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조성우 차장|박찬균·이창현·허경진 기자]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은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약 3년간 진행된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국군 장병이 목숨을 잃었고 일반 국민은 정든 집을 버리고 피란을 가야 했다. 국가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발생했다.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등진 국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낯선 환경과 마주해야 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는 실향민들의 애환이 서린 장소와 흔적들이 다수 존재한다.
전국구 관광지로 유명한 청주시 수암골… 6·25 전쟁 아픔 간직한 실향민의 애환 곳곳에
청주시 상당구 수동 일대에 자리한 수암골은 6·25 전쟁 이후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실향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실향민의 거주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손꼽힌다.
수암골은 판자로 만들어진 타 지역의 실향민촌과 달리 흙과 벽돌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처음부터 튼튼하게 지어진 덕분에 1970년대 이후 개량화 사업을 통해 담을 올리고 골목 곳곳을 보수했음에도 실향민이 생활하던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암골엔 실향민의 주거문화와 함께 당시 그들의 궁핍했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전형적인 달동네의 모습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나 분위기 만큼은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벽화작업을 통해 고즈넉함과 아기자기함을 동시에 갖춘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허름한 담장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어우러져 멋을 더하고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이로 소박한 정과 정취가 느껴져 젊은 층 사이에선 핫플레이스로 꼽히고 있다. 특히 드라마·영화 촬영장소 등으로 주목 받으며 자연스럽게 지역의 대표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하루 평균 관광객만 4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재인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수암골에서 52년 넘게 거주한 김종수 씨(75)는 “1960~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판자촌에서 실향민들과 피란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며 “지금도 비탈진 언덕길과 구불구불한 골목길, 낮은 담장 등 70년대 허름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이곳은 전쟁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라 침통한 분위기 일색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 벽화마을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주민들과 인근 대학생들, 지역 예술인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다”고 덧붙였다.
일제침략, 6·25 전쟁 등 격동의 현대사 품은 군산의 명물 철길마을
전북 군산시에 위치한 경암동 철길마을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바다였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이곳에 방직공장을 세우기 위해 바다를 매립했고 군산역에서 경암동까지 2.5km에 달하는 단선 철도를 가설했다. 그러나 당초 목표로 했던 방직공장은 세우지 못했고 대신 종이공장이 들어섰다. 이 때문에 철길은 과거 ‘종이철도’라 불렸다.
1945년 해방 이후 철길주변에 판자촌이 형성됐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터전을 잃은 실향민들이 그 자리에 있던 판잣집에 정착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 이곳은 낡은 철길 사이로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판잣집들과 낡은 상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2008년 7월 이후 운행을 멈춘, 이곳을 지나던 기차도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실향민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철길마을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관광지로 변모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철도 가까이 형성된 마을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색적으로 다가간 덕분이다.
오랜 기간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온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듯 연일 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어려웠던 과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빠져드는 중장년층들을 비롯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은 젊은 층까지 연령층도 각양각색이다.
철길마을 주변에 자리한 실향민들이 남긴 식문화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음식점들도 이곳만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온반과 평양냉면 등이 대표적이다. 1951년 1·4 후퇴 당시 한국으로 건너온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주민들은 과거 화교들처럼 작은 음식점 등을 열어 삶을 연명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실향민 2세 출신인 이정수 이북5도민 황해도 군산 연합회장(60)의 부모님이 황해남도 송화군 출신이다. 1·4 후퇴 당시 군산에 자리 잡았다. 이 회장은 “과거 실향민들은 자신들의 고향 전통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며 “지금은 그 자손들이 음식점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향민들은 고향의 전통음식에 전라도 혹은 군산의 음식이나 그 재료들을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일례로 북한 음식 중 하나인 평양온반은 밥에 뜨거운 고깃국을 얹은 장국밥이다. 고기와 채소를 기본으로 하지만 지방에 따라 국물의 재료나 고명이 종류가 달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평양냉면은 짜거나 매운 자극적인 맛 대신 담백한 맛을 즐기는 평양의 전통 음식이다. 사골을 끓여 차게 식힌 후 기름기를 걷어낸 육수에 동치미 국물과 식초,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메밀 면을 더한다. 편육, 삶은 달걀, 배 고명을 얹고 취향에 따라 식초나 겨자를 곁들이기도 한다.
[이창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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