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한 가정을 이룬 뒤 가족의 중심을 잡아주는 ‘아내’라는 이름의 호칭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르는 주체에 따라 엄마, 아줌마, 주부, 며느리 등으로 변신한다. 아내는 나아가 집사람, 안식구, 안사람 등 ‘집에 있는 사람’을 넘어 당연히 ‘집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특정지워진다. 또한 여성 비하적인 의미가 함의된 아이 돌보미, 가사 도우미라는 말까지 듣는다. 한국 사회는 이런 현실을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버팀목인 아내라는 이름은 남편과 가족에게서 멀어지기 일쑤다. 특히 대개의 남편들은 결혼 후 아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다. 많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정을 지키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아내들의 자존감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말없이 가정을 지키는 많은 여성들은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위기의 가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족이 있는 가정은 무한책임의 사랑으로 묶인 혈연의 최소단위이자 절대 침범돼서는 안될 인간 존엄성의 최후가치가 보장되는 곳이다. 가족 간의 사랑은 곧 책임이고 그 책임이 또한 사랑이다. 사랑과 책임에는 희생이라는 가치가 연결고리로 작동한다. 그래서 가족은 행복과 불행을 동전의 앞뒤처럼 하나로 여기기에 불행조차 행복으로 만드는 괴력을 발휘한다. 가정은 일시적인 행복감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감이 늘 자리하는 삶의 이상적 보금자리로 꼽히는 이유다. 모든 사람들은 본래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 밖 낙원이 될 가정에서 소중하게 태어날 권리를 가졌다. 그 가정의 중심에 바로 아내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가정의 위기를 맞고 있다. 통계상 해석이 분분하지만 한국의 이혼율은 통상 3~4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권 1위에 전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가정의 위기와 파산은 개인의 불행인 동시에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운명까지 불행을 예고케 하는 일이다. 이런 불행한 배경에 우리의 가부장적 남성 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혹자는 그래서 가족의 개념을 이데올로기로 치부하며 가족과 가정의 신성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가족의 가치는 오랜 과거를 관통해 현재 진행 중이면서 미래 또한 지향해 나갈 초시간적 신성성을 갖는다. 아울러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의 신성을 부정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없다. 그 중심에 여성이 자리해 왔고 아내는 그 신성의 다른 이름으로 존중돼 왔다. 하지만 이런 도식에 의해 여성의 인간적 자존감이 오히려 간과되고 무너졌다는 것이 일단의 페미니즘(feminism) 운동에서 주장되고 있다.
일견 틀리지 않는다. 여성에게 지나친 무게감을 안겨준 것이 가족의 신성함이다. 여성은 슈퍼우먼도 아니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일방적인 희생과 책임을 짊어질 숙제도 짊어지지 않았다. 도식화된 무게감을 이기지 못한 숱한 여성들이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희생양으로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가장(家長) 중심적 가부장적 사회에서 뭇 남성들은 권위에 올라타 밖으로 나돌면서 아내는 수동적 자세로 가정에 관한한 책임의 배수진을 치라는 식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사이 아내는 희생의 방점에 선 누군가의 부인, 며느리, 엄마이기 이전에 의지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성이라는 것이 가리워졌다. 아내들의 소중한 자존감이 무너질 때 남성들이 당연시하는 가정의 행복감은 지켜질 수 없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비하하는 언어와 말들이 생활형이 되면서 아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동서양을 막론한 사상과 종교의 공통점은 자연의 세계엔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신성 또는 절대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생명활동의 이기심인 본능에 충실하면 본유(本有) 또는 분유(分有)된 신성을 살려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자연계의 신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자신의 존재가치가 그러하듯 ‘도덕률의 내재적 상승선(上昇善)’을 기본 축으로 하는 선·악의 임계치에서 늘 드러난다. 그 임계치는 이기심의 생존본능이 살아 있는 동안 평생 해야 할 도덕률이라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남성들이 이런 칼날을 열심히 갈고 그 위에 자신이 아닌 여성들을 세워 왔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오죽하면 가족의 신성성 조차 남성 이데올리기로 규정짓고 있지 않은가.
스카이데일리가 연중 공익캠페인(http://www.skyedaily.com/news/family.html) 10월편으로 ‘아내의 자존감 키우기’를 정하고 남편들의 아내 추천을 받고 있다. 캠페인의 취지는 평소 공기처럼 존재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아내 없이는 가정도 가족도 없음을 남성들이 진지하게 성찰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시시각각 닥치는 위기의 가정을 지켜내는 존경스러운 아내, 가족을 위해 묵묵히 지혜롭게 대처하는 예쁜 아내, 일과 가정을 모두 하면서 가정을 이끄는 슈퍼우먼 최고의 아내 등을 추천받아 아내가 만족할 만한 선물을 주는 캠페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내는 가정을 묶어 주는 강한 결속의 에너지다. 그 에너지의 특성은 이 세상과 만물을 있게 하는 원자 핵 속의 결합에너지로 비유하고 싶다. 핵융합과 핵분열은 정 반대의 현상이지만 가장 강한 핵자간 결합에너지로 향해 안정화 되고자 하는 원리는 같다. 핵융합 과정에서 양성자 간의 강한 결합에너지가 더 요구되지만 핵분열 과정에서도 분열된 핵자들끼리 강한 결합에너지가 더 필요해진다. 에너지와 질량의 등가원리에 의해 증가한 결합에너지 만큼 줄어든 질량이 거대한 에너지로 분출한다. 그것이 수소탄과 원자탄의 원리 아닌가. 가정과 가족은 우리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핵 중의 핵이다. 그 핵들이 강한 결합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것으로 강한 결속이 일어난다면 융합하는 대가족이든 분리되는 핵가족이든 강한 에너지를 분출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지금과 같이 아내의 자존감이 상실되는 시대는 우리 사회 전반 그리고 국가적 위기다. 아내조차 가족의 노동자가 되고 민중이 되면서 계급화의 서열로 떨어지면 가족의 유리현상을 초래한다. 실제로 보이지 않지만 그런 내재적 문제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단순 노동만 하는 여성만 있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아내가 사라진 가정의 결속은 있을 수 없다. 아내의 자존감은 가족으로부터 자란다.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가정의 끈끈한 행복은 저마다의 모든 국민에게 상호간 부메랑으로 커진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