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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고민숙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

“열악한 장애인 작가 예술혼에 생명 불어 넣죠”

미술 통해 삶의 동력 얻어…장애인미술협회 부흥 이끌 미술가

조성우기자(jsw5655@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8-14 00: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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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숙(사진)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은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미술을 통해 삶의 목표를 설절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인해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어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입을 벌리지도 못해 죽으로 연명하기도 했죠. 미술을 통해 삶의 목표를 세울 수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보니 통증도 잊게 됐죠. 이제는 한국장애인미술협회(이하·장애인미술협회)를 잘 이끌어서 많은 장애인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건강을 잃었을 때 인생의 가장 큰 절망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건강했던 몸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자신의 몸은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있고 건강은 당연한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고민숙(여·58) 장애인미술협회장은 20대 때에 류머티즘성 관절염(이하·류머티즘)을 앓아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전까지 건강한 삶을 영위하던 그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였다. 이 절망적인 결과에도 고 회장은 미술작품을 통해 통증을 잊으며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 현재 고 회장은 장애인미술협회의 수장으로 장애인 작가들에게 희망과 목표를 심어주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고 회장을 노원구에 위치한 장애인미술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장 아름다운 20대에 맞이한 절망…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8년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던 고 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에 큰 절망과 마주하게 됐다. 건강하던 인생은 한 순간에 사라졌고 매일매일 통증과 싸우는 시련의 연속이 이어졌다
 
“여느 사람들처럼 저도 아침이면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업무에 열중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 이곳저곳이 쑤시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단순히 몸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는 응급실에 실려 갔죠. 단지 진통제를 먹는 것이 전부였는데요. 이때 제가 류머티즘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때가 27살 이었어요”
 
남들에겐 꽃다운 청춘의 시절이었지만 그날 이후부터 그녀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온 몸의 관절이 변형돼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병에 비해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하다 보니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요법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 고민숙(사진)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화장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상 미술을 전공하지 못했다. 몸이 아픈 이후 접한 미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하루는 다리가 아프더니 다음날은 어깨가 돌아가지 않고, 이후에는 손가락이 비틀어지는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치게 됐어요. 병이 극으로 치달았을 때는 전신을 사용할 수 없었고 심지어 턱 관절도 움직이지 못해 겨우 죽으로 연명하기도 했죠. 당시에는 류머티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병원에서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온 몸에 대침을 맞고 쑥뜸을 뜨는 등의 민간요법도 많이 받았죠”
 
극심한 통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또다시 천정병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치료 중에 합병증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고 회장은 더욱더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합병증으로 인해 오른쪽 눈에 녹내장이 발생했어요. 고혈압도 같이 왔죠. 고혈압은 가족력이 있어서 발생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녹내장은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이처럼 절망에 빠져 있던 고 회장에게 삶의 희망을 던져준 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이었다. 고 회장은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이들을 보며 자신에게 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적극적으로 재활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장애인이 아닌 환자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헌데 우연치 않게 찾은 장애인 교회를 통해 ‘나도 장애인이구나’라고 깨닫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혼자 움직일 수 있었지만 저는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했거든요. 그곳에서 제가 가장 중증 장애인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른 장애인들처럼 생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미술 통해 찾은 새 인생…장애인 작가를 위한 협회 만들어야
 
고 회장은 미술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힘을 얻었다. 미술을 통해 장애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재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미술 작업을 하며 통증도 잊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 미술을 굉장히 잘했어요.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미술을 전공할 수 없었죠. 그렇게 미술을 잊고 살다 장애를 얻은 후, 복지관에서 다시 미술을  접하게 됐어요. 복지관의 장애인들과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이를 통해 장애의 고통도 점차 잊어갔어요
 
고 회장은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기에 미술을 다시 시작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미술을 포기할 순 없었다. 또한 미술을 통해 삶의 원동력이 생성됐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담은 미술을 다시 시작하는데 있어 망설이게 되는 원인이었죠. 그런데 처음으로 작품을 낸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어요. 이후부터 미술을 다시 시작했고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죠. 이젠 미술 작품을 통해 제 인생을 녹여내고 있어요. 그리고 공모전이라는 목표를 통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고 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활동해온 장애인미술협회 수장이 됐다. 고 회장은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준 협회를 더욱 부흥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고 전했다.
 
▲ 고민숙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은 미술 작품에 자신의 삶을 녹여냈다. 고 회장은 이를 통해 지나온 날들의 성찰과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사진은 일상의 변화 [사진=고민숙 제공]
 
“저는 장애인미술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은 다 참석했어요. 공모전 같은 경우 공모비가 없어서 경제적 부담이 적었죠. 이 협회를 통해 전 인생의 활력을 얻었어요. 지금 협회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어서 어깨가 굉장히 무거운 상황이죠”
 
고 회장은 장애인미술협회를 통해 장애인 작가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또한 자기 개발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다양한 사업을 통해 장애인 작가 양성에 기여할 생각이다.
 
“장애인미술협회는 장애인 작가들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에요. 공모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이죠. 더 많은 공모전을 열어 장애인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또 강사 육성 사업을 통해서 장애인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고 싶어요”
 
[조성우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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