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업규제3법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 법안을 추진 중인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에도 여당은 예정대로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앞으로 우려 이상의 반응이 나타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민 여론이 부작용이 많다는 방향으로 기우는 만큼 정치권 역시 이에 가세해 반발의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재벌저격수’ 양향자의 일침 “LCD시장 1위 앗아간 中기업 기술탈취 사건 잊지 말아야”
“이번 입법이 해외자본의 경영개입 통로가 돼 우리의 소중한 핵심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16일 기업규제3법 중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과 관련해 당 최고위원회․전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이 같은 작심발언을 했다. 그는 “(여권은) 기술패권 전쟁을 단순 투정으로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하이디스의 아픈 기억이 있다. 중국 기업이 경영권을 갖게 되자 기술과 인력을 빼돌리고 결국 LCD시장 1위까지 빼앗긴 악몽 같은 기억이다”며 3% 룰 보완을 재차 촉구했다.
양 최고위원은 삼성전자 임원(상무)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 영입인재로 입당해 ‘재벌저격수’라는 수식어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그동안 친정이나 다름없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국민적 신뢰를 쌓아왔다. 양 최고의원은 지난 7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 산업재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혹이 있다며 “일류기업 삼성을 만든 건 삼성을 1등으로 만들어놓겠다는 노동자들의 자부심이었다”며 산업재해 관련 문제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재계는 양 최고위원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3% 룰로 인해 해외자본이 국내 대기업 이사회를 잠식해 핵심기술을 아무 걸림돌 없이 대량으로 탈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이사진은 기밀유지 의무가 있지만 기술탈취 목적으로 들어온 해외 경영진이 이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양 최고위원이 언급한 하이디스의 경우 현대전자의 TFT-LCD 사업부를 모태로 1989년 설립된 회사다. 2002년 말 일본 기업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중국 BOE에 매각된 뒤 기술자와 기술 4000여건이 유출됐다. BOE는 회의마저도 한국어로 할 정도로 치밀함을 보였다. 그 결과 BOE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세계 최대 LCD 패널 제조사가 됐다.
반도체, LCD 등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 특히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군침을 흘리는 ‘1순위 먹잇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3% 룰이 적용될 경우 세계 최고수준의 한국 기술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자율주행차량 등 해외 기술유출 사건은 121건에 달했으며 이 중에는 심지어 정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 29건도 포함됐다.
유출에서는 전기․전자 분야가 61건(50.41%)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외에 조선․자동차(22건․18.18%)나 기계(13건․10.75%) 등도 적지 않았다. 기술 뿐 아니라 국내 기술자가 유출되는 사례도 많았다. 일례로 과거 국가핵심기술인 플라스틱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보상회로를 만드는 A기업 전 직원이 퇴사 직전 관련 자료를 인쇄하고 사진을 찍어 중국 기업에 넘긴 일이 있었다.
“상법개정안 통과 시 ‘소득창출→소비발생→투자증가→일자리창출’ 경제동맥 막힌다”
상법개정안 등 공정경제3법으로 인한 피해는 비단 재계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게 사회 각계각층의 공통된 반응이다. 상법개정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조업은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기에 제조업이 흔들릴 경우 국가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이는 일반 국민에까지 영향을 미쳐 종국엔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앞서 문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작년 10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장관회의에서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기반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국제) 흐름에 더 크게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무역의존도(경제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는 일본의 2배 이상이다. 작년 7월 한국무역협회·국제통화기금(IMF)·통계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의존도는 2017년 기준으로 68.8%에 달한다. 이는 일본(28.1%)의 약 2.4배에 달하는 수치다. 수출의존도도 37.5%로 주요 20개국(G20) 중 네덜란드(63.9%)․독일(39.4%)에 이어 3위 수준이다.
이는 해외에 내다팔기 위한 양질의 상품을 제조하지 못할 경우 선순환구조가 붕괴돼 결국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순환구조는 소득이 창출되면 소비가 발생하고 투자도 증가해 일자리가 창출되는 이상적 경제시스템이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이 상품을 해외에 팔아 자사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면 직원들은 시장에서 식료품 등 구매를 위해 자본을 소비하게 되고 지역상점은 소비를 토대로 원활한 재화공급을 위한 직원고용에 투자해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나 수출을 위한 제조업이 무너지면 첫 번째 단계인 소득창출부터 불가능해져 선순환 동맥이 완전히 끊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 핸드폰 등이 국제시장에서 선전하는 배경에는 ‘세계 1위의 품질’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다량의 기술유출이 불가피한 상법개정안이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은 실로 파멸적이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학계에서도 무역위축이 민생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조업 위축에 따라 올해 4월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24.3%나 줄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발표에 대해 “가계와 기업이 버틸 수 있도록 하는 데 (정부) 지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고용유지·실업보호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KDI 출신 경제학자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힘의 논리에 따라 시장 경쟁 및 거래관행이 왜곡되는 걸 시정한다는 취지에는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누구도 우리 기업들이 법 개정 때문에 시장경쟁력을 잃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도 줄도산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코스닥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은 “상장회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상장기피 요인으로 작용해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량 중소·중견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건전한 성장을 이루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경제구조 구축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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