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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고환율, 저성장이라는 ‘3고 1저’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취업난으로 청년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5명 중 1명은 사실상의 실업 상태에 놓여있고, 올 상반기 청년층의 체감 물가 상승률은 2019년의 10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청년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며 물가 상승·구직난 등으로 희망 없는 현실에 체념하는 청년이 늘면서 국가의 미래성장 동력도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층, 취업난·빚·고물가에 허덕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22년 상반기(1∼6월) 기준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를 산출한 결과 10·20대 청년(15∼29세)들의 체감경제고통지수가 25.1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60대가 16.1로 뒤를 이었고, 30대 14.4, 50대 13.3, 40대 12.5 순이었다. 체감경제고통지수는 체감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친 값을 말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경제적 어려움을 체감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청년층은 물론 전 연령층의 체감경제고통지수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 전문가와 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이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본 한국개발연구원(KDI) 설문조사 결과도 21일 나와 눈길을 끌었다.
KDI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을 맞아 경제 전문가 405명과 20대 이상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의 97%, 국민의 96.3%가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답했다. 특히 전문가들의 49.9%는 ‘매우 큰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것도 문제로 지목됐다. KDI 조사에서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지난 60년간 우리 경제·사회 발전 속에서 가장 미흡했던 부분으로 빈부격차 확대(40.5%)를 꼽았다.
국민이 체감하는 한국 경제에 대한 미래 전망도 어두웠다. KDI에 따르면 5년 후 한국 경제·산업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37.7%는 ‘보통’이라고 답했고 ‘다소 열악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도 19.9%나 됐다.
특히 한국 경제 미래 주역인 청년층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019년 23.4에서 2020·2021년 25.4로 커졌으며 이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청년층의 고통이 유독 큰 이유로는 구직난이 꼽힌다. 실제 올 상반기 청년 체감실업률은 19.9%로, 60대 11.3%, 30대 9.5%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이 청년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더한 것이다.
청년 취업난의 배경에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증가 속도가 대졸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이 지적된다. 2017∼2020년 배출된 대졸자는 223만4000명인 데 반해 신규 고학력 일자리는 126만4000개로 절반에 그쳤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하는 청년 비중이 절반 이상에 이를 정도”라며 “취업 기회가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들어 부쩍 높아진 물가가 청년층의 체감경제고통지수를 끌어 올렸다고 전경련은 분석했다.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5.2%로 2019년 0.5%의 10배 수준에 달했다. 특히 청년이 주로 소비하는 영역들이 폭등해 청년층의 어깨를 짓눌렀다.
1~3분기 기준 지출목적별 물가상승률을 살펴보면 교통(11.7%), 음식 및 숙박(7.3%),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5.9%), 기타 상품 및 서비스(5.5%) 순으로 전체 물가상승률(5.0%)을 웃돌았다. 특히 청년들의 소비지출 주요 영역인 음식 및 숙박, 교통, 식료품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전경련은 “청년들이 소비를 많이 하는 부문에 물가 상승이 집중되면서 취업 준비 중이거나 소득이 적은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이 생활비 상승 직격탄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청년층의 이러한 경제적 고통은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차주 가운데 20·30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61.6%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한 전체 차주는 137만6802명으로 이 가운데 20대 차주는 30만6013명, 30대 차주는 54만2014명에 달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채무자도 1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101만6613명에 달했고 대출 잔액 합계도 6조4933억 원에 육박했다.
2017~2021년 청년층(29세 이하 가구주) 부채 증가율(48.3%)은 전체 부채 증가율(24.0%)의 두 배에 달했다. 청년층 원리금 상환액 증가율(34.9%)도 전체 원리금 상환액 증가율(23.5%)의 1.5배 수준이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동반 상승하면 청년들의 재무 건전성은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경련은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은 주거 마련을 위한 전세 대출 비중이 높고 상당수가 지나치게 빚을 많이 내 투자를 하거나 집을 사는 등 채무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며 “올해 연말 추가 기준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청년들의 재무 건전성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암울한 경제, 청년층 고립 심각
이 가운데 취업난과 생활고 등에 시달리면서 좌절감에 빠진 일부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전년 대비 20대의 자살 증가율은 12.8%였다. 2020년 20대 1471명, 30대 1874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17년 이후 3년간 40대 미만 고독사 비율은 62%나 늘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만 18~34세 남녀 35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3.4%가 집 밖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 표본조사를 토대로 국내 청년 인구 1100만 명 중 3.4%인 약 37만 명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17년 진행된 같은 연구조사보다 약 7만8222명이나 증가한 규모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관계자는 “청년층의 극단적 선택 급증은 코로나 여파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사회적 단절 등 정서적 문제와 일자리 감소라는 경제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으로 청년들이 취업 등 여러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개혁에 초점을 맞춘 중장기적 대응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내년 우리 경제가 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고금리 여파로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나 소비축소로 이어져 경기침체가 가속화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 관계자는 “청년층이 무한경쟁 사회로부터 겪는 박탈감, 불안과 무력감 등의 정신적 위기를 잘 대처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청년층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정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지속되는 청년 취업난에 급격한 물가상승까지 더해져 청년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면서 “규제 혁파,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고용 유연성 확보 등으로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민간 일자리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고용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 기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 경쟁, 고금리·고물가 등으로 복합 경제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추 부총리는 “다가오는 경제 복합위기 극복을 위해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장바구니·생활물가 안정 대책 등 민생경제 안정과 과감한 규제 혁파, 기업 과세 체계 정비 등을 통한 민간 중심의 경제 운용 등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한 체질 개선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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