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성북구 보문동 지역의 역사와 문화, 도시공간을 알기 위해 일대를 답사한 적이 있다. 보문동은 'V'자처럼 생긴 성북구의 하단 꼭짓점에 위치하면서 종로구, 동대문구와 접해 있다.
이필용 역사문화해설사는 급속히 진행되는 재개발과 도시재생에 따른 환경변화 속에서 도시는 어떻게 진화하고 디자인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부지런히 설명했다. 출발은 보문역 4번 출구에서 만나 보문2주택재개발지역 골목길을 누볐다. 한옥과 개량 가옥들이 혼재한 이 곳은 이미 재개발 발표로 이사가 시작돼 빈집이 꽤 많았다. 물론 지금은 죄다 헐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보문동 일대 도시 재개발로 옛 모습 사라져
길 건너인 보문역 5, 6번 출구 쪽 보문5주택개발지역도 둘러봤다. 2지구와 5지구는 보문역 기준으로 우측 성북천 쪽으로 당시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이 곳 골목은 매우 정교하게 직선으로 설계돼 있었다. 이는 일제에 의해 1934년 제정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른 도시개발 때문이다. 도시계획은 사대문 외곽 쪽이 상당히 많았지만 중일전쟁 발발로 대폭 축소됐다. 전쟁 전 시작한 영등포 일대 공업지구와 돈암 주택개발 등 단 두 곳만 광복 때까지 진행됐다. 돈암은 서울 동북의 대표적 주거공간으로 ‘도시형 한옥’이 집중 건축됐고 지금도 일대에 한옥이 폭넓게 남아 있다.
이 해설사는 “이들 도시형 한옥은 북촌처럼 개별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주택공급업자에 의해 집단적으로 지어졌다”며 “보문동 지역은 조선주택영단의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라 개발됐고 기농 장세권이 진두지휘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답사팀 일원으로 한복진 청강문화산업대 석좌교수(궁중음식 기능 이수자)가 함께 했다. 보문사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다. 어머니인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고 황혜성 교수의 손을 잡고 이 곳을 다니곤 했다고 한다. 보문사는 궁에서 나온 궁녀들이 비구니가 돼 여생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궁중음식을 연구한 황 교수가 그들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문사는 원래 조계종 사찰이었으나 1972년 비구니 긍탄스님에 의해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본산이 된 곳이다. 이 곳은 경주 석굴암 건축구조를 차용하고 15톤 규모의 석불을 본존불로 모신 석굴암이 유명하다. 석굴암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름이 쓰여진 연등도 달려 있다. 경내 팔각구층사리석탑에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전해진다.
보문동 대표 중화요리점 역사 속으로
일행은 이날 보문역 4번 출구 인근 중화요리집인 ‘안동반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20여 명이 넘는 인원이라 일찌감치 줄을 섰다. 줄을 서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손님의 몰리는 유명 맛집이다. 맛과 가격을 모두 잡은 가성비 최고의 식당이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이 주력이고 탕수육 소(小)자는 다른 곳의 대자 분량만큼 담아내 온다. 짬뽕 국물이 잡맛 없이 경쾌하고 시원하다. 첫맛과 끝맛이 공히 깔끔하다. 갖은 해물과 야채를 정성스레 썰어 넣었다. 단맛을 내는 주키니호박을 둥글게 썰어 넣은 게 인상적이다. 음식에 조예가 깊은 한 교수는 물론 정혜경 호서대 교수(식품영양학과)도 엄지를 ‘척’ 세웠다.
잡채밥도 당면이 보드레하니 은은한 맛을 낸다. 잡채밥의 밥도 볶아서 제공한다. 볶음밥은 밥을 옛날 방식으로 겉을 살짝 바싹하게 볶아냈다. 노령 주방장 혼자 주문을 소화하는지라 손님이 몰릴 때는 빠른 서빙을 기대하긴 어렵다.
홀 메뉴판 아래 벽에는 ‘주방장 어르신이 연세가 있으신 관계로 음식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동반점은 보문2주택재개발지역에 포함돼 있었다. 지금은 철거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주방장이 노령이라 재개업을 할지는 미지수다.
안 팔리는 메뉴 없애고 간판도 바꿔
서울 중구 다동 일대는 오래된 맛집이 즐비하다. 부민옥, 용금옥, 인천집, 남포면옥, 무교동북어국집, 철철복집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업력도 40~50년이 보통이고 서민들이 즐겨 먹는 전통 메뉴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이 곳 식당가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서울시청을 비롯해 인근에 대기업들과 공공기관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혼밥족은 손님들이 몰리는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을 피해야 눈총을 받지 않는다. 넉넉잡아 1시 30분 이후에 식당에 가야 자리도 편히 잡을 수 있고 눈총 대신 대접도 받을 수 있다.
필자도 가끔은 혼밥족이 돼 다동을 기웃거린다. 혼자 먹는게 싫어 몸부림치지만 어쩔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부민옥의 육개장과 양곰탕을 즐겨 먹었는데,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 생기면서부터 그 시간대 식당을 찾으면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 지난 3월 갔던 ‘소라 스테끼와 칼국수’란 집이다.
칼국수만은 남겨 옛 정취 이어가
입구를 들어서면 우측 벽에 걸려 있는 ‘民草愛好食品專門店’(민초애호식품전문점)이란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리모델링 후 ‘사계진미’란 숯불닭갈비집으로 상호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액자는 그 자리에 걸려 있다. 스테끼 판매가 잘 되질 않자 이를 없애고 프랜차이즈인 숯불닭갈비 무한리필 집으로 변신한 것이다. 다만 칼국수는 계속 취급한다. 칼국수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할 만큼 대중적인 메뉴다. 밀가루와 양념 몇 가지, 그리고 금방 버무려낸 겉절이만으로도 호화로운(?) 상을 차릴 수 있다.
1978년에 개업을 했다고 하니 햇수로 41년이 된 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메뉴를 버리고 간판까지 바꾼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얼마전 친구들과 ‘스테끼’를 맛보기 위해 들렀는데, 메뉴가 바뀐 바람에 당황했지만 최근 외식업 상황을 감안하면 잘한 결정으로 생각된다. 숯불닭갈비 무한리필은 최근 장사가 잘되는 메뉴 중 하나다. 이날도 젊은충 손님들 위주로 북적대는 모습을 보고 뒤돌아 나왔다. 과감한 변화로 연세 지극한 여사장님 걱정이 한결 덜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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