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상처로 평가된다.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국토는 황폐해졌다. 6·25전쟁이 발생한지 70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한반도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특히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가족과 고향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억척같은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국의 문화와 곁들여져 또 다른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문화는 후대에까지 전해져 전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한 6·25전쟁의 참상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에 스카이데일리는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를 호국의 보훈의 달 특집 세 번째 기획으로 ‘6·25 전쟁이 남긴 실향민 문화’를 선정하고 관련 내용을 총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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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조성우 차장|박찬균·이창현·허경진 기자]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전쟁으로 인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다. 전쟁 당시 잠시 내려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이들은 38선이 그어지면서 결국 피란 왔던 지역에 터전을 잡게 됐다.
그들은 억척같은 삶 속에서도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금도 북한과 인접한 수도권, 강원도 등의 지역에는 실향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 곳곳에 존재한다.
실향민들 제2의 고향 속초… 억척같은 삶이 묻은 그들만의 문화 곳곳에
강원도 속초는 ‘실향민의 고향’으로 불릴 만큼 많은 실향민이 정착한 지역이다. 실향민들은 6·25 전쟁 발발 당시 전쟁을 피해 지리적 특성상 북한과 가까운 속초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머물게 되면서 속초는 실향민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속초시 청호동에 자리한 일명 ‘아바이 마을’은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피란 왔다가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실향민들이 머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국군이나 미군의 배를 이용해 내려온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실향민은 물고기를 잡던 창이배를 타고 아바이 마을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수영 속초문화원 연구위원은 “1·4 후퇴 당시 미군과 국군의 배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도 있지만 당시 함경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경우 창이배를 타고 내려와 속초에 정착하기도 했다”며 “속초에 내려온 많은 실향민이 청호동에 거주하면서 실향민촌이 형성됐는데 바로 그곳이 아바이 마을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향민들은 이북에서부터 어업 쪽에 많이 종사를 했고 청호동에 자리 잡은 이후에도 어업 관련 계통에서 일을 했다”며 “실향민들 덕분에 속초의 어업도 많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속초에도 높은 건물이 즐비하지만 유독 아바이 마을엔 좁은 공간에 이어진 단층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1·4 후퇴 이후 아바이 마을에 자리잡은 실향민들이 판자와 철판을 엮어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모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박희식 문화해설사는 “실향민들은 처음 피난왔을 당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쉽게 구하 수 있는 판자와 고철을 엮어서 집을 지었다”며 “많은 사람이 제한된 공간에서 살기 위해 거주 공간을 이어서 집을 만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함경도 지역의 주거문화 중 거주공간과 부엌을 분리하는 정주간이라는 것이 있다”며 “속초에 내려온 실향민들 역시 고향의 문화를 따라서 정주간을 만들어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아바이 마을엔 실향민들의 주거문화와 함께 음식문화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바이 마을의 명물로 불리는 아바이 순대는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먹던 북한 음식이다. 함경도식 순대는 돼지 창자에 찹쌀, 선지 등을 쪄낸 음식인데 속초에서는 돼지를 구하기 어려워 돼지 창자 대신 오징어를 이용해 아바이 순대를 만들었다.
함흥냉면 역시 대표적인 실향민 음식 중 하나다. 원래 함흥냉면은 함흥 지방 바닷가에서 흔히 잡히는 가자미회가 들어간 냉면이다. 그러나 속초에서는 가자미 대신 명태가 많이 잡혀 명태회무침을 올린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함흥냉면은 실향민들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이 연구위원은 “당시 실향민들이 함경도식 순대를 그대로 재연하기에는 재료가 부족했다”며 “그래서 해산물을 넣고 함경도식 순대와 비슷하게 만든 것이 아바이 순대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에도 북한에는 보관이 용이한 삭힌 음식들이 많이 있었는데 속초에 정착한 실향민들도 가자미 식해 등을 만들어 먹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속초 실향민들의 가장 독특한 문화는 망향공원이다. 동향인 실향민들은 같은 장소에 무덤을 만들어 후손들이 함께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실향민들 간에 유대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덕분에 지금도 이곳에선 실향민 자손들의 합동 제사가 치러지고 있다.
박 해설사는 “속초에 10여개의 망향공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비록 가족관계는 아니지만 같은 고향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죽어서도 함께 모여 살자는 의미와 더불어 후손들 간에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자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덕분에 속초의 수많은 실향민은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5월 실향민문화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비록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년처럼 5월에 개최하지 못했지만 9월에 문화축제를 연다는 계획이다.
김청익 속초문화재단 공연사업팀장은 “실향민 문화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색있는 문화로 이젠 속초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며 “암울하고 어두운 과거가 아닌 이를 더 알리고 이들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이어 “실향민문화축제는 일종의 축제다”며 “축제에는 속초의 실향민 뿐만 아니라 전국의 실향민 가족들이 모인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핫플레이스 해방촌, 서울 근교 여행지 강화도 등에 녹아 있는 실향민 문화
실향민들의 아픔이 서린 지역은 서울·수도권에도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수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통해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해방촌 역시 실향민들의 문화를 간직한 공간이다. 높은 언덕길인 해방촌은 6·25 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사람들이 살지 않던 남산 밑 언덕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됐다.
해방촌에 자리 잡은 실향민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남산자락을 수도 없이 올라야 했고 먹고살 길이 마땅치 않아 이북에서 먹던 국수를 판매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곳으로 피란을 와 60년 넘게 살면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성일 씨(79)는 “당시에는 특별히 수입원이 없다보니 이북에서 자주 먹었던 국수를 만들어 파는 국수공장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서울의 손꼽히는 명소인 해방촌은 서서히 실향민들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들의 유대감만큼은 지금까지 끈끈하게 형성돼 있다. 지금도 실향민을 중심으로 한 ‘해방촌 토박이모임’이라는 모임이 존재하고 있는데 현재는 실향민 2~3세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서 차로 40여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강화군 교동도 역시 실향민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6·25 전쟁 당시 교동도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교동도와 직선으로 4km정도 떨어진 곳에 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도 연백군이 자리 잡고 있어 전쟁 당시 북한 주민들이 대거 교동도로 유입됐다.
대부분의 실향민 마을에 북한 여러 지역 출신들이 모여 살았던 것과 달리 교동도에는 100% 연백군 출신이 모여 살았다. 평야지대가 많아 북한에서도 부촌으로 손꼽히던 연백군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교동도에 정착한 이후엔 180도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여섯 살 때 이곳으로 피란 온 서경헌 씨(76)는 “보리밥마저 부족해 아침을 조금 먹고 점심에 먹으려고 남겨놓아야 했고 또 그 밥은 양을 늘리기 위해 물에 끓여서 먹어야 했다”며 “고무신을 아껴 신기 위해 새끼줄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할 때도 맨발로 뛰어야 했을 만큼 빈곤했다”고 회상했다.
연백군 출신의 실향민이 많다 보니 교동도에는 연백군 음식을 기반으로 한 실향민 음식이 발달했다. 특히 실향민이 많이 거주했던 대룡시장에는 지금도 연백군의 음식문화가 남아있다. 교동도의 대표적인 실향민 음식은 돼지비지찌개다.
이곳 비지찌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비지찌개와 달리 돼지 등갈비를 우려내 만들어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팥소로 만드는 연백식 모찌 역시 교동도 실향민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2~3세들이 비법을 전수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맛은 옛것과 다르지 않다.
[조성우·박찬균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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