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을 정말 오래 했는데도 한 번도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똑같은 업스타일을 해도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이고, 또 같은 사람인데도 헤어스타일에 따라 다른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미용은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어요. 미용 한 분야에만 오래 있었는데도 지겹지 않은 이유는 매번 새롭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저는 미용이 정말 천직인가봐요.”
기능장은 기술 분야 내 최상급 숙련기능 보유자로서 관련 분야의 전반적인 기술을 완전히 숙달한 사람을 말한다. 미용기능장은 11년 이상의 미용 경력을 가진 사람만 응시 자격이 있다. 한 분야의 최고 숙련자에게만 부여되는 자격증답게 전국적으로 미용기능장(미용장) 보유자는 그리 많지 않다.
1974년 15세의 어린 나이로 가위를 잡은 이래 46년 동안 단 한 번도 미용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는 강성자 미용장을 금천구의 한 골목에 있는 그의 헤어숍에서 만났다.
등록금이 없어 이루지 못한 어린 시절 배움에 대한 갈망을 미용으로 이뤘죠
6남매의 맏이였던 강 미용장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진학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당시 학업 대신 기술을 배우려 했던 15세의 어린 소녀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미용 또는 재봉 기술뿐이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고민없이 미용사를 골랐다. 그 선택을 그는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미용사 일을 하다보니 이왕 미용을 전문으로 할 거라면 제 기술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 교수를 해보자 싶었죠. 옛날부터 저는 책 보고 공부하는 걸 좋아했어요. 만약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교육대학교를 가거나 그랬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장래희망 쓰는 곳에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쓴 기억이 있기도 했구요.”
“그런데 미용 대학에서 교수로서 강단에 서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방송통신대학교에서 4년 동안의 학부생활을 마쳤지요. 학부생활을 마친 뒤 미용기능장 자격증이 곧 박사학위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능장을 따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했죠.”
“미용기능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학원을 다니면 비용이 3000만원 정도 들어가요. 기능장을 위해 공부할 때 필요한 가발이나 약품 등만 따져도 500만원이니 가격이 만만치가 않은 거죠. 금전적 여유가 없었을 때라 학원은 포기하고 독학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미용실에서 일을 하고 나서도 12시까지 기능장 공부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또 3시간 정도 연습했어요. 잠은 하루 4시간 정도 겨우 잤던 것 같아요.”
강 미용장은 밤을 새워가며 노력했지만 독학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미용장 취득을 위해서는 필기 시험 합격 이후 4년 안에 실기 시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4년 내에 실기에 합격하지 못하면 필기에 다시 응시해야 하는 것이다. 매해 두 번씩 총 8번의 응시기회가 있는 시험에서 그는 7번 미끄러졌다.
“이대로 끝나나 싶었는데 마침 노동부에서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 길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에 등록했죠. 거기서 두 달 정도 공부한 끝에 마지막 기회인 8번째 시험에서 결국 미용장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어요.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죠.”
미용장 자격증을 취득하자 강 미용장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이론보다 실무가 더 중요한 기술 분야 교육답게 자신만의 기술로 미용장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강의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국 각지의 미용실 원장들이 개인 특강을 요청하러 찾아오기도 했다. 그의 꿈이었던 대학 강의도 해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른 미용장들과 함께 논의해 특기 분야인 아이론 펌과 업스타일 헤어에 대한 NCS 표준 교재를 펴내기도 했다. 지금은 미용 강의 채널인 TV헤어에서 주기적으로 아이론 펌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어루만져주는 미용사가 되려 했어요
강 미용장과의 인터뷰 도중 예기치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 손님이었다. 뜻밖의 손님이었으나 그는 반갑게 맞이했다. 강 미용장은 사람과의 대화가 좋아 미용 일을 시작한 사람답게 손님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가위를 쥔 손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손님은 단정해진 머리 모양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강 미용장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찾아오는 미용실의 비결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있다고 말했다.
“미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기술만이 아니에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미용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에요. 처음에는 기술이 마음에 들어서, 실력이 마음에 들어서 가게를 찾았더라도 나중에는 제가 그분들의 마음을 얻어서 30년이 넘도록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예전에 미용장 자격시험 공부를 위해 김포에서 가게를 연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시간 거리를 찾아오셨던 분도 있어요. 어린아이일 때부터 제가 머리를 만져줬는데 그 아이가 커서 자기 아이들을 데려온 적도 있고요.”
“한번은 한 어머니가 중학생 아이를 데리고 왔어요. 학교에서 두발단속에 걸렸는지 한 쪽이 심하게 밀려있었죠. 머리를 다듬으려는데 아이 표정이 계속 안 좋더니 가위질 몇 번 겨우 했는데 아이가 욕설을 하면서 가게를 뛰쳐나갔어요. 아이 어머니가 정말 당황스러워하시다가 그날 저를 붙잡고 밤 12시까지 하소연을 했어요. 아이의 저런 모습에 너무 속상해하시고 자신의 어려운 가정사 등으로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에 저는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강 미용장은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서 미용사란 어떤 직업인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에 관련한 정보도 줄 수 있어야겠고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면서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학사 학위를 따려고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면서 사회복지학 수업을 들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강 미용장은 손님과의 대화를 위해 틈틈이 책을 읽는다. 그의 가게에는 전문서적과 자기계발서가 여러 권 꽂혀 있다. 그는 그런 지식들이 손님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용사는 모든 직업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을 관할하는 직업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가는 손님이나 제 실수로 뭔가 잘못된 일도 물론 있었죠. 그런 일이 있어야 다음번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잘하게 되는 거니 그런 건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일 힘들었던 건 미용장 시험에 연이어 낙방할 때 남편이 던진 한 마디였어요. 남편이 저한테 미용만 몇십년을 했는데 합격을 못 하냐면서 한숨 쉴 때 정말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한 말이라 그런지 정말 자존심 상하고 속상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떨어진 기억이 오히려 지금 강의할 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운전면허시험도 자꾸 떨어지면 실력이 늘고 왜 떨어졌는지 알 듯이 미용장 시험도 자꾸 떨어진 경험이 있다 보니 학생들 가르칠 때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하면 떨어진다는 경험을 말해주니 더 강의를 잘 들어주는 것 같아요.”
강 미용장은 미용사와 미용장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예전에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직업 진로 강의를 해달라는 문의가 왔었어요. 학교 선생님이셨던 단골 손님이 한 부탁이었죠. 제가 가서 아이들에게 왜 미용사를 하려 하느냐고 묻자 아이들이 예쁜 머리를 만들어내니까 좋다면서 장점만 이야기 하더라구요.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벌써부터 힘든 얘기를 하면 마음이 힘드니까요.”
“제가 그날 제게 염색이나 파마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티켓을 세 장 준비해서 갔어요. 퀴즈를 내서 맞추는 학생에게 주겠다고 했지요. 제가 낸 퀴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직업이 무엇이냐는 거였어요.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좋다고 알려진 직업군은 다 얘기하더군요. 한 학생이 대통령이라고 해서 제가 그보다 더 높은 사람 있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영부인이요! 다른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제가 마지막으로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지 않냐고 묻자 한 아이가 가장 높은 사람은 영부인의 가장 높은 곳, 즉 머리를 만지는 미용사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원하는 대답이었지요.”
강 미용장은 미용사의 ‘사’는 의사의 ‘사’와 같은 한자를 쓴다면서 사람의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부위인 머리를 만지는 직업이라 의사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어려운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용을 배우는 사람들이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미용사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 미용장은 또 미용사의 정점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지만 앞으로도 새롭게 발전시켜나가고 싶은 미용 작품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정말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에 끝이 없어요. 제가 미용장 시험을 보려고 만든 작품만 200작품이 넘어요. 각기 다른 스타일과 각기 다른 기술로 만든 작품이었죠. 미용장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그 경험이 쌓이고 나니 이제 저만의 작품을 또 만들고 싶더라구요. 얼마전에는 제 나름대로 작품 개인전을 했어요. 제 특기 분야인 아이론 펌으로 한 작품 전시회였죠.”
“이제 제 주변의 지인들과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책으로 내보려고 해요. 50명 정도의 사연을 모아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중이죠. 그 중에는 지금도 가게에 찾아오시는 분도 있고 예전에 스쳐지나간 분도 있어요. 전 항상 일기를 써왔거든요. 그것을 바탕으로 사연을 소개하고 싶어요.”
강 미용장은 책을 내고 나면 이제 지방으로 내려가서 전원 속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웃 사람들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좀 더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 십대 소녀 때부터 수십 년간 쉴 새 없이 미용이라는 한 길만을 달려온 강 미용장에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보였다.
“미용장 협회장도 해봤고 하니 크게 아쉬움이 남는 건 없어요. 지금 양평에 조그맣게 집을 짓고 있는데 1층은 가게로 2층은 주거용으로 짓는 중이에요. 마당이 딸린 전원 미용실을 해보는 게 꿈이거든요. 실내는 좀 작더라도 야외라는 장점을 살려서 야외 공간을 좀 더 활용해보고 싶어요. 지금 제가 유튜브를 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찾아오는 후학이 있다면 그분들을 가르쳐도 좋겠고, 그곳에 계시는 분들과 교류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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