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기가 막힌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집 살 길은 보이지 않는 게”
20·30대 청년층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만화가 기안84(본명 김희민‧36)가 연재 중인 웹툰 작품 ‘복학왕’에서 등장한 대사다. 작품 속 주인공은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해당 대사를 읊조린다.
현 정권 열성지지층 내에서 달(moon)은 문 대통령을 의미하기에 당시 해당 장면을 두고 기안84가 사실상 현 정부 부동산정책을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해당 연재분 댓글에도 “이제는 자수성가해서 내집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등의 탄식 섞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최근 정부 부동산정책에 대한 국민 원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국민 현실과 거리가 먼 임대차3법이 여당 단독의결로 통과된 이후에는 원성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나이와 성별, 지역 등을 불문하고 하나 같이 비슷한 반응인 가운데 여권 내에서 국민 정서와 동 떨어진 발언들이 쏟아져 나와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월 수십만원 주거부담 키운 임대차3법에 국민원성 고조…與 “월세가 어때서”
임대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다수 포함된 임대차3법 통과로 시장에선 전세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규제를 받아 피해를 입느니 차라리 월세로 세를 놓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피해는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들에게로 전가됐다. 얼마 전 서울 가양동에서는 전세매물이 등장하자 무려 9팀이나 줄을 서서 대기하고 결국 제비뽑기로 세입자를 결정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은행 전세자금대출 이율은 대부분 3% 이내지만 시장에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전환율은 최소 5% 이상이다. 정부가 전·월세전환율을 2.5%로 설정하긴 했지만 강제성이 없고 전세시세를 높게 책정하면 그만이라 사실상 의미 없는 수치에 가깝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전세로 집을 얻는 게 훨씬 이득인 셈이다.
국민 피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법안을 통과시킨 여권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국민 현실과 동 떨어진 ‘월세세상’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 사태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일례로 앞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개인 SNS를 통해 “정책과 상관없이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로 전환하는 중이다”며 “(이 현상은) 매우 정상적이다.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고 강변했다.
그는 “전세 제도가 소멸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의 의식 수준은 과거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며 “전세 제도는 세입자에게 일시적 편안함을 주고 임대자에게는 지대 추구의 기회를 주지만 큰 금액의 목돈이 필요하다.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저금리 시대, 서민들 입장에서는 월세가 전세보다 손쉬운 주택 임차 방법이다”고 첨언했다.
아울러 윤 의원은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전세를 사는 사람도 매월 일정 이자를 내기에 대부분의 국민이 월세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주장도 내놨다. 그는 “10억원 아파트에 5억원 대출자도 분명 월세 사는 분이다. 집주인이라고 착각할 뿐이다”며 “국민 누구나 일정 금액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은행대출을 통해 월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새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윤 의원 주장에 대다수 국민은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는 “은행 이자와 월세 중 월세 이자가 훨씬 적다”, “월세를 살아보면 할 수 없는 얘기다”, “전세로 살면 매월 월세 안 나가고 전세대출 받아도 이자가 적어 훨씬 살기 편하다” 등의 반론이 쏟아져나왔다. “전세는 원금이 까이지 않는다는 면에서 월세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걸 모르나” 등의 지적도 있었다.
윤 의원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SNS를 통해 “(저도) 월세 생활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는 “전세는 선(善)이고 월세는 악(惡)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의원이 월세를 산다고 한 집은 지역구에 마련한 것이고 실상은 다주택자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비판까지 불거져 나왔다.
작년 7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공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자료에 따르면 그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 연립주택(159㎡·3억8600만원)과 마포구 공덕동 오피스텔(1억9000만원)을 소유한 엄연한 ‘다주택자’였다. 윤 의원이 신고한 총 재산은 13억7219만원이었다. 그나마 지역구의 2017년 신축 아파트(59㎡·17.8평)도 월세가 아닌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반(半)전세’였다.
윤 의원 해명은 불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온라인에서 커뮤니티 등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내로남불, 위선에 치가 떨린다”, “소급해서 국회의원을 다시 뽑자” 등의 수위 높은 반응들이 빗발쳤다. 한 시민은 “집 한 채도 없이 저축해야 할 돈으로 월세 사는 서민들을 두 번 죽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공분 기름 붓는 정책옹호 무리수 발언…전문가들 “임대차3법 철회돼야”
윤 의원 외에도 여권에서는 다수 의원들이 국민 정서와 동 떨어진 발언으로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국회 본회의에서 “저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내는 진짜 임차인이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상가 월세 소득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곧장 입장문을 내고 “근 20년 간 무주택자로 임차인인 것도 맞고 아파트 분양을 받아 내년이면 주택 소유자가 되는 것도 맞고 상가건물이 있어 월세를 받고 있는 것도 맞다”고 해명했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 소속 김진애 의원도 “여러분들이 고가 아파트에 살고 부동산 값이 올라도 문제없다. 다만 세금만 열심히 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이후 김 의원이 강남에 다세대주택 3채, 인천에 단독주택 1채 등 총 4채를 가진 다주택자로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사태가 확산되자 그는 “20년 전 어쩌다 다주택자가 됐고 종부세 납부한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이나 무조건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태도 대신 여권이 직접 나서 정부 부동산 정책 철회와 관계자 경질 등을 추진하는 게 국민적 공분을 식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야권 내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주를 이루고 lT다.
서울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낸 김현아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다 최악이었지만 국민 분노를 키운 분수령은 6·17 대책이라고 본다”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김상조 청와대정책실장 등 이 정책의 가장 책임 있는 메신저들을 바꾸라고 누누이 얘기했지만 안 하고 있다. 파국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높은 전·월세전환율도 언급했다. 그는 “전환율은 시중금리뿐만 아니라 재산세, 소득세, 집 유지·보수 등 각종 비용을 감안해야하기 때문에 금리와 같아서는 안 된다”며 “통상적으로 전세가 있는 나라라면 시중금리의 2.5~3배 정도 매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월세전환율을 시중금리 비율로 만들겠다는 건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다. 전·월세전환율을 설정하면 전세값을 올려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 그만이다”며 “결국 해법은 전세물량을 늘리는 것 뿐인데 이를 위해서라도 임대차3법은 철회되거나 상당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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