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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차등)의결권 도입이 정치권 이슈로 떠올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최근 “미래 신산업을 주도할 벤처·스타트업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논의가 서서히 가열되고 있다.
국회 법사위원회에 잠들어 있던 법안을 ‘여론의 장’으로 다시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차기 정부는 친기업 등 보수주의를 지향하므로 진보성향인 현 정부에 비해 복수의결권 도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복수의결권은 쉽게 말해 벤처 창업자(대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상법상 1주당 1의결권을 원칙으로 삼지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면 창업자는 1주에 최대 10배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자금이 부족한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조항이라 할만하다. 지분 희석을 막으면서 투자금을 모을 수 있고 적대적 M&A(인수-합병)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벤처기업은 복수의결권 도입을 갈망한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88%가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을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도 66%나 여기에 찬성했다. 벤처기업은 신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하는 미래 주역이다. 투자금을 마음놓고 유치하며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복수의결권제 도입이 벤처업계에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다수 선진국은 복수의결권 제도를 채택, 운영하고 있다.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도 17곳에 이른다. 일례로 구글(모회사 알파벳)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보통주보다 10배 많은 복수의결권 주식 등을 보유해 11% 지분율로 51% 의결권을 행사한다. 메타 CEO인 마크 저커버그도 보통주의 10배 의결권을 가진 복수의결권 주식을 보유한 상태다.
벤처창업 붐이 일어나고 있는 신흥국에서도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추세다. 홍콩은 중국 거대 정보기술(IT)기업을 유치하는데 실패하자 2018년 복수의결권을 도입했다. 중국도 중국 IT기업들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 복수의결권 등록방식에 기반한 커촹반(STAR Market)을 개설하고 2019년부터 거래를 시작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복수의결권을 도입하지 않을 경우 국내 유망기업들이 해외 증권시장으로 빠져나가 현지에서 대거 상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자본시장 육성에 장애요소가 됨은 물론 그야말로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시장 등 글로벌 5대 증권시장은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의 상장을 허용한다. 지난해 국내 IT기업인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것도 복수의결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제2의 쿠팡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법사위에 멈춰선 복수의결권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대편에서 우려하는 부분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소야대 국면이기에 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재벌 대기업의 편법 경영권 승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법안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내용을 법안에 추가로 담아야 한다.
벤처기업은 미래 먹거리 등을 발굴하는 혁신적인 존재다. 한국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정치권은 벤처기업 키우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복수의결권은 이 과정에서 지렛대이자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차기 정부는 복수의결권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해 한국이 ‘유니콘기업의 산실’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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