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장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슬롯머신의 룰은 간단하다. 회전하는 원통을 정지시켰을 때, 여러 슬롯에 있는 그림이 같으면 당첨이다. 슬롯머신은 간단하고,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돈의 액수도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도전한다. 원통이 정지했을 때 슬롯에 있는 그림이 모두 같을 확률은 크지 않지만 잭팟이라는 기적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적은 확률을 노리고 동전을 넣는다.
그런데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확률이 낮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슬롯의 그림이 모두 일치할 수 없도록 설계됐고 도박장 측에서 그것을 알려주지 않은 채 10년 가까이 방치했다면 말이나 되는 일일까. 발각되는 즉시 도박장은 문을 닫고 분노한 사람들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최근 한국 게임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명 국산 온라인게임의 대부분은 부분유료화 게임이다. 게임 이용 자체에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게임 내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특정 아이템을 얻고 싶다면 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상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얼핏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특이한 경험을 위해 돈을 지불하거나 무형의 감정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데에는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분유료화 초반,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면 게임 내 특정 유료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뽑기형 아이템 상자, 이른바 ‘가챠(뽑기)’ 방식이 도입되면서 돈을 내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게임 내 사행성 논란은 자연스럽게 커졌지만 가챠 방식은 생각 외로 큰 인기를 끌었다. 비록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확률은 낮았지만 운만 좋다면 한번에 적은 돈을 들여 유료 아이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챠에 손을 대는 사람 중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반드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이템을 얻는 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아이템을 목표로 삼고 확률성 아이템 상자를 사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가챠는 점차 국내 게임 대부분이 애용하는 유료 아이템 판매 방식이 됐다.
본래 게임 내 사행성 문제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가챠 시스템은 최근 국내 유명 게임사가 오랜 기간 동안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논란이 됐다. 게이머들이 분노하자 해당 게임사는 수년 간 회사 운영방침을 이유로 밝히지 않았던 확률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정 선호 아이템의 획득 확률이 0%였음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불꽃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태다.
게이머들은 이 일을 계기로 해당 게임사뿐 아니라 가챠 시스템을 차용하던 다른 게임사들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 게임들에 밀리고 있던 국내 게임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이 이전과는 달리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현금이 오가는 거래가 이뤄지는 콘텐츠 사업이 되어가는 만큼 관련 규제와 사회적 인식이 논의돼야 할 때다.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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