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과 추진력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 인생의 책임자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죠. 남의 말은 조언이자 참고일 뿐이에요. 저도 과거에는 남의 눈치를 많이 봤지만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혹은 행복하지 않은지 잘 아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제 자신이죠.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요. 저는 스스로의 선택을 행동으로 옮겨 1%에서 100%가 됐을 때 성공할 수 있었어요.”
유도선수 인생을 마치고 후학을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안철웅 관장(39)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했고 그때마다 소신껏 삶의 방향키를 움직였다. 현재 그는 경기도 하남 미사 신도시에서 안철웅 유도&주짓수 멀티짐 관장으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다지고 있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안 관장은 밝혔다.
안 관장은 한양대 재학 시절 남자 73㎏급에서 3위 안에 들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국군체육부대 상무 소속이던 2007년에는 실업유도 추계전국실업유도최강전에서 73kg급 금메달을 따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안 관장은 삼보와 주짓수 국가대표 선수로 전향해 각종 국내외 대회를 휩쓸며 새로운 영역을 넓혀갔다. 안 관장은 2011년 아시아오픈 삼보선수권대회 컴뱃삼보 74kg급 ‘금메달’을 획득하고 같은 해 제2회 동아시아삼보선수권대회 스포츠삼보 남자 82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인 2012년 월드 프로페셔널 주짓수컵 아부다비 남자 화이트벨트 83kg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렇듯 안 관장이 한 종목도 소화하기 힘든 격투기에서 여러 종목으로 연이어 큰 성과를 낸 배경에는 크고 작은 시련에도 운동선수로서의 외길을 걸어온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유도 인생 넘어 주짓수·삼보까지 격투 종목 큰 성과 낸 외길인생
안 관장은 보성중학교 1학년 재학시절 유도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보성고등학교 유도부를 거쳐 한양대학교 유도부, 국군체육부대(상무) 유도부, 수원시청 유도 실업팀에 소속돼 무수히 많은 유도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유도부와 선수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점이 많았다고 전했다. 매번 시합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내야 했고 체력 훈련이 동반되는 고된 시스템이었다. 안 관장은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선수생활 시절에는 하루에 3, 4번 운동은 기본으로 했어요. 새벽에는 기록을 재면서 뛰는 체력훈련을 하고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위주로 했죠. 저 같은 경량급 선수의 경우 경기 전에 6~7kg 체중 감량은 기본이에요. 체력단련을 위해 남들이 모두 자고 있는 시간에 고무튜브를 기둥이나 전봇대에 걸어두고 끊어질 때까지 당기는 훈련도 하곤 했죠.”
“저는 국군체육부대(상무) 유도부를 제대하면 실업팀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73kg급은 대한민국 유도의 황금 체급으로서 다양한 선수가 많아 경쟁률이 높아요. 당시 유도 실업팀의 인원이 한정 돼 부담감도 컸죠. 하지만 훈련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경기에 대한 압박감을 극복하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어요. 그 결과 수원시청 유도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죠.”
안 관장은 유도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새로운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도록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그는 모교인 보성고에서 훈련하면서도 시간을 내 수원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끊임없이 달려왔다고 말했다.
“사실 많은 선수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기회가 몰려 있어요. 따라서 어디 코치로 가든, 지도자로 가든, 그 시기 선수 시절에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죠. 저는 수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경기 훈련과 학업을 병행했어요. 당시 제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대학원 졸업을 잘 마칠 수 있었죠.”
안관장은 유도선수 시절 부상과 불운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선수권 대회를 나갔지만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무력감으로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때 가족의 사랑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선수 생활 중 안와 골절을 입으며 입원치료를 병행해야 돼서 경기를 나갈 수 없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다른 선수들이 경기에 나가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을 보며 저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입원 기간 동안 가족들이 옆에서 든든한 힘이 돼주었던 덕분에 그때의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죠.”
이후 안 관장은 유도 금메달의 꿈을 접고 서른 즈음에 은퇴했다. 그리고는 유제품 제조판매 회사에 영업관리직으로 취직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직장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쳇바퀴 직장생활에 회의… 개인체육관 설립해 후학양성 열정 쏟아
“유도 선수에서 은퇴하고 2012년도에 한 유제품 제조판매 회사를 영업관리직으로 입사해 7년간 근무했어요. 선수 생활만 하다가 사무실에 앉아서 제안서, 결산업무, 기타 서류 업무들을 해내며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당시 대형 마트를 비롯해 점포의 담당 점장, 바이어들을 만나며 여러 일을 성공시키기도 했죠.”
안 관장은 운동과는 전혀 다른 직장생활에 그런대로 적응하면서 제법 무난히 경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그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직장생활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게 느껴졌다. 회사 생활을 하던 중 기회가 되면 틈틈이 대회에 참가했던 것도 운동을 통해 삶의 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안 관장은 강조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2016년도까지 유도시합에 출전했어요. 이 때문에 주변에서 일 안 하고 운동하느냐는 따가운 시선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직장 생활만 하면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회의감이 들었던 터라 제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던 시절이었어요. 또 회사에서 한 가지 일을 완성하고 해내면 칭찬보다는 다른 것에 대한 요구가 들어오면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많이 떨어지던 때였지요.”
결국 안 선수는 직장 생활을 끝내고 개인 체육관 ‘안철웅 유도&주짓수 멀티짐’을 오픈했다. 그는 지금까지 몸담았던 유도에서 종목을 바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유도와 가까운 삼보로 진출해 제2의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유도와 주짓수, 삼보 등에서 활동해온 노련함으로 경기에 출전해 도전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기도 하남 미사 신도시에서 제 이름을 걸고 유도와 주짓수 체육관을 오픈했어요. 체육관 오픈 당시 마치 바다거북이가 육지에 올라가는 기분처럼 새로운 도전으로 마음이 설렜죠. 지금은 체육관에서 6세부터 6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에게 유도와 주짓수를 수련시키는 일에 힘을 쏟고 있어요. 체육관을 오픈한 이후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니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오더라고요.”
“저는 2011년 유도에서 삼보로 종목을 바꾸고 같은 해 동아시아 삼보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듬해인 2012년 아시아 선수권 은메달을 따냈어요. 비록 유도에서 종목을 바꿨지만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해야 행복할 수 있다며 그래야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체육관 오픈 당시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어요. ‘유도와 주짓수 두 가지 종목을 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 ‘대기업 정직원을 왜 때려치우고 체육관을 하느냐’ 등의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남의 말은 조언이자 참고일 뿐이고 결론은 제가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의 말에 크게 흔들렸지만 이제는 저를 위해 노력하는 추진력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