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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정인이 사건 그 후, 안이한 입법과 책임 전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2-24 09:56:23

 
▲이동호 변호사
/정인이 사건 보도 이후 대증적 입법만 넘쳐
/여당의 진상조사위 설치 법안은 안이한 대책
/5년간 300억 쓰고 일자리 제공 위원회 우려
/대통령 지시, 입양 가정에 책임 전가할 수도
/당장 초당적·범정부적 특위 구성해야 할 것
 
올해 신년 벽두부터 온 나라가 하나의 뉴스로 들끓었다. 16개월 된 아동이 입양된 지 불과 10개월 만에 양부모 학대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사망한 소위 ‘정인이 사건’이었다.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 사건이 유독 온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은 사망 전에 무려 세 차례나 경찰에 아동 학대 신고가 있었음에도 모두 묵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노가 처음에는 경찰과 입양부모를 향했었다. 국회의원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아동학대처벌특례 개정안이 사흘 만에 15건이나 발의됐다.
 
그러나 형량을 대폭 올리고 경찰의 권한을 강화해 줘야 한다는 식의 대증적인 내용이 주였다. 장기적인 대책보다는 대중의 분노에 편승한 입법이 우려됐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대증요법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칼럼을 1월 13일 기고한 바 있다. 형량을 올리면 가해 부모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증거를 숨겨서 기소와 재판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아동청소년 범죄 전문변호사의 우려를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입양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야말로 대증요법의 압권이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 중에 입양 가정 발생 건은 1%도 안됐고 학대가해자의 70% 이상은 친부모라는 통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 보도 이후 한 달 보름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현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이에 필자는 국회 법안 발의 현황을 다시 살펴봤다. 여야 이견 없는 9개 개정안을 묶어서 법사위원장 명의로 통과시킨 때가 1월 8일이었는데 그 후로 11개 법안이 새로 발의되어 있었다. 짧은 지면에서 법안 내용을 전부 언급할 순 없지만 모두 좋고 필요한 사항들이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국회부의장 김상희 의원 등 139명이 발의한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아동학대사망 사고 근절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면 대통령 산하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해서 과거 사례를 면밀히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제안 이유에는 영국의 ‘클림비 보고서’도 언급돼 있었다. 2003년 끔찍한 학대로 사망한 ‘빅토리아 클림비’ 사건 후 영국 정부 차원에서 2년 간 조사를 진행해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토대로 2004년 아동법을 제정해 아동학대 대응시스템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것이었다. 과거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반수 가까운 의원들이 발의했기 때문에 법 통과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항할 능력이 없는 아동이 학대로 죽어가고 있는데 몇 년 후에나 나올 위원회 보고서에 기댈 때냐고 말이다. 정인이 사건 후에도 전북 군산에서 2주밖에 안 된 젖먹이를 친엄마가 때려서 죽인 사건이 있었고 경북 구미에서도 3살짜리 아이가 친엄마의 방치로 죽은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로 위험이 급박한데 위원회 설치는 너무 안이한 대책으로 보인다. 실제 입양 부모이기도 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일찌감치 1월 7일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초당적 범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는데 여당은 아직 응답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제출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위원회 예산이 5년간 총 300억원, 연평균 60억원으로 추계되었다는 점이다. 이 금액은 사무처 인원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약칭 사참위) 인원 120명의 절반인 60명으로 가정한 금액이다. 사참위는 작년 말 법 개정으로 활동 시한이 또 2년 연장되었다. 기구라는 것이 한 번 설치되면 여러 사람 일자리도 걸려 있고 자체 생존 논리가 있기 때문에 연장을 추구하게 마련이니 이 위원회 또한 연장이 안 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특히 여권 성향 인사들이 사무처 ‘어공’으로 특채되어 일자리를 나누겠지 하는 생각에 미치니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다. 차라리 그 돈을 지금 당장 아동복지인력과 인프라 확장에 쓰는 것이 낫다고 본다.
 
문제의 원인을 입양 사후관리에서 찾는 부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정인이 사건 SBS 방송이 나간 직후인 1월 4일 입양 아동 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해서 전국입양가족연대로부터 큰 반발을 샀었다. 입양 건수가 일 년에 고작 수백 건으로 매우 적고 입양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도 극히 드물다는 이유였다. 입양 사후관리는 전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도 입증되었는데 정인이 사건 직후 발생했던 군산, 구미 사건도 친엄마가 아이를 사망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의 공론화로 중앙일간지(중앙일보 1월 5일자 입양아 키우는 김미애, “본질 왜곡 말라, 문제는 아동학대”)에도 크게 보도가 되었다. 이 보도가 대통령 귀에도 들어갔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는데 긴 시간이 안 걸렸다. 대통령은 지난 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또 입양 문제를 건드렸다. 심지어 입양 아동 사후 교체라는 신기한 해법까지 언급해서 다음 날 입양아와 그 부모들에게 사과해 달라는 청원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 발언을 거두지 않았고 그 사이에 발빠른 국회의원들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또 6건이나 쏟아냈다. 제안이유에서 모두 정인이 사건을 언급했다.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지자체도 가만있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의 17일 자료에 따르면 서울 성동ㆍ마포구, 대전 대덕구, 전북 고창군, 충북 청주시, 경남 함안군, 경북 울진군 등에서 법에 근거도 없이 입양 가정 전수 조사를 실시해 입양 부모들의 분노를 샀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입양을 결정했는데 아동 학대 방지 명목으로 우범자인 것처럼 정기적으로 가정 방문 조사를 당해야 한다면 가뜩이나 적은 입양이 더 줄어들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김미애 의원은 ‘피눈물’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문제를 지적했고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자체에 조사 중단을 요구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국회가 당장 할 수 있는 특위 구성을 미룬 채 수백억 예산이 드는 조사위원회를 꿈꾸고 길면 5년 후에나 나올 보고서에 해결을 미루는 사이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문제 원인을 극소수 입양 가정에 전가하는 사이에, 제2·제3의 정인이가 언제 또 나올지 모르겠다는 우울한 상상을 금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 당장 초당적, 범정부적인 특위를 꾸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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