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한국전쟁 당시 수십만 전몰장병들을 추념하기 위한 6월 6일 현충일은 매년 국민들에게 상흔으로 다가온다.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반도 평화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북한의 호응 없는 일방적인 성격이 짙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평화를 찾기 위한 방법과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수 차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달 3일에는 우리측 GP에 고사포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재인정부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를 넘어 두둔하기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굴종적인 북한 편들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던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이 어려 있는 현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되찾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참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함이다. 이에 스카이데일리는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를 호국의 보훈의 달 특집 두 번째 기획으로 ‘6·25전쟁 상흔의 현장’을 선정했다. 유엔 회원 참전국들의 치열한 격전지, 대한민국 국군의 위대한 승전지,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말해주는 6·25의 상흔을 간직한 장소 등을 찾아 6·25 전쟁 당시 벌어졌던 현장의 모습과 관계자들의 육성을 취재해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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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박선옥 부장|배태용·정동현·유환인 기자]올해는 6·25 전쟁이 벌어진 지 7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어린 학생들까지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등 모든 국민이 북한의 남침에 맞서 나라를 지켰다. 그러나 기습적으로 당한 전쟁을 국민과 국군의 힘만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S.트루먼 대통령이 이 상황을 알지 못했다면,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3일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은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해줄 것을 유엔 회원국들에게 권고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지도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먼 이국땅까지 건너와 목숨 바쳐 싸운 유엔군, 지금의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는 이들이 흘린 피의 소중한 대가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스카이데일리는 유엔군이 남긴 흔적을 찾아 유엔군이 주로 활약했던 대표 전적지인 낙동강 전투와 인천상륙작전의 현장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는 현재와 미래의 평화의 공간으로 남을 유엔기념공원을 직접 찾아가봤다.
공산국가 전락 위기에서 자유대한민국 지켜낸 낙동강 방어전투
경북 칠곡군은 군 전체를 낙동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지역이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나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월미도나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파주와 철원 등 최전방 지역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에서 왜관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칠곡군의 중심지인 왜관역에 내려 택시로 10분 정도 가면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도착한다. 적에게 밀려 후퇴를 거듭하다가 대한민국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려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며 55일간의 낙동강 전투 끝에 불리하던 전세를 역전시켰던 곳이 바로 이곳 칠곡이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학예연구사 직책도 겸하고 있는 공상현 칠곡군 시설관리사업소 운영담당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그분들의 호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이 건립됐다”면서 “당시 호국영령들이 흘린 피와 눈물, 전쟁의 상처가 요즘엔 점차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5년 개관된 기념관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는 4D입체영상관과 전투체험관, 호국전시관 등 전시시설이 있다. 건물 4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우리 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낙동강 전투 지역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다. 공 학예연구사는 “호국평화기념관엔 주로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오거나 지역주민들도 종종 찾아오고 있다”며 “교육프로그램과 전시해설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초반 양상은 한국에 있어서는 절망적이었다. 7월 4일을 기해 미 24사단이 평택에서 최초의 유엔군 참전 전투인 오산 죽미령전투에 투입됐지만 생각보다 많은 북한군의 전력에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해 8월 1일 낙동강 전선인 마산-왜관-영덕을 축으로 하는 선까지 물러나게 됐다. 이때 유엔은 사령부 창설과 한국군 재편성 그리고 유엔군 도착 등 전력을 보강할 시간을 벌었다.
북한군은 계속된 공세로 인한 피로감과 유엔군에 의한 보급로 차단 등으로 전력이 저하되고 있는 등 상황이 정체돼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이 낙동강을 축으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했다. 결국 아군과 북한군이 한 달 넘게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 와중에 벌어진 왜관-다부동-대구 북방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인천상륙작전 전날인 9월 14일까지 이어졌다. 아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뚫으려 했던 북한군 4개 사단의 공세를 막아냈다. 천평계곡 전투(일명 볼링앨리 전투)에서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을 진행하고 북한군의 총 공세를 막아내는 등 이 전투를 통해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칠곡에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육군 제50사단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유해 발굴 사업으로 경북 칠곡 지역에서 1075위의 유해가 발굴됐다. 강원도 양구와 인제 다음으로 많은 발굴 성과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제작 동기가 된 최승갑 용사의 유해 발굴에 대한 내용도 전시관에 수록돼 있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대한민국을 지켜준 유엔참전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공 학예사는 “지난해 주한에티오피아 영사가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고 직원들이 에티오피아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는 등 유엔 참전국과의 교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기습 남침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던 자유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된 인천상륙작전
인천 월미도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이자 전쟁기념관 다음으로 6·25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의 기습 남침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던 자유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가 됐던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진 현장이 바로 이곳 월미도다. 인천상륙작전은 국군과 유엔군이 유엔해군 제7합동상륙기동부대의 261척 함정을 동원, 미 10군단을 인천에 투입해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시킨 6·25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다.
현재 인천 송도유원지로 가는 해안도로 길목에는 ‘1950. 9. 15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청색해안)’이라고 적혀있는 조그마한 표석이 하나 서 있다. 극동군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했던 맥아더 장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미 24사단과 25사단이 정면을 뚫고 이와 동시에 해병연대전투단과 육군 부대가 인천에 상륙한 후 내륙으로 진출해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군을 38도 이북으로 내보낸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서울 조기탈환이라는 전략적·정치적·심리적 이유를 들어 인천 상륙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이에 미 해군 함정을 비롯해 영국과 캐나다·호주· 뉴질랜드·프랑스·네덜란드 등 전체 260척의 배로 제7합동기동부대를 편성하고 한국 해군도 작전을 지원하도록 했다.
9월 15일 5시 45분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협소한 수로와 10.3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 상륙조건의 악조건 등 전술적 제약과 통상 5~6개월이 걸리는 작전준비 시간을 단 1개월 안에 끝내야 했던 시간 제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성공을 거뒀다. 이 작전을 통해 국군과 유엔군은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인천 상륙작전의 상륙지점인 청색해안으로부터 6㎞ 정도 떨어져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는 당시 현장을 영상과 시뮬레이션 등으로 관람할 수 있다. 기념관 관리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그 수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불과 지난해만 해도 매일 수백명씩 이곳을 찾기도 했다”고 전했다.
“자유대한민국의 평화, 세계인의 피로 일군 성과라는 사실 기억해야”
한국전쟁 종료 시까지 미국·영국 등 16개국과 스웨덴·인도 등 의료 지원국 6개국 등을 포함해 전체 22개국 국민이 유엔군으로서 한국으로 파견됐다. 미군이 178만9000명으로 3개 사단과 1개 해병대, 2개 함대, 20개 비행단 규모로 제일 많은 부대를 파견했다. 영국의 경우 2개 보병여단과 1개 해병특공대, 17척의 함정을 투입했다. 이들 중 미군 14만1000여명과 기타 참전국에서 1만4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그 중 4만787명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부산 대연동에 소재한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운영·관리하는 묘지인 유엔기념공원에는 11개국 2309명의 전사자와 전후 사망안장자 등이 이곳에 안치돼 있다. 관리위원회의 손길현 행정실장은 “1951년 1월, 유엔군 사령부가 이곳을 조성했으며 4월 완공 후 각지에 가매장됐던 유엔군 전몰장병 유해들이 이곳에 안장됐다”며 “1955년 11월부터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이곳을 관리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 실장은 “이곳이 냉전 상태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공간이지만 향후 냉전의 구도가 아닌 세계평화의 가치로 이 공원이 활성화되길 바란다”며 “참전했던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더불어 이곳도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환인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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