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커녕 계산기도 없던 127년 전, 대한제국의 은행은 어떻게 돈의 흐름을 기록했을까. 1899년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은 개성상인들의 전통 복식부기인 ‘송도사개치부법’으로 회계장부를 작성했다. 우리은행이 이 장부를 통해 한국 근대 금융과 민족자본 형성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우리은행은 6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국민대 산학협력단과 ‘대한천일은행의 민족자본 형성과 회계장부의 학술 가치 연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근대 금융 형성 과정에서 대한천일은행의 역할과 전통 회계방식의 가치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민족자본 형성과 회계장부의 역사적 의의 등 3개 분야에서 연구성과 8편을 발표했다.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대한제국 시기 상인과 관료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민족자본 은행이다. 외국계 은행의 영향력이 커지자 국내 상인들이 금융 자립에 나섰고 황실도 자금을 지원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뒤 한국상업은행으로 이어졌다. 1999년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이 출범했고, 2002년 우리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899년 2월1일 정부 인가를 받은 대한천일은행은 예금·대출·환전과 세금 수납, 황실 자금 관리 등을 맡았다. 정관에는 조선인 이외에는 주식을 매매할 수 없다는 제한을 둬 민족자본 보호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대한천일은행이 사용한 회계장부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은행은 개성상인들이 사용하던 ‘송도사개치부법’으로 거래 내역을 기록했다. 단순히 돈의 입출금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채무와 재산의 변동까지 함께 기록해 장부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복식부기는 하나의 거래를 두 측면에서 기록한다. 예를 들어 은행이 고객에게 현금을 빌려주면 현금은 줄지만 돌려받을 권리인 대출채권이 생긴다. 이처럼 재산의 변화를 함께 기록한다는 점에서 단순 현금출납부와 다르다.
고려시대 개성상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송도사개치부법은 서양식 복식부기와 별도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한천일은행의 ‘정일기’와 ‘장책’, ‘회계책’ 등은 전통 회계방식이 근대 은행에서도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서양식 복식부기는 대한천일은행 설립 이후인 1903년 일본을 통해 국내에 도입돼 한성은행 등 근대 금융기관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양식 회계가 확산했고 송도사개치부법은 점차 사용이 줄어들었다. 즉, 대한천일은행 장부는 서양식 회계가 정착하기 전에도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가 근대 은행 운영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다.
국가기록원은 2014년 대한천일은행 창립·회계 관련 기록물 19건 75점을 국가지정기록물 제11호로 지정했다. 설립·운영 문서 12건 18점과 회계 기록물 7건 57점이다. 국가기록원은 이 자료들이 전통 회계에서 현대 회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국민대 산학협력단과 대한천일은행 사료를 분석하고 있으며 연구 성과를 모아 연구서를 발간하고 역사적 자료를 사회와 공유하는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기정 우리은행 사회공헌부 차장은 “대한천일은행 사료는 우리은행의 역사를 넘어 한국 근대 금융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체계적인 학술 연구로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 성과를 학계·고객과 함께 나누며 한국 근대 금융사 연구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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