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 무렵이면 올 한 해를 되돌아보기에 빠른 시점 또한 아니다. 한 해의 성과는 9월 하순의 추분(秋分)이면 윤곽이 드러나고 가을 추수철인 10월 하순이면 사실상 정해져서 부동(不動)인 까닭이다.
아쉬웠던 북한의 비핵화
생각해보면 올 한 해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북한의 비핵화였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나서 서로 비핵화에 관해 약속을 하고 평화롭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보자고 했을 때 정말 크게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9월 하순의 추분 무렵이면 보다 구체적인 진척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소중한 불씨를 살려보려는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있었을 뿐이다. 당초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몰라도 아쉬운 바가 크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정책 역시 그렇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은 크게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의 증가가 많이 부진해진 구조가 정착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가계소득을 늘려보려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해왔고 나름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어렵다.
가계소득 증가는 역시 양질의 일자리 공급과 직결되는 문제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일자리 질의 양극화로 인해 전체 직장 근로자의 10%만이 대기업 정규직일 뿐, 나머지 90%는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점이다. 아울러 무려 560만에 달하는 자영업자가 있는 구조이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무 정책은 가계소득을 늘리기보다 오히려 영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역시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9월 추분 무렵이면 윤곽이 나오기 마련인데 최근의 결과는 많이 실망스럽다 하겠다.
박근혜 전 정권이 추진했던 노동시장의 유연성 개선 정책 역시 일자리의 양극화를 해소해보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기득권 노조의 저항에 부딪쳐서 실패했다.
이에 현 정권의 가계소득을 늘려서 성장 탄력을 되살려보려는 노력 역시 실패한다면 과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하는 회의가 생긴다.
한은의 금리정책, 진퇴양난에 처했으니
최근 난데없는 서울과 경기권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한은의 장기 저금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사실 한은으로선 나름 억울할 것이다. 전 정권과 현 정권에 걸쳐 경기를 살리고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했던 저금리 기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과가 나지 않고 부작용만 불거졌으니 한은으로선 많이 서운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장차 경제에 충격이 왔을 때 추가적인 금리인하 수단을 이미 상실해버렸다는 점과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와 거꾸로 가고 있는 점에서 오는 모든 리스크와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갈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실정이라 하겠다.
밀려오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
게다가 7월 초 우려하던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미중 양국이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보고자 나서고 있지만 역시 엄연한 한계가 있다.
저번 10월에 우리 증시가 유독 많이 하락한 배경에는 9월27일의 연준 금리 인상도 있지만 더불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있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 또한 상당히 작용했다고 본다. 올 해 중국의 성장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자 그로 인한 악영향을 우리 수출이 많이 받게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올 한 해 무술(戊戌)년은 반가운 소식이나 흐름보다는 그 반대의 일들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아직은 요원한 선진사회로의 길
수치상으로만 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냐고 물어볼 것 같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호호당도 동감이다.
그 이유로서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달리 말하면 사회적 상호 신뢰가 그다지 많이 쌓여있지 않은 것이 우리가 선진사회가 되기엔 많이 부족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오늘 일요일 저녁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옆 차선에서 SUV 차량 한 대가 날카로운 각도로 차선을 치고 들어왔다. 택시 기사도 꽤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끼어든 차 뒷면 창에는 ‘Baby In Car’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하면서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고 붙이고 다니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었다. 하기야 애 아빠라면 피 끓는 30-40대일 것이니 저렇게 운전할 법도 하지 싶었다. 아기가 타고 있으니 당신은 양보하시고 나는 마음대로 차선을 변경하겠어, 이런 식이니 스티커가 담고 있는 상호 신뢰와 양보의 메시지가 그저 무색할 따름이었다.
저녁 들어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유기된 강아지 보호소에선 강아지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지원금만 착복하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 신뢰가 없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일면이다. 저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저 사람들도 참 딱하지 싶기도 하다.
최근의 사립유치원 문제 역시 그렇다, 내 생각에 모든 사립 유치원이 그렇진 않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일부가 저처럼 문제를 만들고 있으니 전체적인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몇 년 사이 유난히 아프리카 등지의 어린이들을 도와달라는 텔레비전 광고를 많이 접한다. 나름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과연 제대로 하고는 있을까 의심이 앞서는 바람에 늘 그만 두곤 한다.
믿는 것이 어리석거나 심지어는 위험할 수도 있는 우리 사회의 말과 약속들이다. 우리가 이처럼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니 따라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진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작은 약속이라도 믿을 수 있고 지켜지는 사회, 경제적으로 윤택하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는 그런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작된 동작동 뒷산의 동계 보급 작전
이제 상강 지나고 입동을 앞두고 있으니 겨울철 뒷산 새 모이 주는 일을 시작했다. 매일 뒷산으로 아들과 함께 강아지 두 마리를 이끌고 산책을 나선다. 매일 밤 산책길에 동네 고양이들 밥을 준 지 벌써 9년이다. 2010년 초부터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새들 모이도 겨울이 되면 주게 되었다. 쌀과 잡곡, 땅콩 등등을 섞어서 준다. 한 겨울 새벽 참에 나가보면 거의 수백 마리, 어쩌면 천 마리 정도 되는 새들이 모이를 먹고 있는 광경, 대단한 장관(壯觀)을 볼 수 있다.
재미난 점은 새들이 종류 별로 순번을 정해서 먹는다는 점이다. 까치가 제일 사납다, 그 바람에 가장 먼저 먹는다. 새들은 행동반경이 커서 동작동 뒷산 새들은 물론이고 국립묘지 새들과 반포 일대의 새들도 죄다 날아오는 모양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인다는 것은 정말 그야말로 즐거운 일이다. 어쨌거나 일해서 번 돈으로 고양이 밥을 마련하고 새들 모이를 준비해서 먹일 수 있으니 마음이 흡족하다. 이에 나 호호당 스스로 동작동 국립묘지 뒷산의 산신령을 자처하고 있다.
(작년까진 독자들에게 묵은 쌀 남은 것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글에 올린 적도 있지만 올 해 그게 좀 미안하고 구차한 것 같아서 그냥 마련하기로 했다.)
올 겨울은 엄청 추울 수도 있다는 기상청의 얘기가 있다. 우리 부자의 야간 산책 시간이 주로 밤 11시 경인데 겨울이 엄청 추울 것 같으면 고생 좀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주로 틀리는 기상청이라서 아직은 큰 걱정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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