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광주의 이미지는 민주화 운동이다. 수차례에 걸쳐 영화와 소설의 형태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광주에 소재한 수많은 기념관과 기록물이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광주의 역사는 1980년 5월 18일에 한정돼있지 않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지방은 가장 맹렬한 항일 풍조가 자리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1929년에는 나주에서 광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우리나라의 여학생을 희롱하자 분노한 ‘광주일반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주축으로 학생 항일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1929년 10월 광주에서 점화된 학생 항일운동은 곧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 여파로 1930년 1월 개학과 동시에 전국에서 시동한 학생 항일운동은 5만4000여명의 학생이 참여하며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 항쟁으로 남았다.
현재 광주에 소재한 항일 학생운동 기념관은 광주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과 광주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위치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단 두 개소뿐이다. 광주엔 6·25전쟁 전적지도 남아 있다.
아는 사람만 추천하는 광주의 첫 얼굴 ‘1913 송정역 시장’
여행자의 마음으로 도착한 광주의 첫인상은 뜨겁고 바쁘다. 같은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제각기 갈 길을 찾아 흩어졌고 기차역과 맞닿은 지하철역을 지나는 사람들로 주변이 채워진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도착하면 첫 번째로 맞이하게 될 장소는 광주역이 아닌 광주송정역이다. 광주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송정역에 들른다면 송정역 시장을 먼저 가라고 조언한다. 송정역 시장의 정식 명칭은 ‘1913 송정역 시장’이다. 현지인들은 ‘일구일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구일삼에는 107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존 상점 37개가 남아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시장 초입에는 늘 긴 줄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영명국밥’의 줄이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한적한 시장에서 유독 한 가게에만 줄이 늘어선 것을 발견한다면 그 가게가 바로 영명국밥이다.
가게 안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 집기들이 보이는 주방이 한 쪽으로 열려있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단 넓은 공간이 가게 안에 마련돼 있다. 모듬국밥 하나를 주문하면 식탁에 풋고추와 양파, 배추김치와 석박지가 깔린다. 여기까지는 여느 국밥집과 다르지 않다. 흰 쌀밥과 김치를 맛보고 있으면 어느새 상 위에 국밥이 올라온다.
국밥 안에는 오소리감투·곱창·새끼보를 비롯한 부속고기와 피순대, 부추·파·콩나물 등 채소가 듬뿍 들어있다. 빨간 양념장으로 간이 맞춰져서 나온다. 채소가 많이 들어간 덕에 여느 순댓국보다 개운한 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새우젓이 함께 나오지만 딱히 첨하지 않아도 간이 알맞다.
특히 ‘암뽕순대’라고 부르는 피순대는 케이크처럼 부드러운 식감과 특이한 채소향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국밥의 독특한 향이 이 암뽕순대의 향이다. 암뽕은 돼지의 자궁을 뜻하는 말이지만 영명국밥에서는 대창을 사용한다. 쫄깃한 부속고기와 아삭한 콩나물의 식감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그릇이 동난다. 모듬국밥의 가격은 8000원이다.
기대 이상의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이동할 곳은 ‘문화전당역’이다. 택시로 30분 거리, 지하철로 24분 거리다. 문화전당역은 옛 전남도청과 인접해있다. 역 이름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따서 지어졌다. 역 출구로 나서면 바로 아시아문화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은 전통 기와집의 마당과 같이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2005년 착공해 옛 전남도청 자리에 2015년 완공됐다.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전시 등 개최하며 광주 시민들의 볼거리를 책임져 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도종환 문체부장관이 도청 별관을 비롯한 옛 전남도청의 건물 대부분을 다시 복원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함이다. 정상적으로 완공된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옛 건물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광주 시민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강행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상징적인 구조물인 미디어월도 철거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민주화운동 이미지 한정된 광주의 진짜 모습은 일제시대 학생 항일운동의 성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을 뒤로 하고 나오면 큰 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1929년 11월3일 학생 항일운동 당시 3만여명의 학생이 장작개비와 곤봉 따위를 손에 쥐고 행진했던 충장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오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설명에 따르면 광주 학생들의 항일 의식은 1926년 성진회(醒進會)를 결성하면서 성숙해갔다.
성진회는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광주농업학교·광주사범학교·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목포상업학교 등을 하부조직으로 둔 둔 항일 결사체다. 이들은 일본인 교사들의 한국 학생들에 대한 차별에 대항해 시위와 휴교운동을 주도했다. 광주 학생들의 동맹휴교가 확대되자 학부형·동창회 및 광주고등보통학교의 졸업생까지 개입된 동맹휴교중앙본부가 발족되기도 했다. 학생 동맹 휴교는 매우 조직적이며 지속적인 태세를 갖추게 됐고 동맹휴교 정신도 명백해져 식민지 노예 교육을 거부하고 우리 민족의 해방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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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의 골목은 가지각색의 조형물과 작품들로 가득 차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펭귄마을 초입, 광주 평화의 소녀상, 광주의 예술인들 벽화, 펭귄마을 시시한 골목 ⓒ스카이데일리 |
광주 학생들의 본격적인 항일 운동은 1929년 10월30일 오후 5시반경 광주 발 통학열차가 나주에 도착했을 때 시작점을 맞았다. 이날 나주역에서 통학생들이 집찰구로 걸어 나올 때 일본인 학생 몇 명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학생 박기옥·이금자·이광춘 등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희롱했다.
그 때 역에서 같이 걸어 나오고 있던 박기옥의 4촌 남동생이자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생인 박준채 등이 격분해 이들과 충돌했다. 그때 출동한 역전 파출소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며 박준채를 구타했다.
당시 사건으로 반일감정이 격화됐고 이후 수차례의 유혈충돌이 이어졌다. 특히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최상현이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의 단검에 의해 코와 안면에 상처를 입자 분개한 한국인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을 쫓아가 구타했고 양 학교간의 대대적인 대치가 벌어졌다.
이날 오후 사태가 소강된 이후 광주보통고등학교 학생들은 가두시위를 결행하기로 결정한다. 이날의 가두시위를 기점으로 학생 항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매년 11월3일 광주 충장로에서는 이날을 기리는 재연 행사가 진행된다.
충장로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학생운동을 한 도로가 정확히 지금 이 도로는 아니다”며 “명칭은 같은 충장로이긴 하지만 큰 길은 아니고 광주일고에서 전남도청까지 통하던 작은 길을 충장로라고 불렀었다”고 안내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남도청 앞의 대로가 아닌 광주일고 앞의 독립로에서 중앙로를 지나 옛 전남도청에 이르는 길이 있었다.
충장로 일대는 광주 최대의 상업지역답게 곳곳에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맛집’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1960년대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제일반점’의 ‘제일짜장면’은 이곳의 명물로 꼽힌다. 제일짜장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간짜장’과 비슷한 모양새다. 면과 소스가 각기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고 취향 껏 덜어먹을 수 있게 작은 국자도 함께 제공된다. 소스에는 돼지고기와 채소가 아끼지 않고 들어있다. 큼직하게 썰린 고구마가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구마 맛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짜장의 단맛과 알맞게 어우러진다.
탕수육의 형태는 여느 탕수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입 베어 물자 새콤달콤한 소스의 향이 잘 살아있다. 제일반점 탕수육에선 탄맛이 느껴진다고 느낄 수 있지만 튀김옷 배합이 달라 느껴진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 자세히 느껴보면 오히려 곡물의 고소함에 가깝다.
광주을 대표하는 젊은층 핫플레이스 펭귄마을, 지역 대표별미 상추튀김 맛집 즐비
다음 행선지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이다. 펭귄마을은 충장로와 자동차로 10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다. 펭귄마을에는 이름과 달리 펭귄이 없다. 다만 펭귄 벽화와 조형물들이 있다. 펭귄마을이 있는 양림동은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어느 날 버려진 노후 주택 중 하나에 화재가 일어났고 그 화재로 말미암아 마을 전체는 폐허처럼 변해갔다. 그러던 중 다리가 불편한 한 노인이 앞장서 마을 사람들과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40여년 전의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친근함을 담아 그가 걷는 모습을 펭귄과 같다고 불렀다.
이윽고 주변에는 텃밭이 조성됐고 그 농작물들을 주민들과 나누기도 했다. 마을의 사람들은 노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 텃밭을 펭귄텃밭이라고 불렀다. 이후 마을전체가 펭귄마을로 불리게 됐다.
펭귄마을을 가리키는 작은 표지판 옆에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마련돼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광주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다. 광주 동·서·남·북·광산구 등 5개구에 각각 조성된 상징물이다. 펭귄마을 입구에 있는 소녀상은 이이남 작가가 제작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16세 모습과 92세 모습을 함께 표현했다.
이 소녀상은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노인이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연결성을 나타낸다. 어린 소녀가 노인으로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과거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소녀의 비어있는 옆자리는 모든 후손들의 자리다.
소녀상을 지나 들어선 펭귄마을의 골목은 눈이 시리게 화려한 색의 벽화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재기 넘치는 벽화를 두른 집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을 연상케 한다. 폐품으로 만든 작품들이 걸려있는 골목을 지나면 어느새 80년대 복고풍을 재현한 골목이 나온다. 벽에는 ‘긍께 머시라고 그래싸쏘’ ‘겨울 멋쟁이 얼어 죽고 여름 멋쟁이 떠서 죽는다’ 등의 정감 어린 글귀들이 적혀 있다.
‘시시(詩詩)한 골목’이라는 이름의 골목도 있다. 골목 벽에는 김현승 시인을 비롯한 광주 출신 시인들의 시가 적혀있다. 골목 초입에 적힌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불빛 짙어 오것다’ 등의 시구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벽화와 작품, 시가 어우러진 펭귄마을은 광주의 예술가들의 참여로 조성됐다.
펭귄마을은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만큼 세련된 카페와 맛집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상추튀김을 추천한다. 상추튀김은 광주 특유의 음식이다. 상추를 튀긴 것이 아닌 상추에 오징어튀김을 싸먹는 음식이다. 이 획기적인 식문화가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기록된 바 없으나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튀김을 양파 초절임과 함께 상추에 싸먹는 것은 천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상추튀김은 조경규 작가의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소개돼 유명세를 탔다. 상추쌈과 양파초절임의 조화라면 제일반점에서의 식사로 이미 배가 부른 상태일지라도 오징어튀김 한 접시를 거뜬히 비울 수 있다. 가게에서는 떡볶이·순대 등의 분식류와 소주·맥주 등 주류도 함께 판매한다.
북한군 진격에 목숨 걸고 민간인 지킨 국군의 희생 서린 ‘산동교’
신창동에 자리한 ‘산동교 친수공원’은 광주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여행 필수코스다. 산동교는 6·25 전적지다. 전쟁 당시 북한군이 물밀듯이 몰려왔고 하천을 건너는 다리는 일대에서 산동교가 유일했다.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다리를 끊어야 했지만 문제는 아직 건너지 못한 피난민들이었다.
마을을 유린하는 전차들이 시시각각 밀려오고 있기에 교량 폭파작업을 착수하려했지만 결국 피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리는 유지됐다. 곧이어 당도한 북한군의 탱크 3대와 국군의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우리 군은 로켓포로 맞섰지만 정규군인 인민군에 맞서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시간 남짓의 공방이 이어지고 우리 군은 전멸하고 말았다. 산동교는 현재 광주 유일의 6·25 현충시설로 지정돼있다.
과거 산동교는 아직 그 자리에 굳건히 남아있다. 다만 교통을 위해 인근에 새 산동교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산동교 친수공원이 조성됐다. 한 눈에 훑을 수 없을 만큼 탁 트인 넓은 공원이다. 산동교 아래 친수공원의 행복은 현 세대의 것이고 그 행복은 우리 이전 세대의 희생 아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엄도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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