한 후 극단 성좌와 극단 여인을 거쳐 명동국립극장(1996)에서 김정옥, 이병복 선생이 창단한 자유 극단에서 1970년부터 활동을 해왔다.1987년부터 국립극단으로 옮겨 23년 동안 국립 배우로 무대에 섰다. 당시 오영수 선생의 출연한 수많은 국립극단 작품 가운데 ‘피고지고’(이만희작, 1993)에서 배우 이문수, 김재건, 손봉숙과 함께 등장인물 ‘국전’으로 분할 때가 선명하다. 대사는 고·저의 리듬이 강세를 이루며 형성되는 독특한 화술과 희·비극적 표정을 넘나들며 오영수 선생의 연기표현 방식이 효과적으로 살아난 작품이었다. 이후로도 민간극단에서 공연되는 다양한 연극작품에 출연하면서 57년 동안 무대를 지켜오고 있다. 오영수 선생도 60대 때 장민호 선생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오영수, 아직 멀었어. 네 연기 가짜야”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배우로 자만하지 말고 평생 연극배우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최고의 스승이자 배우로 장민호 선생님을 꼽았다. 오영수 선생의(오일남) 대사로 유행어가 되어버린 ‘깐부의 소환’이다. 대사를 환기해 보자.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 사이에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연극은 유독 동료애가 강하다. 연극은 주어진 최소의 제작비용으로 연극인들이 모여 최대의 효과를 내며 연극을 지켜왔다. 연극의 향기에 매료되어 무대를 향한 내면의 깐부 정신과 연극인들의 특수한 깐부정신으로 뭉쳐서 말이다. 저예산 연극 제작으로 배우들은 합리적인 출연료도 못 챙길 때도 많았고 작가료도 깐부정신으로 답례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단원들은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버티고 무대를 지켜왔다. 그나마 요즘은 지원방식이 다양화되어서 지원예산에 따라 프로젝트별로 연극을 하게 되면서 연극인들의‘깐부정신’은 제작비용을 이해하는 선에서 동료애도 유지되고 있다.
한때, 대장동 사태로 4000억 그 이상의 수익률로 50억 클럽을 만들고, 막대한 돈 잔치를 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456억원 상금이 걸린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도 저예산 깐부 정신으로 연극을 해온 연극인들은 가슴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영수 선생이 등장인물로서의 대사가 아니라 현실의 언어로 “88세 미수(米壽)까지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라는 말과 연극무대를 향한 깐부 정신이 그나마 연극을 하며 버티게 해주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로 향할 때 여야 정치권과 대통령실이 방송문화예술계 현장의 소리들을 정책으로 담아주길 바란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