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밥은 터키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음식이죠. 국내에도 많이 대중화돼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 끼 식사로 큰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케밥이 대표적인 할랄 푸드라는 사실을 아는 내국인은 거의 없어요. 이렇게 즐겨먹고 있는데도 말예요. 제 꿈은 할랄 한식을 케밥처럼 누구나 알도록 전 세계에 알리는 거예요. 한식이라곤 김치, 비빕밤밖에 모르는 외국인에게 떡볶이, 김치찌개처럼 진짜 한국인이 먹는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 거죠. 더구나 할랄 인증 식재료로 만들어 전 세계의 수많은 무슬림이 마음 편히 한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2017년 중국이 사드(THAAD) 보복 조치로 중국인의 한국 여행을 제한하면서 국내 주요 관광지에서 ‘유커(중국 관광객)’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들의 빈자리는 오래지 않아 금세 채워졌다. K-POP, K-Drama 등 한류를 따라 한국을 찾는 동남아 관광객이 늘면서다. 글로벌 여행 가격 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네시아 여행객이 가장 많이 검색한 여행지는 한국의 서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다양하고 색다른 한류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많은 동남아 관광객이 한국을 찾고 있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이들 대부분은 한국 여행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로 먹거리 때문이다. 한식이 짜고 맵다는 식의 입맛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먹을 수 있는 한식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이 많은 동남아 관광객은 돼지고기, 술 등을 먹지 않는데 한식에선 돼지고기가 주재료로 활용된다. 주재료뿐 아니라 장류, 소스 등에도 금기시되는 성분이 일체 함유돼선 안 된다. 그러나 한식 중엔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한국에 여행 와서 정작 한식을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동남아 관광객이 매우 많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무슬림도 먹을 수 있는 한식을 만들겠다고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김현주 할랄푸드코리아 대표(49)다.
기술·원료 공들인 첫 사업… 퇴사한 직원의 무분별한 카피로 매출 급감 이어 배신감에 ‘상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국민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어요. 무슬림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코란(이슬람 경전)에서 금하는 식재료를 일절 먹지 않죠. 그러나 지구상에는 수많은 식재료로 만들어진 요리가 수도 없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먹어선 안 될 식재료나 성분이 함유된 음식을 무슬림 스스로도 모르고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이러한 우려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할랄’ 인증이에요. 무슬림이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거죠. 할랄 인증만 있다면 종교적 신념을 훼손당하지 않고 마음껏 식사할 수 있어 무슬림에겐 꼭 확인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예요.”
김 대표는 국내에 할랄 푸드를 소개하고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온 선구자다. ‘할랄(halal)’이란 아랍어로 ‘(신이) 허용하다’라는 뜻으로, 할랄 푸드는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되는 음식을 일컫는다. 김 대표가 할랄푸드코리아를 세울 2017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할랄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부재하다시피 했다. 김 대표는 해당 사업을 시작하면서 할랄에 대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공부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새로운 도전과 성공 뒤에는 이전의 실패를 딛고 쌓은 내공이 있었다.
“할랄 푸드 사업이 인생의 첫 사업은 아니예요. 처음에는 천연 수제 비누를 제조해 판매하는 것에서 시작했죠. 2002년엔 수제 비누가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제품이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 소소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고 수제 비누 만들기가 취미로 각광받지도 못할 때였죠. 그래서 수제 비누 사업에 뛰어 들었어요. 남들과는 다른 아이템으로 승부하고 싶었거든요.”
“수제 비누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재료는 모두 천연에서 유래한 유기농 원료를 고수했고 화학공학 박사에게 비누 제조기술을 정통으로 배웠죠. 온라인 쇼핑몰에서 수제 비누를 판매하기도 하고 공방을 열어 비누 만들기 강좌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제품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이러한 노력 끝에 국내 첫 수제 비누 브랜드를 출시하게 됐어요.”
수제 비누 사업은 김 대표의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언론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인터넷 카페의 회원 수가 3만명 수준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백화점에도 제품을 납품하게 되면서 매출이 크게 늘기도 했다. 국내 최초 천연 수제 비누라는 타이틀 아래 김 대표의 수제 비누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은 잠시였다. 후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수제 비누 시장의 경쟁이 급격히 심화됐다. 고가의 천연재료를 고집한 김 대표의 수제 비누는 경쟁력을 잃어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때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매출이 급감했다. 결국 경영난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김 대표는 야심차게 시작했던 첫 사업을 접어야 했다.
“수제 비누 회사 문을 닫을 때 제 인생도 닫히는 것만 같았어요. 나름 의욕을 가지고 준비한 회사였고 재료부터 제조, 판매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서 준비했던 만큼 사업을 잘 일궈 나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후발주자들의 반격이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비록 비싸더라도 해외에서 공수해온 천연 유기농 원료로만 수제 비누를 만든 저희와 달리 후발 업체들은 비슷한 성분의 저렴한 재료로 비누를 만들더군요. 당시 소비자들이 재료 성분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을 때라 가격 면에서 저희 제품이 경쟁에서 너무 불리하더라고요. 결국 저희 제품은 시장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말았어요.”
김 대표는 이때부터 사람을 믿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수제 비누 성분과 제조기술만 배우고 퇴사한 뒤 유사한 업체를 세워 하루 아침에 경쟁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어떤 후발 업체는 그 길로 몸집을 키워 자체 생산공장까지 지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다 보니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김 대표는 회상했다.
“첫 사업을 8년 만에 정리하게 되면서 상심이 컸어요.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수제 비누 사업에 매진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어요. 이대로 무너지고 싶지도 않았고 보란 듯이 성공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로 다짐했죠.”
한국 찾는 무슬림, 먹을거리 크게 제한된다는 사실에 착안… 틈새 시장인 할랄 한식 개척
김 대표가 재기하기 위해 선택한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은 바로 음식이었다. 이른바 ‘쿡방’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을 뿐더러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김 대표는 먹거리로 승부를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길로 푸드트럭을 장만해 주요 관광지를 다니며 먹을거리를 팔았다. 그 때 김 대표는 운명처럼 무슬림 유학생을 만나게 됐다.
“대학생 여럿이 제 푸드트럭으로 찾아와 음식을 주문했던 때였어요. 한국인들 사이에 외국인들이 껴 있었죠. 무리 중에 이집트에서 온 무슬림 유학생이 있었는데 한국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더라고요. 국내 유명 관광지엔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볼거리가 참 많지만 정작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다면서 어쩔 수 없이 여행용 가방 가득 할랄 푸드를 챙겨왔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 순간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어요. 할랄 푸드라는 틈새시장에 도전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거든요.”
곧바로 김 대표는 할랄 푸드 사업에 대해 꼼꼼히 조사했다. 해당 사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시장성이 훨씬 뛰어났다. 국내 거주 무슬림 인구는 약 30만명에 달한다. 거기다 한류의 영향으로 무슬림 관광객도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국내에는 할랄 푸드 전문점이나 업체가 거의 없고 그마저도 서울 이태원에 집중돼 있다. 국내의 할랄 푸드 시장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공급은 매우 적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할랄 푸드를 통해 한식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할랄 인증을 받은 식재료로 만든 한식이라면 무슬림 관광객과 국내 거주 중인 무슬림이 걱정 없이 식사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한식의 맛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듯 김 대표는 ‘한식의 할랄화’를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할랄 한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어요. 할랄 한식 메뉴를 개발하는 데에만 2년 넘게 소요됐으니까요. 우선 할랄 인증 식재료를 구하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한식은 간장, 고추장 등 장류를 베이스로 한 음식이 많은데 이 같은 장류가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생산 과정에서도 다른 성분이 섞이지 않아야 하거든요.”
“할랄 인증 장류를 구했다고 해서 메뉴 개발이 마무리되는 건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맛을 찾는 과정이 남은 거죠. 할랄 인증을 받은 식재료들은 기존 한식에서 사용하던 식재료와 맛이 확연히 달라요. 그러다 보니 한식 메뉴 본연의 맛을 구현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한식 본연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려 노력했죠.”
오랜 노력 끝에 할랄 한식을 개발한 김 대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돌입했다. 야심차게 선보인 할랄 한식 도시락은 출시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국내 여행사나 단체, 무슬림 관광객을 중심으로 해당 도시락 주문이 빗발쳤다. 또 푸드트럭 등을 활용한 케이터링 서비스도 제공해 무슬림들에게 한식의 맛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올해 2월부턴 이태원에 가게를 내고 할랄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식) 치킨, 떡볶이, 파전, 김치찌개 등 할랄 한식을 먹은 무슬림들이 맛있다고 칭찬해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곤 해요. 어떤 무슬림은 일주일 내내 찾아와 같은 메뉴를 먹기도 했어요. 물론 맛있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죠. 참 감사했어요.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내를 찾는 무슬림의 발길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 버텨볼 생각입니다.”
“할랄 푸드·식품 전시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전시회를 찾은 많은 내·외국인에게 할랄 한식을 판매하고 맛이 어떤지 물어봤죠. 그 때 한 해외 바이어가 할랄 한식을 하루 빨리 상품화해서 팔아달라면서 극찬을 해주더군요. 너무 기뻤죠. 그 말에 힘을 얻어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동남아·중동 지역에 할랄 한식을 알리기 위해서 해외 전시회를 준비 중이예요. 현지에 할랄 한식당을 오픈할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많은 무슬림이 한식을 더 많이 알고 더 사랑하도록 앞으로 부단히 노력해나갈 예정이에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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