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이 66년 만에 문을 닫았다. 추석 연휴 극장을 찾았던 이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대한극장의 운영주 세기상사는 9월 말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운영주 측은 계획을 앞당겨 8월 말 극장 운영을 중단했으며 추석 연휴인 14일 내부 공사에 들어갔다.
1958년 단관극장으로 개관한 대한극장은 66년간 한국영화계를 상징하는 간판 극장으로 통했다. 미국의 20세기 폭스사가 설계를 맡아 70mm 원본 필름을 그대로 상영할 수 있도록 했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창을 없애 빛의 방해 없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기의 명작으로 통하는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한국 최초로 개봉한 곳도 이곳이었다. 특히 초대형 화면에서 펼쳐지는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 경관은 관객을 경이의 세계로 인도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한극장은 한국영화의 시사회 개최 장소로 통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대형 멀티플렉스극장에서 시사회를 열면서 한국영화계의 거목이라는 상징적인 지위를 빼앗겼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대한극장에 대한 추억 한 가지씩은 간직하고 있던 터라 사람들의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한극장의 폐관은 오래전 예견되어 있었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울의 주요 단관들이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국도극장이, 2005년에는 스카라극장이, 2008년에는 단성사와 명보극장이, 2010년에는 중앙극장이, 2021년에는 서울극장이 문을 닫았다. 피카디리 극장은 2015년 CGV에 운영권이 넘어갔다. 대한극장의 폐관은 충무로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음을 의미한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 일대가 한국영화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영화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충무로 입성은 일생일대의 목표였다.
충무로가 영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거점이었던 명동 바로 옆에 위치하면서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영화인들은 일본인의 주거지였던 적산가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영화 제작에 몰두했다.
60년대 초까지 충무로 일대에는 80여 개의 영화사가 들어섰으며 배우 전문학교도 생겨났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매일 충무로에 나오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했다. 당시 스타다방·청맥다방·벤허다방·초원다방은 영화인들로 바글바글했으며 대원호텔·동신여관 등 숙박업소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여관의 개수는 영화사의 개수와 동일했다.
충무로의 전성시대는 1965년부터 70년대까지다. 한때 충무로에서는 1년에 200여 편이 넘는 영화가 쏟아져 나왔으며 신성일 배우는 하루 4편을 겹쳐 찍기도 했다.
그러나 70년대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외국영화 수입권 제도를 시행하면서 국내 영화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또한 90년대 들어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130여 영화사 가운데 100개 이상이 문을 닫는 등 충무로는 회생 불능상태에 이르게 된다.
물론 대기업이 손을 대면서 한국영화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은 또 하나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극장마저 지키지 못한 것은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상처로 남았다.
한편 세기상사는 대한극장 건물을 문화시설로 개조해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흥행한 이머시브 공연인 ‘슬립 노 모어’를 선보일 계획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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