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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지난 6일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각각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첩보 관련 보고서 무단 삭제, ‘탈북 청년 강제 북송’ 사건의 합동조사 강제 조기 종료 혐의로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국정원이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전직 수장들을 직접 고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두 사건은 다음날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1부와 3부에 각각 배당됐다. 국방부와 해양경찰청이 어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해 “피살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던 1년9개월 전 발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태도를 바꿨다.
법원은 ‘북측의 실종자 발견 경위’ 등 정보를 공개하라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문 정부 당시 청와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윤석열정부의 국가안보실은 이를 취하했다.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벌어진 관계 부처의 신속한 조처 ‘탈 월북’ 주장에, 야권에서는 ‘문 정부 친북 몰이’에 나선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북한에 의해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와 관련해 국방부로부터 받은 첩보를 기록에서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일인 2020년 9월22일 이씨의 생존 정황, 이후 북의 사살 및 소각 상황이 담긴 정보를 군과 국정원이 함께 지웠다는 얘기다.
박 전 원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국정원은 증언을 확보했다며 맞서고 있다. 서 전 원장은 2019년 11월 귀순한 북한 어민 2명에 대한 조사를 사흘 만에 끝내고 북한에 북송을 제의한 후 북송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 전 원장은 당시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하기 위해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도록 서둘러 귀순 청년들을 북송한 정황도 포착됐다.
피살 공무원 유족 “文 정부 똘똘 뭉쳐 월북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대준 씨가 2020년 9월21일 소연평도 해상근무가 종료된 이후에 북한군에 사살돼 불태워진 사건이다. 2008년 이명박정부 당시 금강산 관광객 피살에 이어 북한군에 의한 두 번째 한국 민간인 사살 사건이다. 대준 씨는 생존 여섯 시간 동안 정부가 구조한 흔적이 없고 ‘자진 월북’한 사건으로만 가족에게 남겨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문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과 종전선언에만 집착한 나머지 국민 보호라는 책무를 저버린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북한은 사건을 인정하면서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예민한 시기에 한국 정부가 주민을 제대로 관리 및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한국 정부 탓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을 물었고, 해양경찰청은 당시 사건 직후 이 씨가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가 월북 전 수억 원대의 도박을 했으며 채무 탓에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었다고 밝혔다. 중간수사보고에서도 이 씨를 ‘정신공황’으로 지칭하며 도박 송금 기간과 횟수·금액 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동생은 바다에서 화형 당하기 전에 이미 사망한 것 같다”며 “이 부분에 대한 북측 입장과 의견을 자세히 알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면담 당시 전달한 서한이 김 위원장에게 도달하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통일부와 외교부·해양경찰청 등 관련 부처들이 동생의 희생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상 규명을 약속한 문 전 대통령은 오히려 퇴임 직전 해당 기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비공개로 묶었다.
아버지의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졸지에 도박 빚쟁이·월북자가 된 아버지에 대해 대준 씨의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최근 “아빠가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진실을 밝히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답했었지만, 청와대는 이를 외면했다. 결국 지난해 9월 이래진 씨는 해외주재 북한 공관으로 서한을 보냈다. 동생 대준씨의 시신 확인을 요청하는 서한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한 것. 그는 언론에 “홍콩과 몽골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이메일을 보냈다”라며 “왜 죽였는지, 어떤 방법으로 사살했는지 등에 대해 동생을 죽인 당사자인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정확한 경위를 듣고 싶다”고 밝혔다.
정부의 침묵으로 난맥상에 빠져들 법한 해당 사건은 윤석열정부 들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유가족 및 국민의힘 태스크포스(TF) 등의 의견을 종합하면 해당 사건에서 풀려야 할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들이 가장 집중하는 것은 서해 공무원 피살 ‘의문의 6시간’ 행적이다. 군은 사건 당일 오후 3시30분 이씨의 생존 사실, 오후 9시 40분 사살 및 소각 사실을 특수정보(SI)를 통해 감지했다. 대준 씨가 북한군에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 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7시간에 걸친 방대한 감청 기록에는 ‘월북’은 단 한 번 나오고, 북한 병사의 “월북했다”는 한 마디에 이 씨는 월북자가 되고 말았다. 청와대가 ‘자진 월북 몰이’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오후 6시30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락 추정 사고로 북측 해역에서 우리 국민이 발견됐다’는 서면 보고가 올라갔지만 아무 지시도 없었다. 이 씨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지기 세 시간 전의 시간으로 이 씨의 생존 사실을 파악한 만큼 구출하려는 조처를 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문 전 대통령이 아무런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게 국민의힘 TF의 조사 결과다. 같은 날 오후 10시30분쯤 사망 사실이 청와대에 보고됐지만 문 대통령은 취침 중이었다고 전해진다.
대준 씨 피살 직후인 23일 새벽 1시 청와대는 긴급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했으나 문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피살 네 시간 뒤에 대통령의 종전선언 촉구 유엔 화상 연설이 방송됐다. 그 시간에 관계 장관들은 다른 방에 모여 공무원 피살 회의를 연 것이다. 이 회의에서 ‘월북 몰이’가 결정됐다는 게 이 사건 진상을 추적해온 국민의힘 TF의 주장이다.
TF는 최근 “당시 우리 군이 확보한 첩보는 7시간 통신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라며 ”그 중 ‘월북’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 등장했으며 그 전후 통신에는 월북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문재인정부의 대대적인 월북 몰이가 있었다’며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를 거듭 촉구했다.
밈스(MIMS) 정보 삭제의혹 박지원 의혹 전면 부정
박 전 국정원장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인 밈스(MIMS)의 정보를 삭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원장은 대준 씨 사건 직후 수사 결과 발표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거의 참석했고, 사건 관련 김정은의 친서를 북한으로부터 받았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엄중하게 처벌돼야 할 사안이다. ‘밈스’는 합참, 일정 규모 이상의 육·해·공군 작전부대, 한미연합사, 국정원 등에 배치된 군사정보 공유 플랫폼으로 국방부가 관리한다. 이는 대준 씨의 ‘월북몰이’ 핵심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월북을 단정할 명백한 증거가 없는데도 월북 의사가 있었다고 몰아가기 위해 당시 안보기관끼리 주고받은 특수정보(SI)를 임의 삭제했다는 혐의를 받기에 이른 셈이다.
밈스가 군의 긴밀한 정보를 관련 부처가 공유하는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인 만큼 청와대 등 관련 부처가 이씨 사건의 경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월북이었다면 굳이 해당 정보를 숨길 이유가 없다는 반론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박 전 원장이 삭제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부분도 이 씨가 월북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보가 아니었나 의심하고 있다.
정보 삭제를 누가 무엇 때문에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박 전 원장은 애써 “제가 서버에 들어가 첩보 관련 공유정보를 삭제했더라도 메인 서버에는 그대로 남는다”며 “삭제를 하면 정권이 바뀌고 나서 그 기록을 볼 수 있는데, 감옥에 가려고 하는 국정원장이나 직원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박 전 원장을 비롯해 전 정권 인사들은 여건의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칙위원장은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민생이 굉장히 심각한데 지금 그런 걸 할 때냐. 이게 왜 현안이냐”고 항변했다. 고민정·김의겸·윤건영·진성준 의원 등은 지난달 24일 내놓은 성명에서 “당시 해경과 군은 각각의 영역과 능력 범위에서 온 힘을 다해 성실히 수색하고 조사에 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경과 군 당국이 사과하고 사의를 표명할 이유가 없다”며 “권력의 눈치만 보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식의 행태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해 유족은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을 검찰에 추가 고발했다. 서 전 장관이 고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씨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직권남용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서 전 장관과 이영철 전 국방정보본부장을 고발했다.
이 씨는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 김종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을 고발했다.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는 “메인 서버에 있는 원본까지 다 지워야만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와 유족은 5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씨가 북한 측에 발견된 후 사망 전까지 6시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검찰에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청구를 요청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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