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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발의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이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며 게이머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주된 쟁점으로는 국내 게임 산업 피해와 해외 게임사와의 형평성 등이 거론됐다. 특히 게임업계는 해외 게임 사업자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역차별 문제를 부각하고 있다. 다만 해외 사업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하더라도 국내 서비스 금지는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효력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형평성 논란 재점화… “해외 게임, 자율 규제 준수 45~50%”
지난해 12월2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5건을 포함한 게임법 개정안 11건을 심사했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규제 5건이 결국 계류되며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전부터 과도한 현금결제 유도와 사행성 논란 등으로 비판받아왔다. 이에 따라 2015년 3월 정우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과 구성품 정보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게임업계는 자율규제를 주장했고 2015년 7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시행됐다. 그러나 자율규제 출범 당시에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실효성에 있어서는 비판이 컸다.
여기에 2021년 게임업계에서 확률형 아이템 관련 논란이 연달아 발생하며 게임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졌고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지난 대선에서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대선 공약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이상헌·전용기·유동수·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더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게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여야가 입장을 같이 한 만큼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에 발의된 게임법 개정안에는 △확률형 아이템 정의 신설 △게임사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 부과 △확률형 아이템 구성 정보 공개 △컴플리트 가챠 금지 △확률형아이템 확률정보 관련 조사 및 시정 요구 권한을 가진 게임물이용자위원회 신설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윤덕 의원이 발의한 확률형 아이템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미뤄지게 됐다. 이상헌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 정보는 다음 법안소위에서 최우선으로 재논의되는 것으로 정리됐다”며 “합의 막바지에 법안 통과가 지연돼 너무 아쉽고 허망하다”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 역시 “게이머를 위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무산됐다”며 “2년간 여야가 한뜻 모아 추진한 법이 완전 헛수고가 됐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확률형 아이템 법안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김윤덕 의원실과 연락해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윤덕 의원실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와 이용자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한다”며 “다만 당장 법을 만들고 보자는 접근법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법안을 만들자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한 번 만들고 나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개정안을 만드는 데에 최소 3년은 걸린다”며 “그 최소 3년의 기간 동안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발생하는 문제를 책임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윤덕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에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계류된 이유로 △관리 감독 기관의 부재 △해외 게임과의 형평성 △게임 산업 피해 우려 등을 꼽았다. 먼저 유일한 법적 기구는 게임물관리위원회(게관위) 뿐인데 게관위가 기존 등급 분류 업무에도 논란을 일으키는 등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확률형 아이템 모니터링까지 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이뤄진다고 해도 해외 게임의 경우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이러한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통과될 경우 해외 게임들의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문제는 방치하면서 국내 게임사에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덕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자율규제 심의기구만 봐도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자율규제 준수 비율이 90~99% 수준인데 해외 게임의 경우 45~5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국내 게이머들은 구글플레이 등을 통해 규제 없는 해외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데 국내 게임사만 규제로 묶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확률공개가 산업 발전… 국내 서비스 금지하면 해외 게임사도 타격”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법안 계류 소식이 알려지며 이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한국게임학회는 김윤덕 의원실에 전달한 질의서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의 범람으로 국내 게임 업계는 수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으며 돈으로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확률형 아이템 기반 게임 특성상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와 같은 규제는 산업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자율 규제 하에서는 해외 게임이 확률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으며 자율규제가 역설적으로 한국 게임을 역차별하고 있다”며 “한국 게임이 자율적이고 성실하게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면 그대로 지속하면 되고 해외 게임사가 공개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게임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게임 자율규제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확률 정보 공개를 시행하고 전문적인 모니터링과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용자 권익 보호에 충실하고 있다”며 “법적 규제 시 사실상 처벌받을 가능성이 없는 해외 개발사 및 퍼블리셔의 경우 확률을 공개할 유인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와 관련해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체적으로 기업 운영상의 피해보다는 해외 게임사와의 역차별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자율규제에서 법제화가 이뤄지면 게임사 입장에서 일이 더 생길 수도 있지만 이미 자율규제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 공개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며 “오히려 확실히 법으로 정해 두면 소비자 신뢰 부분에서는 개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려되는 부분은 해외 게임사와의 역차별 부분이라 정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확실히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해관계 당사자인 게임 업계에서 해외 게입업체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초점은 해외 게임사에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해외 게임 규제와 관련해 게임법에 따라 게임물을 심의하고 있는 게관위에 대해 물었다. 게관위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요소가 들어간 게임물에 대해서는 접속금지 나 등급 분류 취소 등의 조치는 가능하다”며 “다만 국내 법인이 없는 해외 게임사에 대해 영업 정지 조치를 한다든가 과태료를 매긴다든가 등은 힘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법적 처벌은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게임법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지키지 않는 해외 게임사의 국내 서비스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VPN(가상 사설망)을 사용해 우회접속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국내 이용자들이 확률이 공개되지 않은 해외 게임에 접속해 대량의 확률형 아이템 구매를 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법적 처벌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 서비스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규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게임사 입장에서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매출을 올리고 싶다면 국내 법인을 두고 국내 시장에 정식 서비스를 하는 것이 이득이다”며 “국내에 서비스하지 않으면서 국내 게이머들이 이용하게 하려면 한글화하고 서버도 운영해야 하는데 소수 우회 이용자를 위해 이렇게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해외 게임사가 관련 규제에서 자유롭다거나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국내 게임사에만 피해를 준다고 하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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