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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유·초·중등교육 재정 일부를 가져와 대학으로 옮기는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에 나서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교육세 3조2000억 원의 이관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학과 유·초·중등학교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대학 재정난 극복을 위해 고등교육 재정 확충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로 여유가 생긴 유·초·중등교육 예산을 대학 교육에 투자한다는 정부의 논리가 대학의 재정난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고등교육 재정 문제에 국가의 미래를 보는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초·중등 교육재정 일부 가져와 대학지원
15일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열고 고등·평생교육 재정 확충을 위해 11조2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을 발표했다.
교육부의 대학 경쟁력 강화 관련 사업 등 약 8조 원 규모의 기존 예산이 특별회계에 이관되고, 유·초·중등교육을 위해 쓰이던 지방재정교육교부금(교육교부금)에서 3조2000억 원을 가져오는 게 핵심 골자다. 특별회계가 신설되면 정부의 내년도 고등교육 예산 총액은 15조3000억 원까지 증액된다.
앞서 정부는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기술 발전 등 사회 변화에 발맞춰 고등교육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특별회계 신설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국가인재 양성을 위해 유·초·중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어느 하나 소홀할 게 없으나, 그간 교육재정 칸막이와 교육 분야 간 투자 불균형 등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실제로 2000년과 비교해보면 올해 학령인구(6~17세)는 34% 감소한 반면, 교육교부금은 4배나 증가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예산(0.7%)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6일 발표한 ‘국제지표를 통해 본 고등교육재정 투자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1만1287달러(한화 약 1500만 원)로 OECD 평균의 64.3%에 불과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15일 브리핑에서 특별회계 신설에 대해 “국가 또는 공공부문에서 대학에 대한 투자액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며 “투자를 늘려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대학에서 배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대학가 관계자는 “14년간의 등록금 동결‧인하로 등록금과 수강료 수입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매년 상승하는 소비자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통계에서 잡히는 수치보다 대학들이 더 힘든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고등교육예산 확대를 통해 대학의 자율적인 혁신과 지방대 육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먼저 대학 일반재정지원 규모를 연간 1조 원 수준에서 1조9000억 원까지 두 배가량 늘린다. 국립대는 대학 1곳당 88억 원에서 176억 원으로, 수도권 사립대는 49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지원 금액을 확충한다. 비수도권 사립대도 약 3배 가까이 파격적으로 늘려 130억 원을 지원한다. 아울러 정부는 일반재정지원 대상 대학을 선정할 때 쓰던 기본역량진단을 2025년부터는 대학별 자율 성과평가 후 성과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유·초·중등 예산 대학 지원… 교육감들 반발
하지만 이같이 책정된 특별회계의 소요 재원 대부분을 유·초·중등교육 재정에서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건 정부다. 당초 20.79%로 정해져 있는 내국세 비율을 조정해 대학과 평생교육에 투자하려 했지만 가용 재원이 여의치 않자 이 비율은 건드리지 않고 교육세만 이관하기로 입장을 돌연 바꾼 것이다.
최상대 기재부 제2차관은 “중앙정부에서 쓸 수 있는 가용 재원에 한계가 있어 교육 분야 재정지원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며 “초·중등 학생이 졸업해서 대학에 들어갔을 때 대학의 재정 운용이나 교육 여건이 많이 개선된다면 결국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초·중등 교육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 등 11개 교육단체 회원들은 올 7월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교부금은 유·초·중등 교육 지원으로 용처가 한정된 재원”이라고 못을 박은 뒤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에 따라 예산을 늘리지 않고 지출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도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공청회에서 “대학재정을 유·초·중등 재정에서 이관해 확보한다는 방법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고등교육 부분 교부금 신설 등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정부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움직임에 대해 “고등교육은 의무가 아닌 선택교육이라면서 대학이 당면한 재정 문제는 정부가 대학등록금 현실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가 정책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분석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서울 소재 대학교의 한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것은 초중등 교육뿐 아니라 고등교육도 마찬가지”라며 “경쟁력이 없는 대학까지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5~35세 청년층의 대학 진학률이 약 70%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며 “과도하게 높은 대학 진학율이 청년실업률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일자리의 70% 정도가 대학교육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교육위원회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초중고 예산 대학 전용의 부작용은 없을 것인지, 대학의 재정난을 타개할 대안은 없는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특별회계 신설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처리돼야 가능하다. 정부는 특별회계 신설을 위해 관련 법 제·개정안과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 통과 여부는 현재 미지수다.
정부 관계자는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는 관련 법률 개정안이 정기국회 회기 안에 통과해야 내년도에 신설될 수 있다”며 “정부는 국회 교육위원회와 관련 법안 예산안 관련 논의를 긴밀하게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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