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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모스크바 교외 총격·방화 테러 사망자가 늘고...'))
현대 러시아 최악의 테러… 우크라이나 배후설 대두
22일(현지시간) 밤 모스크바 교외 총격·방화 테러 사망자가 늘고 있다. 당초 40명 정도로 보고된 사망자(부상 약 150명)는 140명에 육박하며 구조작업이 진행될수록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튿날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이번 사건을 “야만적 테러” “대(對)러시아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국민연설을 통해 현행범 4명 등 11명의 용의자 체포 소식을 전하며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하고 “사건에 관여한 전원 처벌”을 다짐하기도 했다. 현대 러시아 최악의 민간인 희생에 현지는 침통한 분위기다. 미국도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하며 테러리스트를 “인류 공공적 적”으로 비난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배후설이다. 푸틴 대통령은 “범인들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측에 국경을 넘기 위한 창구가 준비돼 있었다”고 말했다. 과격파 이슬람 세력 IS가 범행을 자처하는 중이며 우크라이나와 미 백악관이 사건 발생 직후 일찌감치 ‘우리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상태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의 테러를 연구해 온 체코의 안보 전문가 아담 돌니크는 이번 테러가 근년 IS나 알카에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봤다. 2015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하던 여객기 폭파, 202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러시아 대사관 공격을 언급하며 “이번 공격을 IS 소행으로 충분히 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기독교인을 공격한 이슬람의 성전(聖戰)’?
일본 NHK 보도에 따르면 IS와 연결된 ‘아마크통신’은 이번 테러가 IS전투원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며 4명의 사진을 공개했다. 모자를 쓰고 복면을 한 이들의 사진 설명엔 “러시아 기독교인을 공격한 실행자”로 돼 있다. NHK는 러시아 내무성 보도관을 인용해 용의자 4명 모두 러시아 국적이 아니라고 전했다.
아마크통신엔 “러시아 기독교인들을 향한 IS전투원 4명의 조직적 공격”이라며 “세 명이 발포, 나머지 한 명은 방화를 맡아 최소 300명의 기독교인이 죽거나 다쳤다. IS 및 무슬림과 싸우는 나라들 간에 격화 중인 전쟁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임을 소식통에게 확인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언급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반박 동영상를 텔레그램에 올렸다. “예상 대로 푸틴과 그 주변 무리가 남탓 하려는 것” “우크라이나에 몇십만 테러리스트를 보냈으면서 자국 내에서 벌어진 일은 신경 안 쓴다”며 “사건 발생 후 하루종일 생각한 끝에 결국 우크라이나에 떠넘기기로 작정한 것” “늘 써먹던 수법”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최근 87% 이상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5선을 확정지은 푸틴 대통령에게 중대한 타격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러시아로선 2004년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극 이래 최악의 테러다. 국내 지지를 재확인한 푸틴 대통령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우크라이나전쟁을 강행하면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으나 그가 표방해 온 ‘강한 러시아’ 이미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푸틴 대통령의 체첸(무슬림지역)분쟁 강경 진압 이력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IS의 분파 호라산(ISIS-K)은 최근 몇 년간 푸틴 대통령을 노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점을 고려할 때 IS 테러 기획이 푸틴 대통령 5선 직후에 맞춰진 것으로 분석된다.
푸틴 책임론… 미국의 사전 경고 무시
더구나 모스크바 대형 시설 테러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사전 경고가 있었다니 푸틴 책임론이 제기될지 모른다. 주러 미 대사관은 7일 “모스크바를 겨냥한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임박”을 시사하며 큰 행사에 되도록 가지 말도록 권고했으나, 19일 연방보안국(FSB) 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이를 “명백한 협박” “우리 사회를 흔들려는 의도”로 일축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사건 현장인 대형 공연장 크로커스티홀은 행정구역상 모스크바가 아니지만 소핑몰·지하철 등으로 도심에 긴밀히 연결돼 있고 크렘린궁과 불과 20㎞ 떨어진 곳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지역 랜드마크라 할 만한 곳을 FSB가 보호하지 못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 당국은 핵심 용의자 4명이 모스크바 남서쪽 약 300㎞(우크라이나 국경으로부터 100㎞)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에서 검거됐다고 밝혔다. 레오니트 슬루츠키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조사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흔적이 더욱 명백해진다”며 “잔혹한 키이우 정권이 테러리스트를 고용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영 방송 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냔도 유사한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배후설은 예상된 일… 러시아 자작극일 수도”
우크라이나 배후설에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이 “터무니없다”고 받아쳤다. 이어 “(러시아 측 주장은) 예상된 일”이라며 오히려 러시아 자작극 가능성을 지적했다. “사건 당시 테러범들이 공연장에서 전혀 제지받지 않고 1시간30분 이상 총격을 벌인 후 타고 온 차량으로 현장을 떠난 점, 러시아 병력이 밀집한 국경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점” 등에 의문을 표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HUR)은 성명에서 “푸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특수부대가 계획적·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전쟁의 확대·확장이 목표”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선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우크라이나전쟁을 위해 푸틴 대통령이 추가 징집을 발동하는 등 방향 전환의 빌미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찰스 리치필드 부국장 역시 “크렘린궁이 전황을 반전시킬 확실한 경로는 (테러를) 우크라이나전쟁과 연관 짓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이번 테러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공세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로이터에 따르면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장은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의 배후로 드러난다면 전쟁터에서 분명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또한 “키이우 정권의 테러리스트임이 확인된다면” 단서를 달긴 했지만 무자비한 보복을 암시했다.
애도의 물결 속 뒤숭숭한 민심
모스크바 거리와 지하철역 곳곳의 디지털 광고판에 ‘애도합니다. 2024.3.22’ 글귀와 함께 검정색 바탕 위에 흔들리는 촛불 영상이 걸렸다. 이날 크로커스시티홀 공연장 앞을 다시 찾은 일부 사건 목격자들이 전 세계 취재진에게 충격적 체험을 토로하고 있다.
전날 가족과 함께 피크닉 콘서트를 보러 왔다가 테러를 만난 아나스타샤 로디오노바는 “(테러리스트들이) 조용히 걸어 들어와 사람들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댔다. 정말 무서웠다. 구사일생 도망쳐 집에 돌아와 보니 재킷이 피범벅이었다”고 몸서리쳤다. “재밌다는 듯 걸어 다니면서 무차별 난사했다. 여자‧어린‧노인 가리지 않았다”며 분노하기도 했다.
30대 모스크바 시민 이리나·알렉산더 부부는 이번 일이 “(러시아에 대한) 도발”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자체에 책임을 돌리며 우회적으로 푸틴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중·노년층에선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돈을 받은 것 같다”며 “우리 모두 단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편이다.
테러의 악몽과 긴장감이 여전한 가운데 모스크바 한복판 붉은광장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완전 차단됐다. 지하철 보안 직원들이 배낭이나 큰 짐을 든 사람들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있다. 음식 배달원들은 건물 출입구에서 주문자에게 전화해 경비원을 바꿔주고 나서야 배달을 완료한다.
사건 현장 근처의 먀키니노 지하철역 앞에는 ‘모스크바 자원봉사단’ 점퍼 차림의 청년들이 추모객들을 안내한다. 뒤에 다녀갈 사람들을 위해 물·과자를 두고 간 사람들, 모스크바 도처의 혈액센터에 희생자들을 위한 헌혈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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