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로 인한 공포심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규제 당사자 대부분은 규제 시행 전에 미리 대책을 강구하는 형식으로 공포감을 해소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주목된다. 규제가 시행되지 않았는데도 관련 부작용이 나타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재건축 조합원이 주택을 분양받기 위해서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는 의무를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일부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아직 법안 소위조차 통과되지 않았음에도 분양권 획득을 위해 벌써부터 실거주 요건을 충족시키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기존 임차인들은 이사갈 집을 찾느라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발생한 전세난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전세매물 찾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던지고 보자 식 규제 행보가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기근절 이유로 ‘툭 던진’ 재건축 규제…“조합원 분양권 2년 실거주” 예고에 시장 들썩
정부는 거듭된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상승 과열이 계속되자 지난해 시장 내 투기 수요를 잡아내기 위한 6·17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대책을 통해 서울 집값 상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던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핵심은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이 분양권을 받기 위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정부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은 크게 들썩였다. 관련 법령이 통과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 실거주 요건을 충족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관련 법안은 아직까지 국회 법안 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빨리 실거주 요건을 채우자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전세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직접 거주하겠다고 나서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2년 의무거주를 달성하겠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면서 재건축 아파트의 전세 거래량이 크게 줄었다. 올해 1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차 전세 거래량은 1건에 불과하다. 전년 동기 5건의 거래가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시 전세 거래량은 19건으로 전년 동기 (79개)에 비해 76% 가량 감소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신만호 중앙 부동산 대표는 “최근 집주인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압구정 현대아파트 중 올해 재계약을 해야 하는 아파트 10채 중 3채는 집주인들이 직접 거주하겠다며 계약갱신청구 거부권을 행사하는 추세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임대차3법 전세난 기름 부은 재건축 실거주 규제…결국 정든 동네 떠나는 임차인들
주목되는 사실은 이렇게 집주인들이 계약갱신청구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계약을 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한순간에 전세난민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임대차3법 이후 전세매물이 자취를 감춘 상태인데다 그나마 나와 있는 전세매물은 대다수가 호가를 크게 높인 배짱 매물들이라 임차인들은 이사갈 집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차 전용면적 157㎡의 경우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전세매물의 가격은 22억원 가량이다. 지난달 실제 거래가액이 13억 500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호가가 무려 8억5000만원이나 비싸다. 이들 전세매물은 집주인들이 시세보다 보증금을 지나치게 높인 배짱 매물이라는 게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만호 중앙부동산 대표는 “시세보다 가격이 비싼 전세매물은 대다수가 정부의 임대차법에 반발하는 집주인들이 내놓은 배짱매물이라 볼 수 있다”며 “현대아파트 7차의 경우 지난달 거래가 이뤄진 가격대의 전세매물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은마아파트 전용 84㎡의 경우 지난달 6억원 대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8억~9억5000만원대에 전세매물이 나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 재계약을 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새 주거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결국엔 기존에 생활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 수년 전 자녀 교육 문제로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이사 온 강숙희(가명)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강 씨는 “자녀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대치동으로 이사와 5년째 전세로 살고 있다”며 “그동안 이사를 하더라도 대치동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강제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현한 이후 전세 매물을 계속 찾아보고 있는데 시세가 너무 올라 지금의 보증금으로 집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며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상황인데 걱정이 태산이다”고 토로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부작용이 나오는 사례에 비춰볼 때 규제에 대한 국민적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재건축 아파트 2년 실거주 법안의 경우 이미 시행 이전에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만큼 지금이라도 시행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주택 시장은 임대차3법 이후 전세난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공급까지 예고돼 전세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모습이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재건축 의무거주 도입까지 예고했으니 기존 임차인들의 전세매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는 전세 수요가 어느 지역보다 많은 만큼 지금이라도 ‘2년 실거주 의무’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태용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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