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50] 심장을 움켜쥔 가시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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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신의 뜻인가, 업보인가, 우연인가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15 06:30:10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 하는 것일 테고. 어느 쪽이든 받아들이기만 하면 양쪽 다 수학 방정식처럼 딱 떨어지거든. 무슨 일이든 남 탓하는 인간들처럼 말이야. 신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으니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현재의 자신은 무죄하고 순수한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거지.”

나는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열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며 호흡도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신의 섭리라는 겁니까? 우연이라는 겁니까? 업보로 이 꼴이 되었다는 겁니까? 그러니 입 닥치고 얌전히 죽으라는 겁니까?”

알아듣지 못할 괴설만 늘어놓는 노인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호기롭게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눈에서 시작된 통증이 두통으로 번졌다가 다시 아래쪽으로 내달리며 심장을 틀어쥐었다.

“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휘청거리다 손에 잡힌 의자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치밀어 올랐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압력에 못 이겨 터져 버릴 때까지 내 심장을 앙칼지게 거머쥘 모양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삼킨 진통제의 효력이 떨어질 때가 되긴 했지만 수천 개의 창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은 처음이었다.

이를 악물고 기어가다시피 해서 배낭을 더듬었다. 가까스로 진통제를 찾아 꺼내 들었을 때 최 박사가 다가와 내 앞에 힘들게 쭈그리고 앉았다. 몸부림치던 나를 매정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그가 차에 독이라도 넣은 사람처럼 쌀쌀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신 환약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물을 여유도 없이 나는 정체 모를 약을 입에 밀어 넣었다. 청심환처럼 둥글고 큰 환을 급하게 씹었다. 아리고 쓰고 매운 맛이었다.

그가 민들레 차를 내밀었다. 진저리를 치며 단숨에 삼켰다. 민들레 뿌리의 쌉쌀한 맛이 쓰디쓴 약의 잔 맛을 밀어냈다. 약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며 통증을 서서히 지워 갈 때까지 나는 죽은 듯 널브러져서 꼼짝하지 못했다.

벽난로의 불길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부축을 받아 거실 소파에 탈진해 누워 있던 내가 눈을 떴다. 맞은편의자에 앉아 있던 최주결 박사가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약을 삼킨 후 호흡은 안정을 되찾았고 가슴의 통증도 잦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노인을 신뢰하고 싶지 않았다. 큰 병원의 의사들은 엑스레이(X-ray)에서도, 엠알아이(MRI)에서도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하지 않았는가.

“현대의학은 감기도 완치시키지 못한다네. 과학의 발전 또한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되고 있을 뿐이지.”

나의 의심을 정확히 읽고 박사가 말했다.

“눈 밖으로 보이는 건 0.5cm 정도지만 가시의 뿌리들은 저마다 자네 심장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을 걸세. 아카시아처럼 얽히고설킨 뿌리들은 곧 자네 몸 안의 모든 장기를 장악하게 되겠지.”

입안의 침이 바짝 말랐다. 눈을 적출해도 6개월 안에 죽을 거라던 정하운의 말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염려 말게.”

나는 박사의 다음 말에 간절한 희망을 걸었다. 과학적인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노인은 잔인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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