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묵독 그리고…읽기의 변화, 관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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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로제 샤르티에 외의 <읽는다는 것의 역사>

읽는 방식과 사고방식의 변화를 담은 읽기의 문화사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4-08 18:09:17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영성과 예배에 관한 한 독서는 오로지 하느님과 소통하는 일이었다. 독서는 독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도의 신앙생활에 자양분을 주는 일이었다. 신도는 책을 통해 판단되고, 해석되고, 중재된 텍스트로 책 너머에 있는 유일하게 중재되지 않은 신성체험으로 인도될 것이었다”

중세 독서행위에 대한 설명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읽는 행위 자체는 매우 다채로운 변화를 겪었다. 우선 낭독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책이나 신문을 보거나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매스미디어 수단이 없던 시대에는 오늘날 같이 묵독, 즉 혼자서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글을 읽는 행위가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

낭독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시인들이 책을 출판하면 낭독회를 갖는다. 유명 인사들의 출판기념회나 위대한 작가의 서거를 추억하는 자리에서 낭독은 하나의 관례처럼 자리 잡는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낭독을 하는 사람은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 문자는 낭독을 위한 도구였다. 일단 문자해독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 없었으니 이는 당연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낭독에서 묵독으로

그러나 단순히 문자해독능력 자체만으로 낭독이 일반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현대의 묵독 현상, 즉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내면 세계를 사고하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루터 시대의 종교개혁에서 핵심적 화두 중 하나는 오직 성서에 충실한 신앙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교회와 목자의 중개 없이 성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조우하자는 것이 종교개혁에 담긴 루터적 메시지였다고 할 수 있다.

낭독은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낭독은 모든 독서의 근원이 되는 행위였다. 지식인들은 광장에서 ‘설교’를 했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체가 아니라 레토릭, 즉 수사학이었다.

사람을 마주한 채 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구술행위는 익명의 독자를 상대로 한 텍스트 전파행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낭독은 거리에서 이뤄지며, 즉각적으로 군중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문자를 낭독하는 사람 주위로 모여들며, 화려한 수사학적 펼쳐내는 소크라테스에게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중세로 접어들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제 ‘조용히’ 문자를 읽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중세에 묵독 현상은 조심스레 시작됐다. 귀족층들을 중심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된 소수의 엘리트들이 묵독을 진행했다. 다수는 여전히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공간에서 생활했고, 묵독의 고독한 사고과정을 경험할 일이 없었다.

반면, 근대에 와서, 특히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을 경과하며 모든 것은 크게 변화했다. 무엇보다 구텐베르크 혁명, 즉 인쇄술의 발명이라는 것은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이 출현한 것이다.

읽는 행위의 변화는 인간의 관계맺음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인쇄술의 발명이 가져온 혁명이란 무엇인가. 같은 테스트가 수없이 복제되고 전파됨으로써 이제 사람들은 거리에서 직접 설교를 듣거나 목자의 가르침에 의탁하지 않고도 진리의 도정에 설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영역은 흥미롭게도 종교였다. 교회라는 거대한 조직과 목자들의 다양한 위계들을 불식시키고 루터가 주장한 것은 성서에서 직접 하느님의 ‘말씀’과 조우하라는 것이었다. 읽는 행위는 모두로부터 분리된 내면의 고요한 공간에서 고독하게 진행된다.

읽는 행위가 낭독에서 묵독으로 전환하면서 또 하나의 거대한 벼화가 인간들의 관계맺음 방식에서도 나타났다. 앞서 봤듯, 낭독은 광장에서 일어났고, 군중과 결합해 형성됐다. 반면, 묵독은 격리된 공간과 고독한 자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인간의 공동체를 추상적인 창조물로 변화시켰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운다. 국민이라는 것은 실재하기 이전에 일단 상상적 창조물이다. 지도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지리학적 위치를 파악하고,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국민이 되는 행위의 의미와 의무감을 설득 받는다. 이제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이들보다 책을 통해 배운 이들이 훨씬 많은 시대가 되기도 했다.

거리에서 우리의 눈앞을 지나가는 A는 중국인일까 일본인일까 한국인일까.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갖고 혼밥과 혼술을 하며,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국민으로서 동질감을 갖는 것은 매우 일시적이며 우연적인 순간들을 통해서다.

당장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공동체’라는 것은 이미 상상적 창조물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에 의하면 그 상상물을 만드는 핵심 수단이 바로 책과 미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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