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정치는 재미가 없다. 정치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관중(국민)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재미만 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결국 여와 야가 국민이라는 관중 앞에서 벌이는 게임인데 선거 때만 지나면 관중은 찬밥 신세가 된다. 비싼 요금을 내고 있는 관중 들은 언제까지 이런 재미없는 경기를 인내할 것인가.
최근의 원내대표 선거만 해도 그렇다. 이 자리는 당내 2번째 서열이고 국회의 꽃으로 불리는 자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번이나 원내 총무를 지내며 대권의 길을 닦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번번이 떨어져 한 번도 원내총무를 못 해 본 것이 정치사의 일화로 남아 있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가 지금보다 부족했던 시절에도 자유경쟁의 멋과 맛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여야 모두 당선 예정설·확정설이 판을 치고 있는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핵심 측근인 이철규 의원의 내정설로 시끄럽다가 1차 공모에 실패하고 이 의원이 원내대표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낙착되자 그제야 3인이 나타나 경선이 이뤄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반면에 민주당은 1인 오너의 오더 체제다. 당선자가 171명이나 되는데도 원내대표 입후보자가 단 1명으로 정해져 어색한 선출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얼굴을 알 만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출마의 운을 떼더니 어느 날 박찬대 의원 하나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굳이 설명할 것도 없이 이재명 대표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순간 두 말 없이 쉬쉬하며 출마 의사를 거두어들인 것이다. 이렇게 질서정연·일사분란한 군대식 모습을 보여 준 끝에 원내대표가 된 사람은 부하가 상사 앞에서 충성 서약하듯이 단호한 어조로 ‘돌격 앞으로’ 식 취임사를 했다. 법사위와 국회운영위의 위원장도 독식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모든 법안도 재발의하겠다고 했다. 정치적 선전포고다. 병정놀이를 하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전투 모드로 이재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르고야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요즘 정가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이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최대한 지체시켜 시간을 벌고, 다른 한편으로는 올코트 프레스로 윤 대통령을 탄핵 또는 퇴진 압박 등으로 흔들면서 차기 대선까지 무사히 가자는 데 모든 정치 작용이 집중되고 있음이 도처에서 감지된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민의힘의 한계 등이 정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윤 대통령 리더십하의 정부·여당이 과연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팽배해지고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주로 총선 중에 나타난 당·정 관계의 부조화와 총선 후에 부각되고 있는 윤석열·한동훈 갈등 때문이다. 즉 거야의 도전이 폭풍우처럼 거세지고 있는데도 여권의 핵심이 총선 후유증으로 대립하고 있음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이런 비정상이 빨리 정리되지 않는다면 바로 이런 ‘내부 약점’이 이재명 민주당의 먹잇감이 되어 파국을 자초하게 될 공산이 크다.
선거 패배의 책임 문제는 이미 판명이 났다. 야당은 정권 심판을 주장했고 이것이 먹혀들어 갔다. 정권 심판론이 먹혀든 것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30%대의 낮은 지지율이 계속되어 왔고 선거 악재와 원인이 대부분 윤 대통령 측에서 나왔으며 사전에, 혹은 그때그때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피했기 때문이다.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이나 국힘 쪽의 역부족도 있었다. 이재명·조국 심판론 외에 좀더 다양하고 임팩트가 있는 선거 메시지 창출과 유세 현장 연출 등 기획적 측면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국민의힘의 능력 부족이 근본적 문제였고 한동훈 원톱 체제의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선거 책임론은 무용하다. 불화와 잡음만 일으켜 대야 투쟁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이런 면에서 윤 대통령이 홍준표나 오세훈 등 차기 대선에 욕심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에 솔깃한다면 큰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지금 한동훈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 가운에 5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다른 잠재적 경쟁자들의 지지율은 미미하다. 이런 상태는 갑자기 특정인의 노력으로 달성될 일도 아니고 대통령 권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현상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엄혹한 정치 현실을 제대로 보느냐, 한동훈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윈윈의 강팀을 구축하느냐, 그리하여 효과적으로 정권을 방어하고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진용과 체제·정책을 얼마나 잘 갖추느냐에 있다. 이런 작업에 실패한다면 항간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제2의 박근혜 사태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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