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재생사업을 둘러싼 시민들의 원성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박 시장이 취임 이후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살려내겠다며 각종 도시재생사업을 강행한 탓에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종로구에서는 노후주택 주민들이 박 시장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재개발 사업이 무산돼 생활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호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동대문구 청량리에선 집창촌인 ‘청량리 588’을 보존하겠다고 나서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오랜 기간 서울 대표 ‘홍등가’ 이미지로 고통받아온 청량리 주민들은 해당 사업에 공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도 오랜 시간 동안 성매매가 이뤄진 현장을 보존하는 것은 사회 통념과 맞지 않고 나아가 성차별을 비롯해 2차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홍등가 흔적 남긴다는 박원순 불통행정에 청량리 주민들 공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4구역 재개발단지(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는 지난 2018년 재개발 사업의 마지막 관문인 관리처분 변경 인가를 받고 착공에 돌입했다. 청량리4구역은 과거 200여 개의 성매매 업소가 모여 있던 ‘청량리 588’이 자리하던 곳이다. 오랜 기간 진통 끝에 어렵사리 착공에 돌입했다.
이곳은 약 4만㎡ 부지에 지하 8층~지상 최고 65층 4개 동 아파트 1425가구와 오피스텔 528실, 백화점·호텔·오피스가 들어선 42층 랜드마크 타워 1개동 등이 들어선다. 2023년 7월 준공 예정이다. 오랜 시간 홍등가 지역이라는 오명에 휩싸였던 만큼 주민들의 재개발 호응도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가 이 지역 일대에 ‘청량리620 역사문화생활공간’을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청량리 620 역사문화생활공간’은 청량리 실제 지번인 전농동 620번지의 620과 청량리를 합쳐 작명한 것으로 과거 서민 문화가 엿보이는 한옥 여인숙을 체험하고 옛 정취를 살린 식당, 카페, 주점 등을 조성해 청량리의 옛 흔적을 남기는 사업이다.
역사생활문화공간 예정 부지는 3160㎡ 규모로 한옥 12동, 벽돌 건물 4동이 있다. 예정부지의 일부는 과거 여인숙, 성매매 업소로 쓰였던 장소이다. 현재 역사생활문화공간 사업은 구상 중으로 착공 시점과 예산은 확정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여행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숙박, 문화시설,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 하는 일종의 도시재생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해당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량리 일대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언뜻 보면 좋은 취지의 사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과거 성매매, 성 착취, 인신매매 등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졌던 과거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이러한 오명과 치욕을 하루 빨리 씻어버려도 모자랄 판에 이를 간직하겠다는 서울시의 취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청량리에서 자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윤정희 (60대·가명) 씨는 “수십 년간 청량리 사창가 밀집지역 이미지로 고통받아왔다”며 “젊어서는 지인들한테 청량리 일대에서 자영업을 한다고 말하면 업소 운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 섞인 눈초리까지 느껴야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이 확정되고 이제는 그런 이미지를 벗나 했는데 성매매 현장 일부를 보존하겠다는 서울시의 소식이 전해졌다”며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청량리동 주민 류은정 (30대·여) 씨는 “앞으로 청량리4구역 공사가 완료되면 그곳에는 다수의 학교도 들어선다”며 “그 공간 사이에 술집을 짓겠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성 착취가 성행했던 흔적을 남긴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인근 주민 넘어 국민도 분노…“선거 때는 여성 감수성 공감한다더니”
서울시의 ‘청량리620 역사문화생활 공간’ 사업에 대해 청량리 주민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여성과 전문가들도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서울 K대학교 재학생 윤이나(20대·여) 씨는 “우리나라 자체에서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법, 제도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성매매 집결지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흔적을 역사적으로 보존을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취업준비생 이수정(20대·여) 씨는 “그동안 여성 인권을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을 보며 지지해 왔는데 여성 성착취 현장을 보존한다는 말을 들으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며 “특히 그곳은 여성의 피해만 강요된 곳인데 한옥이라는 이유만으로 남기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성매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는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고 성토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전 대표는 “성매매 집결지의 일부를 보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여성 인권을 신장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사업이 추진된다면 다소 의미가 있겠지만 현재 그런 모습은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업지가 여성들이 성 착취 저항한 움직임이 일어났던 대표성을 띄는 지역도 아닌 만큼 사업 추진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성매매 집결지의 일부가 보존 돼 있는 것만으로도 지역 이미지에 영향을 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서울시가 문화 중심의 도시재생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살려야하는 문화와 없애야할 할 문화를 면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문화적 목적으로 보존을 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성매매가 이뤄졌던 장소는 부동산으로 봐도 혐오시설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사업이 추진된다면 청량리 재개발 지역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경고했다.
박원순 취임 후 달동네 정비구역 강제 해제…종로달동네 주민들 시름 깊어져
박 시장은 2012년부터 ‘뉴타운 출구전략’을 추진하며 그 일환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조례’를 개정해 역사문화유산 보존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은 서울시장 직권으로 정비구역 해제를 가능토록 했다. 개정된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는 주민 3분의 1이 재개발 정비구역 해제를 요청하고 찬반 투표를 통해 찬성표가 전체의 50%에 미치지 못하면 서울시장이 직권으로 정비구역의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종로구에선 정비구역 중 31곳의 사업지가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2013년 4월 삼청2구역 정비구역 해제를 시작으로 같은 해 10월엔 84만 6100㎡ 규모의 창신·숭인 뉴타운 지구(창신 1~12구역, 숭인 1~3구역)도 정비구역 해제 통보를 받았다. 이후 △명륜4구역 △신영1구역 △필운1구역 △체부1구역 △누하1구역 △돈의문4존치정비구역 △돈의문5구역 △사직2구역 등이 정비구역에서 순차적으로 해지됐다.
현재 이들 중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개발 의지가 충분히 있음에도 서울시가 막무가내로 해제시켜 박 시장을 향한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직2구역, 옥인1구역, 충신1구역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업지는 사업시행 인가를 받을 정도로 사업이 진척됐었지만 서울시가 역사문화 보존의 명분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정비구역 해제 조치를 내렸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과 생활권이 심각할 정도로 침해받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사직2구역에 거주하는 안상현 씨(30대)는 “어머니 집이 많이 낡아 약 6000만원을 들여 수리를 했었다”며 “하지만 수리를 한들 낡아 있는 기본 뼈대에서 발생하는 하자는 막을 수 없었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집 천장이 무너져 내렸는데 이를 고치느라 막대한 재산 손실을 봐야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비용도 날리게 됐다. 옥인1구역, 충신1구역 등은 더 이상 개발을 추진할 자금 여력이 되지 않아 사업을 포기했다. 사직2구역은 서울시와의 오랜 법적 공방 끝에 직권해제 무효 판정을 받고 다시 사업 추진을 준비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개발 사업이 지연돼 온 탓에 자금 여력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배태용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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