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중심으로 ‘뉴트로(Newtro)’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뉴트로는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와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의 합성어다. 과거에 유행했던 문화가 다시 살아나 유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MZ세대는 자신들의 과거가 아닌 기성세대가 겪었던 과거에 낯설고 신기함을 느끼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뉴트로를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있는 MZ세대는 마치 기성세대의 과거를 살았던 사람처럼 그때 그 문화와 패션, 음악 등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소비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업계는 MZ세대의 뉴트로 문화에 발맞춘 제품을 출시하는 등 MZ세대 사로잡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라졌던 스톰·Lee 부활, SNS엔 랄뽕룩 점령…X세대 패션, MZ세대가 재소비
서울 광진구에 사는 대학생 윤지형 씨(가명)는 최근 ‘Lee’가 큼지막하게 적힌 맨투맨을 샀다. 윤 씨는 “깔끔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라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며 “‘Lee’라는 브랜드 로고가 지나치게 튀지 않고 심플하게 적혀 있을 뿐만 아니라 여유 있는 핏에 오래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어서 자주 입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의 경우 맨투맨뿐만 아니라 티셔츠, 청바지도 여러 개 가지고 있다”며 “그동안 Lee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베이직한 브랜드를 찾기 어려웠는데 앞으로 이 브랜드 옷을 종종 사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뉴트로 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20년 전 유행했던 브랜드들이 새로운 패션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영화배우 소지섭과 송승헌이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됐던 ‘스톰’부터 리바이스와 함께 3대 청바지 브랜드로 불리던 Lee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브랜드는 1970년 중반에서 1980년 초반에 태어난 ‘X세대’가 대학 시절 즐겨 입던 브랜드였다. 그러나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면서 요즘 스타일로 재해석된 제품들이 다시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Lee는 재출시된 이후 MZ세대로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다. Lee는 1986년 쌍방울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청바지 브랜드로 패션 업계에서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4년 돌연 사라졌다.
그러던 중 ‘커버낫’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패션 스타트업 배럴즈가 지난해 미국 VF코퍼레이션으로부터 Lee의 판권을 사오면서 Lee는 올해 8월 국내 소비자 앞에 다시 서게 됐다.
재출시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Lee의 인기는 상당히 매섭다. 최근 진행된 무신사 라이브 방송에서 티셔츠와 야구 모자 등을 판매한 Lee는 1시간 만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서울 홍대에 운영 중인 Lee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성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고 중심의 캐주얼인 일명 ‘폴로 스타일’ 브랜드를 찾는 MZ세대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자신이 입은 그날의 코디를 뜻하는 ‘OOTD(Outfit of the day)’는 MZ세대가 SNS에 빼놓지 않고 인증하는 콘텐츠다. OOTD를 살펴보면 MZ세대의 코디에 폴로 스타일 브랜드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랄뽕룩(랄프로렌 뽕 맞은 룩)’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해당 콘텐츠가 3만8000여건이나 검색됐다.
이같은 인기에 폴로 스타일 브랜드의 매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폴로 셔츠로 유명한 랄프로렌의 멤버십 가입 고객 중 MZ세대의 비중은 전체의 5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가량 증가했다. 올해 3월 한섬의 타미힐피거 매출은 지난해 대비 41% 늘었다. 그중 20~30대 매출 신장률은 63%에 달했다.
1990년대에서 넘어온 듯한 상·하의를 입고 패션 아이템을 갖춘 채 거리를 활보하는 10~20대를 본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며 반색했다.
올해로 43세가 된 직장인 류진욱 씨(가명)는 “요즘 10~20대의 패션을 보면 생소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며 “나와 친구들이 1970년대의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성세대가 입던 브랜드를 최근 MZ세대가 다시 소비하고 있다”며 “지금 10~20대는 1990년대 의류 브랜드가 옛날에 유행한 걸 전혀 모르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곱창 머리끈부터 LP·필름 카메라까지 뉴트로 열풍…1990년대 음악 통해 힙한 감성 심취
뉴트로 문화는 의류 브랜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 여름 MZ세대 사이에선 촌스럽게 여겨지던 곱창 머리끈이 크게 유행했다. 1990년대 당시 배우 김희선이 드라마에서 묶고 나온 곱창 머리끈은 커다랗고 단색의 제품이었지만 지금은 체크, 물방울 등 다양한 패턴이 들어간 작은 사이즈의 곱창 머리끈이 인기를 끌었다.
사라져가던 LP도 재유행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량은 2019년에 비해 106% 이상 증가했다. LP 구매자의 21.2%는 20대, 31.7%는 30대로 MZ세대의 LP 구매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에 익숙해진 MZ세대에게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LP가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필름 카메라를 찾는 MZ세대 역시 크게 늘었다. 대학생 허이슬 씨(가명)는 “필름 카메라는 사용법이 다소 복잡하지만 아날로그 필름만의 감성이 있고, 한 컷 한 컷 찍어야 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며 “스마트폰으로 수십, 수백장을 찍을 수 있는 인물이나 풍경 등도 필름 카메라로 찍으면 더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뉴트로는 MZ세대가 듣는 음악에도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서태지의 음악을 다시 세상에 퍼뜨린 삼성전자 ‘컴 비스포크 홈(COME BESPOKE HOME)’ 광고는 뉴트로를 가장 감각적으로 선보인 광고 중 하나로 꼽힌다. 해당 광고는 현재 유튜브 조회수 2200만건을 돌파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광고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5년에 발표한 ‘컴백홈’을 배경 음악으로 다양한 전자제품이 소개된다. 음악에 맞춰 문을 여닫는 냉장고나 사람들의 삶에 맞닿아 있는 에어컨, 세탁기, 무선청소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세상에서 가장 나다운 공간인 집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컴백홈 노래와 근사한 조합을 이룬다.
컴 비스포크 홈 광고는 MZ세대로 하여금 비록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자란 X세대의 추억은 모르지만 1990년대의 힙한 감성을 느끼게 만들며 뉴트로 문화에 더욱 심취하도록 유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트로 문화에 푹 빠진 MZ세대를 위해 국내 기업들은 뉴트로 콘셉트를 적용한 제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뉴트로 제품을 내놓고 있는 곳은 편의점 CU다. CU는 지난해 대한제분과 손잡고 곰표 밀맥주를 출시했다. 곰표 밀맥주는 맥주 캔에 대한제분의 백곰 마스코트인 표곰과 곰표 밀가루 특유의 복고풍 서체, 패키지 디자인 등을 적용해 뉴트로 감성을 최대한 연출했다. 곰표 밀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초도 생산 물량 10만개가 완판되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모름지기 트렌드란 늘 태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한다”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기성세대의 문화로부터 낯설고 촌스럽지만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은 MZ세대가 뉴트로 문화를 ‘신상’으로 여기면서 뉴트로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황으로 MZ세대의 삶은 다소 남루한 데 반해 소비 추세는 더욱 비싸지고 화려해지다보니 과거로부터 위안을 얻고 대신 만족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 MZ세대를 중심으로 1990년대의 패션과 음악 등이 뉴트로 문화라는 이름 하에 되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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