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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66회> 죽은 아이와 죽지 않은 아이
이걸 꼭 가지고 있다가 내 딸에게 전해 줘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30 09:50:37
엄마가 죽고 난 뒤에 마트료시카 인형을 소포로 받으셨는데 그게 없어졌다는 말씀이죠?”
 
정숙이 끄덕였다. 소선이 죽기 며칠 전 자신에게 전해 달라고 보낸 인형이라 생각하니 선우는 매우 아쉬웠다.
 
아드님이 가지고 나간 건 아니겠죠?”
 
진욱의 말에 정숙이 펄쩍 뛰었다.
 
그건 내가 장롱 안에다 뒀거든요. 여기 안에. . 그때 쪽지도 하나 들어있었던 거 같은데? 내 정신 좀 봐. 잠깐만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숙도 기억을 떠올리느라 우왕좌왕이었다.
 
정숙은 장롱과 화장대 서랍 속을 찾다가 나중에는 문갑을 다 열어보았지만 마트료시카 인형도 쪽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35년 전의 일이고 35년 전의 물건이었다. 안타깝지만 누굴 탓할 일이 아니었다.
 
편지, 여기 있네. 여기 있어. 이거예요!”
 
먼지가 풀썩 나는, 오래된 낡은 핸드백 안에서 누렇게 변한 편지 봉투가 하나 나왔다.
 
정숙아. 이건 아주 중요한 물건이야.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이걸 꼭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내 딸에게 전해 줘.’
 
 
 
 
선우는 후드득 눈물을 쏟았다. 편지의 충격적인 내용보다도 소선이 직접 쓴 글씨를 보니 간신히 곧추세우고 있던 가슴 한 귀퉁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살아있는 줄 몰랐어. 텔레비전에서 네 엄마가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면서 임신해 있던 아이도 잘못됐다고 그렇게 방송이 나왔었어.”
 
선우는 정숙이 교통사고로 소선이 죽었다고 말할 때도 정숙이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방송으로 정말 그런 뉴스가 나왔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짜 네 엄마 죽을 때 뱃속의 너도 같이 죽은 줄만 알았어. 그러고는 까마득히 인형은 잊어버렸던 건가 봐. 지금 쪽지를 읽어 보니 중요한 물건인 건 같은데 이걸 어쩌지?”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그다음 일은 제가 알아서 해야죠. 엄마 그림이랑 이 쪽지까지 이렇게 보관 잘해 주셔서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려요.”
 
선우는 미안해하는 정숙을 꼭 안아주고 그 집을 나섰다.
 
내가 죽었다고 기사가 났었다고?”
 
선우의 혼잣말에 속력을 내 달리던 진욱이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19881113, 서울 강남지역 교통사고 사건일지 좀 찾아봐 줘.”
 
그 날짜를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계세요?”
 
진욱이 웃으며 선우를 쳐다보았다.
 
한때 내가 목숨 걸고 사랑했던 여자가 태어난 날이야. 어떻게 그걸 잊냐.”
 
그날은 선우 생일이었다. 그리고 소선이 죽은 날이기도 했다. 다만 달라진 사실이 있다면 소선이 선우를 낳다가 죽은 게 아니라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놀랄 건 없어. 너는 죽지 않았고 살아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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