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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계 배우가 주연한 디즈니의 ‘백설공주’ 실사판 흥행 성적이 부진하다는 소식이다. 북미(미국·캐나다)에서 개봉 2주차에 벌써 박스오피스 1위를 내줬다. AP통신과 할리우드 매체 버라이어티 등은 30일(현지시간) 컴스코어 자료 등 업계 추산치를 인용해 지난 주말(28∼30일) 북미 극장가에서 ‘백설공주’가 1420만 달러(약 209억 원)의 티켓 수입을 기록해 박스오피스 2위로 내려앉았다고 전했다. ‘백설공주’의 둘째 주말 수입이 첫 주 대비 66%나 급감한 것으로 보아 시장 평가가 이미 난 셈이다.
2억5000만 달러(약 3678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백설공주’는 북미 4200개 영화관에서 21일 개봉해 열흘간 6680만 달러(약 983억 원)를 벌어들였다. 북미 외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수입 통틀어 1억4310만 달러(약 2105억 원) 수준이다. 이 작품은 콜롬비아 출신 어머니를 둔 미국 배우 레이철 제글러가 주인공 백설공주 역을 맡아 개봉 전부터 구설에 올랐으며 이것이 화제성과 관심보다 대중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원작에서 새하얀 피부의 소유자로 묘사된 백설공주 역에 제글러의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자 제글러는 “그 역할을 위해 내 피부를 표백하진 않겠다”고 응수해 논란을 키웠다. 백설공주가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설정도 원작 팬들의 반감을 샀다. 더구나 제글러는 작년 11월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와 지지자들을 향한 원색적인 욕설이 담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역풍을 맞기도 했다.
디즈니의 기업문화가 정치적올바름(PC)주의에 기울어져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작의 독창적 재해석과 파격적 캐스팅이 작품성과 시장 친화성을 고려한 방향이라기보다 정치적 목표 의식에 충실해 있다고 지적된다. 피부색·인종·출신·성적(性的)지향성으로 인해 인간적 모멸감을 겪거나 중대한 기회가 박탈 당해선 안되지만 특정 직종 내지 특수 상황에서 어느쪽인가를 선택할 권리가 억압되는 것 또한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인어공주와 백설공주 피부색이 왜 꼭 희어야 하느냐’ 항의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원작 그대로를 선호한다든가 백인미녀를 선호하는 것 역시 개인 취향인데, 영화 제작자가 이를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든다는 게 문제다. ‘백설공주’ 제작비 회수에 장기 흥행이 필요하지만 다음주 가족관객을 겨냥한 또 다른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개봉될 예정이어서 ‘백설공주’의 1위 탈환은 어려울 것으로 미 매체들이 짚었다.
‘백설공주’ 실사판 흥행 실패는 2023년 개봉된 ‘인어공주’ 아리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어두운 피부색의 주인공을 내세워 화제가 됐으나 시장 반응이 차가웠다. 뮤지컬 영화였는데 음색마저 아리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9년 디즈니가 원작을 재해석해 내놓은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대성공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성공의 핵심은 해피엔딩을 내세운 결말과 ‘사랑스럽고 호기심 풍부한 말괄량이 인어공주’ 캐릭터의 탄생이었다. 1989년 당시 디즈니스다운 각색과 당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동화책 속 캐릭터들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불러냈다. 사랑하는 사람이 속한 세상에 대한 동경·궁금증과 거기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노래한 ‘파트 오브 유어 월드’와 그런 아리엘을 향해 ‘인간세상은 위험하며 바다속이 훨씬 더 좋다’고 훈계하는 가재 세바스천의 ‘언더 더 씨’ 등 주제곡들 인기도 글로벌 흥행에 한몫했다.
그런 디즈니가 24년 만에 ‘인어공주’를 실사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시켜 원작 팬과 더불어 동시대의 새로운 관객을 공략하려 했으나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주인공 에리얼 역에 흑인 가수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자 ‘원작 파괴’ ‘인종차별이다, 아니다’ 격론에 휩싸였다. 디즈니 측에선 원작자 안데르센이 인어공주 인종을 특정하지 않았다며 ‘빨강머리 백인’ 인어공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각인된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심지어 한 흑인 어린이가 영화를 보다 “나의 아리엘이 아니야”라며 울음을 터뜨리는 네티즌 영상이 온라인에 돌았다.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 호불호는 개봉 후에도 계속됐다. 이번 ‘백설공주’의 경우 캐스팅 거부감뿐만 아니라 각색의 방향성, 디즈니가 새롭게 추가한 설정에 대한 비판도 강하다. 공식 예고편 영상에 ‘싫어요’ 표시가 100만 개를 넘었다. 결국 디즈니는 영국 런던 시사회를 취소하고 배우들의 홍보 활동을 최소화한 채 조용히 개봉하는 초유의 조처를 취했다.
한국 상황도 비슷하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3월25일 기준) ‘백설공주’ 국내 누적관객수 13만 명에 불과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네이버영화 기준 개봉 일주일 만에 관람객 평점 6.3점, 네티즌 평점 2.4점, 실관람객 평가를 반영한 CGV 에그지수는 69%로 떨어져 ‘깨진 달걀(70% 미만)’ 평가를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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