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도 점차 변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제한되고 식당·카페 등 매장의 영업시간도 오후 9시로 제한되면서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부쩍 줄어든 반면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술족’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최근 홈술족들 사이에선 ‘저도주’ 열풍이 불고 있다.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낮은 도수의 소주나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인 무알코올 맥주, 하드셀처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주류업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 1% 미만 무알코올 맥주 폭발적 인기…저칼로리 하드셀처 줄출시
홈술족 인기를 주도하고 있는 건 MZ세대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박효영 씨(31)는 최근 무알코올 맥주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박 씨는 “평소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나면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기 마련이다”며 “매일 맥주 한 캔 정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맥주도 술이다 보니 마시다보면 취기가 오르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속이 살짝 더부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도 “그러나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부담이나 걱정을 한 번에 덜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술과 달리 무알코올 맥주는 온라인 주문을 통해 간편하게 배송도 받아 볼 수 있어서 요즘엔 대량으로 주문해 매일 밤 가볍게 맥주를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한 술을 기피하는 MZ세대의 특성이 국내 주류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주류로 꼽히는 맥주의 도수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특히 알코올 도수가 1% 미만인 무알코올 맥주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약 150억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2012년 13억원 규모 대비 11배 넘게 성장한 수치다. 올해 1~7월 이마트의 무알코올 맥주 매출은 1.7%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무려 81.3% 늘었다. 홈플러스의 경우 7월 한 달간 ‘하이트제로0.00’가 45%, ‘카스 0.0’가 48%, ‘클라우드 클리어제로’가 18% 등 무알코올 맥주 제품모두 매출이 증가했다.
향후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류 업체에 이어 수입 맥주 유통사 등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3~4년 내 2000억원대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무알코올 맥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알코올 맥주는 일반 주류와 달리 성인 인증만 거치면 온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이에 오비맥주의 카스 0.0은 지난해 11월 말 쿠팡에 입점한 후 8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캔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드셀처 시장도 급성장 하고 있다. 하드셀처는 알코올에 과일 추출물과 탄산수를 섞어 만든 술을 지칭한다. 도수는 5% 내외로 맥주와 비슷하다. 와인의 도수보다도 낮다. 열량도 355㎖ 기준 100kcal 정도로 부담이 적다. 낮은 도수와 열량 덕분에 하드셀처는 저도주·저칼로리 등을 추구하는 MZ세대 소비 트렌드에 적합한 주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주류 업체들은 하드셀처 신제품 마련에 바삐 움직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하드셀처 신제품 ‘클라우드 하드셀처’를 선보일 예정이다. 종합 주류 업체 아영FBC도 최근 미국,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알코올 스파클링 워터 ‘더티 하드셀처’를 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와인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 적합한 주류로 맥주의 인기가 높았지만 최근 칼로리와 설탕 함유량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하드셀처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맥주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16.5도 저도 소주 시대 개막…독한 소주에 토닉워터 ‘소토닉’ 인기
무알코올 맥주, 하드셀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주류로 꼽혀 온 소주의 도수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국내 대표 주류 업체인 하이트진로는 최근 주력 소주 브랜드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9도에서 16.5도로 낮춘 리뉴얼 제품을 출시키로 했다. 이번 리뉴얼은 병과 페트 등 전 제품에 적용된다. 출고가와 패키지 디자인 등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참이슬 후레쉬 리뉴얼을 위해 하이트진로는 이달 17일 16.5도 제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참이슬의 도수 인하는 올해 4월 뉴트로 콘셉트 소주 ‘진로’가 도수를 낮춘 데 이어 두 번째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도수를 16.5도로 낮추며 저도주 시대를 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으로 진로의 도수를 낮춘 바 있다.
소주의 도수는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무학의 ‘좋은데이’가 16.9도의 저도 소주 시대의 포문을 연 이래 처음처럼과 참이슬, 진로 등 유명 소주 브랜드를 비롯해 지역 소주 업체들도 대부분 17도 벽을 허물고 16도대에 진입했다.
소주 도수는 35도 고도주에서 시작해 △1965년 30도 △1993년 25도 △1998년 23도 △1999년 22도 △2005년 21도 △2006년 20도 등으로 점진적으로 낮아졌다. 이후 △2012년 19도대 소주가 출시되면서 저도 소주의 등장을 알렸고 △2014년 18도 △2019년 17도 등으로 도수가 내려 왔다. 현재 16.9도 저도 소주가 보편화된 가운데 16.5도로 더 낮아진 소주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층 낮아진 소주 도수에도 부담을 느끼는 MZ세대 사이에선 토닉워터를 소주에 섞어 마시는 칵테일 이른바 ‘소토닉’도 유행하고 있다.
대학생 이한준 씨(26)는 “소주에 토닉워터를 섞으면 도수가 떨어지면서 더 부드럽게 술을 즐길 수 있다”며 “레몬, 라임을 곁들이는 식으로 다른 재료를 섞는 재미도 있어 토닉워터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저도주라는 메가 트렌드를 공략하기 위한 주류 업체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며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독한 술 대신 낮은 도수의 저도주와 다양한 맛을 가진 주류 등으로 음주를 즐기는 MZ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주류 업체들의 대응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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