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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치료에 세금을 들여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찬성하는 쪽은 탈모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우울증 같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공공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 탈모에 세금을 투입하면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탈모 환자 10명 4명은 20·30대
탈모 환자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원형탈모 등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국민은 총 24만3609명으로 전년(23만3459명) 대비 1만 명 이상 늘어났다. 주로 젊은 층이 탈모 진료를 받았다. 30대 환자가 5만2722명(21.6%)으로 가장 많았고 40대(5만2580명·21.6%), 20대(4만7549명·19.5%)도 상당했다. 탈모 환자 10명 중 4명 이상이 MZ세대(1985~2005년생)인 셈이다.
탈모는 모발에 이상이 생기는 질병이다. 모발이 존재해야 할 부위에 모발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탈모 종류는 여러 가지다. 질병분류정보센터(KOICD)는 총 19개의 탈모증을 각기 다른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병의 원인·경과·치료도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보니 건강보험 적용도 제각기다. 원형 탈모증, 흉터 탈모증 등 병적 탈모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그 외는 미용 목적 진료·치료로 분류해 비급여로 진료·치료를 해야 한다.
탈모 치료비는 만만치 않은 편이다. 건보에 따르면 2021년 병적 탈모의 진료비는 419억9000만 원에 달했다. 그해 진료를 받은 국민 수(24만3609명)로 단순 계산하면 탈모 환자는 1년에 평균 72만 원 정도 지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탈모 환자 58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을 보면 응답자의 72.1%가 “탈모는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고 밝혔지만 병원에서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경우는 36.4%에 불과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탈모 치료제로 인정한 약품은 △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 △미녹시딜 세 가지다. 경구용 제제인 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는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다. 두피에 바르는 외용약인 미녹시딜은 일반의약품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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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
피나스테리드 계열 약품으로는 한국오가논의 ‘프로페시아’가 대표적이다. 1997년 남성형 탈모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세계 최초의 경구용 치료제다. 국내에는 2000년 들어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격은 약국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 달(28정) 기준 4만8000~6만 원 정도다. 1년으로 치면 최대 72만 원 수준이다. 제네릭(복제약) 제품으로 모나드(30정 기준 3만2000원), 알로시아(4만1000원), 피나테드(4만5000원), 베아리모(3만3000원) 등이 있다.
두타스테리드 성분의 오리지널 약품은 GSK의 ‘아보다트’다.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이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30정에 2만2000~3만4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제네릭 제품인 아보타스(2만1000원)·프로다트(2만1000원)·다모다트(1만6500원)·아다모(1만6500원)도 가격이 상이하다. 미녹시딜 성분의 ‘마이녹실’은 2만~10만 원에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 가능하다.
서울시는 일단 보류, 일부 지자체는 이미 시행 중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탈모 관련 공약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탈모 제네릭의 가격을 낮추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모 관련 공약을 내놓진 않았지만, 선거 직전 안 후보와 후보 단일화 및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해 대선 뒤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그렇지 못했다.
탈모 치료 지원 논의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옮겨 갔다.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균형위원회는 3일 전체회의를 열고 ‘서울특별시 청년 탈모 치료 지원 조례안’을 논의했다. 이소라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안은 서울 거주 청년들에게 경구용 탈모 치료제 구매비 등 치료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조례안을 두고 여야 간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전체회의에서는 여당의 반대로 ‘심사 보류’ 결정을 받았다.
탈모 지원책을 시행했거나 도입을 앞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 성동구는 지난해 5월 전국 최초로 청년 탈모 지원 조례를 제정했으며, 이달 2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탈모 치료비 지원 신청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지원 대상은 접수일 기준 주민등록상 3개월 이상 성동구에 거주한 39세(1984년생) 이하의 탈모증 진단을 받은 청년이다.
1인당 연간 20만 원 한도 내에서 경구용 약제비를 지원하고 본인구매금액의 50%씩 지원한다. 신청 시 병명코드를 기재한 진단서나 소견서·처방전·약제비계산서·통장사본 등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 1월1일 진료내역 분부터 지원할 수 있고 첫 지원금은 내달 15일 지급할 예정이다. 올 11월까지만 접수받는다. 모집 인원은 800명이다. 12일 기준 130명이 신청했다.
충남 보령시는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보령시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 중인 탈모증 환자에게 1인당 2년 동안 최대 200만 원(생애 1회)을 지원할 계획이다. 성동구와 비교해 거주기간 요건을 까다롭지만 지원대상은 49세 이하로 더 넓다. 약제비 본인부담금 외 진료기관 외래진료비 등도 지원한다. 모집 인원 제한은 없다. 신청년도 2년 이내의 약제비·외래진료비를 지원하고 지원금은 신청일로부터 2개월 이내 검토 후 개인별 계좌로 받게 된다.
대구시는 작년 12월 말 ‘대구광역시 청년 탈모 치료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1년 이상 시에 거주한 19~39세 이하 주민에게 탈모 치료 바우처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원금 등은 아직 미정이다. 6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관련 예산을 확보해 지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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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
지자체들이 탈모 치료 지원에 나서는 것은 탈모를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봤기 때문이다. 탈모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한피부과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탈모 환자 63.3%가 ‘대인관계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성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비율도 41%로 높았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의 ‘대한민국 20~30대 여성의 탈모 남성에 관한 태도 조사 보고서’에서도 여성 89%는 ‘소개팅이나 선 자리에서 탈모 남성이 나오는 것을 꺼린다’고 응답했다. 대머리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소라 서울시의원은 “지원대상에 해당되는 청년들은 학업을 비롯한 취업·연애·결혼 등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 사회·경제적 이행기에 탈모로 인한 여러 부담과 고통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만균 서울시의원도 “청년은 취업·결혼에 있어서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탈모가 있으면 자존감이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이처럼 청년 탈모 환자들이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자체가 세금을 투입해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탈모 지원책은 세대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고 정책 우선순위 및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에 있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청년정책에서 탈모 이슈보다도 일자리와 주거지원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증·희귀질환 단체도 분통을 터트리며 반대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몇몇 지자체의 탈모 치료비 지원 소식은 충격적이다”며 “사회적 합의도 없이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대표는 “생명이 위중한 중증 암환자나 난치성 환자들의 경우 고가의 치료제 부담도 크지만 실직·간병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면서 “정부가 이처럼 의료비 지원이 절실함에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중증·희귀질환자에 더 관심을 쏟고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청년 장사’ 흐름 속에서 나온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적 질병이라는 이야기는 심리적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라는 것인데 그러면 탈모 치료비용이 아니라 심리치료·상담 차원에서 접근해야 지속 가능하게 해결할 수 있다”며 “특히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병폐라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정치인들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거치지 않은 채 ‘정치 아이템’ 잡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며 “탈모가 정말 한국사회에서 풀어나가야 될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라면 장기적인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자신감을 갖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상담 치료 등을 지원하는 방안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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