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이 깔린 수원역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택시 승강장에서 내려 역사로 뛰어 들어왔지만 배차 간격이 큰 청량리행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빗물과 한기가 옷 속으로 차갑게 파고들었다. 어깨를 바짝 움츠리고 열차가 들어오는 방향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열차가 오지 않는 것은 내가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간절히 기다린 탓이라는 걸,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가급적 뒤로 밀어 놓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나는 존재할 것인가, 초조하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오늘 나는 존재했던가,라는 질문이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아버지에게 나는 존재했던가.
‘나는 단절되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명제가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하악, 내쉬고는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숙여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저 다이아몬드 안에 인생이 다 들어 있단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나를 무릎에 앉히고 텔레비전으로 함께 야구를 보며 했던 아버지의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꼭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어떤 구기 종목보다 야구를 좋아했다. 축구나 농구처럼 무작정 골을 많이 넣어야 이기는 경기보다는 모든 위기를 극복한 선수가 기어코 홈에 돌아와야만 점수를 내는 게임의 규칙이 마음에 들었다.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의 거리, 27.44미터, 마운드와 홈의 거리 18.44미터. 그 사각 안에서 날아가는,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의 볼은 무한한 이야기와 예측 불가능한 역전 드라마를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무사 만루를 맞이한 투수든 2사 풀카운트를 마주한 타자든, 어느 쪽도 마운드와 타석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작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쳤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그네를 탈 때 나에게 잠시 맡겨 두었던 아버지의 미완성 그림이었다. 얼굴은 크고 몸은 가늘고 다리도 짧았지만 양팔을 넓게 수평으로 벌리고 있는 아이는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빨간 양말을 신지는 못했지만 날개를 넓게 펼치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도 같았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레드삭스의 팬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의 비난과 조롱, 자신의 후회마저 단번에 뒤집어 줄 인생 역전의 승전보. 아버지가 레드삭스의 승리를 바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꿈을 포기하고 소명을 따른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아버지는 그렇게라도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울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눈부신 전조등이 승강장을 환히 비추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을 주먹 안에 움켜쥐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한 발 한 발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죽음과 다시 맞서기 위해 나는 열차에 올랐다. 9회 말 무사 만루, 홈런을 칠지도 모를 적을 맞아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처럼.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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