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취재팀=박선옥 부장|배태용·정동현·유환인 기자] 정부는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하며 연내 종전선언이 가능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 2년이 지난 올해까지 종전선언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 도발과 핵 실험을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닐 뿐더러 정황상 언제 어디서든 다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정부의 대북정책은 변함이 없다. 위태로운 안보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모습이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지역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격전지 인근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6·25 전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발길이 끊기고 있다며 이는 안보의식에 점차 해이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6·25 전쟁 승리 이끈 주요 승전지… 6사단 용문산 전투, 해병대 도솔산 전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화천군 파로호 등은 6·25 전쟁 당시 아군의 승전지로 알려진 용문산 전투가 치러진 장소다. 1951년 국군 6사단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과 가평군 화야산 일대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3개 사단(63군 187·188·189사단)의 공세를 격퇴했다. 이 전투는 6.25 전쟁 초반 1년간의 치열했던 전면전을 마무리 지은 의미 있는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연합군이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군의 전쟁 보급로를 끊으면서 전쟁 분위기가 반전되자 중공군(중국군)이 북한군을 돕기 위해 한반도로 내려왔다. 중공군 4개 사단은 중부선을 지키던 6사단 주둔 지역으로 침투했다. 1951년 4월 화천군 사내면 전투가 벌어졌는데 당시 이곳을 지키던 6사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패하고 가평까지 후퇴했다. 이후 중공군은 기세를 몰아 6사단을 궤멸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남하했다.
6사단은 거듭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정신무장을 강화하며 실전 같은 훈련을 실시했다. 이후 6사단은 양평 용문산 전초지역에서 매복작전을 펼치며 중공군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중공군이 용문산 전초기지로 들어오자 6사단은 화력을 퍼부어 마침내 대승을 거뒀다. 일부 살아남은 중공군이 퇴각하자 6사단은 용문산에서 화천까지 추격해 중공군 2만5000명 이상을 화천저수지에 궤멸시켰다.
6·25 전쟁 이후 고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대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화천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라 이름 붙이고 비석을 세웠다. 당시 용문산 전투가 치러졌던 경기도 가평·양평군을 비롯한 강원도 화천 등 지역 곳곳에는 현재 용문산 전투 승전을 기리는 △용문산 전투 가평지구 전적비 △화천 파로호 안보전시관 △파로호 비 등이 세워져 있다.
도솔산 전투도 6·25 전쟁의 주요 승전지로 손꼽힌다. 도솔산 전투는 지금의 한국 해병대의 기원이 된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전투는 1951년 6월 강원도 양구 도솔산 일대에서 치러졌다. 한국 해병대는 험준하기로 이름난 도솔산의 가파른 능선 자락을 기어오르며 북한 12사단 1개 연대를 격파하고 대암산-도솔산 고지군을 차례대로 확보했다.
험지에서 어렵게 일궈낸 승리는 세계 각국의 언론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미국 언론 등에서는 한국 해병대를 ‘귀신잡는 해병’이라고 보도했다. 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 전투 이후 해병대에 ‘무적해병(無敵海兵)’의 휘호와 대통령부대표창을 수여했다. 이때부터 해병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귀신잡는 해병’ ‘무적해병’ 등으로 불리게 됐다.
우리나라에 있어 의미 있는 전투가 치러졌으나 현재 도솔산을 기념하거나 기리는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도솔산 정상에 위치한 도솔산지구 전적비와 도솔산 산골짜기에 위치한 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 등이다. 일반인이 쉽게 오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세월이 지날수록 점차 잊혀가고 있다.
조국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 혼 깃든 용문산·도솔산, 정부 무관심에 점차 잊혀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6·25 전쟁 격전지는 최근 들어 더욱 빠르게 잊혀가고 있다. 용문산·도솔산 전투가 치러진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피와 땀이 서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발길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화천군 지역에서는 문재인정부 들어서 파로호 전투의 명칭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가평군에 거주하고 있는 강일석 씨(70대)는 “가평 토박이들은 대다수 용문산 전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예전에는 보훈의 달에는 6·25 전쟁을 돌이켜보기 위해 찾아오는 젊은 사람도 꽤 많았지만 요즘에는 많이 사라져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화천군민 임지용 씨(가명)는 “최근 미군과의 패권경쟁으로 수세에 몰린 중국 정부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우리 정부에 파로호 전투의 개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강원도까지 나서 파로호 전투의 개명을 시도하다 화천군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마저도 전쟁의 아픔과 원흉을 잊어버린 채 안보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과연 이 같은 민족의 아픔을 다시 되새겨보기나 할지 의문이 든다”며 “최근 몇 년 사이 파로호 일대를 찾는 이들도 줄어드는 현실을 보면서 국민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전했다.
강원도 양구군에 거주하고 있는 최명수 씨(60대)는 “도솔산이 6·25 전쟁에서 유명한 전투였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며 “다소 놀랐던 사실은 해병대 병사에게 물어봐도 이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리 국민의 안일한 안보 의식에 안타까움이 들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안보실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앞장서 안보교육, 6·25 전쟁 상흔지 개발 등을 통해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 들어 우리 국민의 전쟁과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며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미디어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미화 등의 내용이 끊임없이 나오고 군에서도 적절한 안보교육이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만큼 6·25전쟁 주요 격전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점차 줄어들고 급기야 안보불감증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 등이 앞장서서 국민의 안보의식을 함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는 휴전상태이므로 전쟁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태용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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