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계 뿐 아니라 영화계와 안방극장에서도 영화 ‘동감’부터 지난해 가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서울대작전’,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레트로 키워드가 인기를 얻었다. 엔터테인먼트계에 불어닥친 복고 바람을 조망해 본다.
가요계, 90년대 명곡 리메이크부터 패션 컨셉까지 레트로 바람 불어
가요계에서는 90년대 음악을 리메이크 하는 방식으로 레트로 바람이 불었다.
지난달 16일 보이그룹 NCT 드림은 발매된 H.O.T.의 ‘캔디’를 리메이크 해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90년대 감성을 극대화하는 단단한 에너지의 비트를 강조해 ‘맞춤형 리메이크’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NCT 드림의 ‘캔디’는 일반적으로 리메이크곡을 이벤트성으로 발매하는 경우와 달리 ‘캔디’를 앨범의 타이틀로 내세웠던 케이스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도 레트로 유행에 가세했다. 전 세계에 K팝 열풍이 불어닥치자 K팝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과거 K팝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기류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해외 팬들은 H.O.T.를 비롯해 보아·신화·핑클·S.E.S·젝스키스 등 과거 K팝그룹들의 음악을 찾아듣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현상은 ‘백워드 스필오버’라고도 불린다. 새로 유입된 가수의 팬이 과거 음반까지 관심을 갖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가요계에선 이 같은 아이돌 그룹의 리메이크를 두고 ‘Y2K(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행한 문화현상) 인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1990년~2000년대 패션과 음악이 소위 ‘세기말 감성’이라 불리며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호응을 얻고 있는 시장 분위기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7월 데뷔한 5인조 신인 그룹 뉴진스도 Y2K 감성을 전폭적으로 내세운 이 같은 레트로 코드를 들고 나오면서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데뷔 음반 ‘뉴진스’의 타이틀곡인 ‘어텐션’ ‘하입보이’ ‘쿠키’부터 지난해 12월19일 공개한 프리 싱글 ‘디토’까지 모든 곡에 레트로(복고) 콘셉트를 입혀 인기를 끌고 있다. 1세대 걸그룹 S.E.S와 핑클을 연상하게 하는 긴 생머리 스타일에 ‘디토’의 뮤직비디오 화면을 채운 1990년대 학교 풍경 등도 이들의 레트로 콘셉트에 힘을 보탰다. 덕분에 MZ세대의 호기심과 304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데뷔와 동시에 관심을 받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룹이 아닌 솔로 가수들 사이에서도 ‘Y2K’는 인기있는 코드가 됐다.
가수 테이가 최근 리메이크해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던 ‘모놀로그’도 대표적이다. 이 곡은 밴드 버즈의 2003년 발매곡인데, 버즈의 보컬 민경훈의 가창력이 돋보여 수많은 남성들이 따라 불렀던 곡이다.
걸그룹 에이핑크 출신인 정은지는 최근 “자기 또래가 코인노래방에서 자주 부른 노래”란 이유로 첫 솔로 리메이크 앨범 타이틀곡을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조덕배 ‘나의 옛날이야기’, 김창완 ‘너의 의미’ 등을 앞세웠던 아이유의 ‘꽃갈피’처럼 그간 가요계 후배들의 리메이크 앨범이 선배 원로 가수에 대한 존경심을 주로 표하던 것과는 방향성이 달라졌다.
가수 임영웅은 이문세가 2010년 드라마 OST로 불렀던 곡, ‘사랑은 늘 도망가’를 지난해 다시 리메이크 해 큰 인기를 얻었다. 임영웅이 부른 버전의 이 곡 뮤직비디오 영상은 최근 조회 수 7000만 회를 넘겼다.
정민재 평론가는 가요계의 레트로 코드와 관련해 “최근 KBS 연말가요시상식도 무대 키워드를 아예 ‘Y2K’로 앞세웠고, 아이브·있지·(여자)아이들 등 멤버들이 선배 걸그룹 SES 곡을 불렀다”며 “1세대 아이돌도 벌써 첫 데뷔가 20년 전이 됐다. 이들을 ‘계승’한다는 이미지가 이젠 위 세대에게는 그리움을, 젊은 세대에겐 신선함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도헌 평론가는 “위 세대 그룹들과 달리 최근 아이돌 그룹들은 전 세대를 아우르거나 일반 대중이 한 곡을 통으로 외우는 히트곡이 적다”며 “’인기는 많아도 오래 가는 명곡은 적다’는 요즘 아이돌의 고민에 대해 리메이크가 현명한 대안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가요계에서 불고 있는 레트로 열풍에 대해서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의 것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오히려 시대라는 선입견에 구애받지 않는 젊은이들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이문원 평론가는 “요즘 세대는 특히 신곡과 과거곡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곡을 유튜브 등으로 콕 집어 찾아 듣는 ‘디깅(Digging)’ 세대로 불린다”며 개인적 취향에서 비록된 레트로 열풍에 대해 평가했다.
영화·드라마에서도 소품·풍경·음악 등 레트로 바람 불어
한편 이 같은 레트로 코드는 음반계 뿐 아니라 스크린과 방송가에서도 ‘Y2K 감성’을 앞세워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해 4월 종영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에 혼란을 겪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영화에서는 펜싱 꿈나무로 분한 김태리와 방송사 스포츠 기자 남주혁의 로맨스에 삐삐·폴더형 휴대전화뿐 아니라 1990년대에 연재된 만화 ‘풀하우스’ 등이 주요 소품으로 등장해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동감’도 1999년의 대학가 풍경을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 레트로 감성을 물씬 풍긴다는 평가다.
영화는 각각 1999년과 2022년에 살고 있는 대학생 여진구와 조이현이 무전기로 연락을 나누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유선 이어폰·스티커 사진·공중전화·자전거 등 복고 느낌이 물씬 나는 소품이나 ‘방가방가’ ‘하이루’ 등 1999년의 유행어는 당시 시절을 젊은 시절로 보낸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9월 개봉해 2022 VIFFF(Vevey International Funny Film Festival)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한국식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레트로 감성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에는 이문세의 ‘조조할인’ ‘알 수 없는 인생’,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신중현의 ‘미인’,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이적의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다행이다’,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 등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당시 시대를 풍미한 가요 곡들을 부르며 춤추는 배우들의 모습과 80년대와 90년대 분위기를 살린 영화 속 레트로한 풍경 등 레트로 코드가 영화 곳곳에 배어 있어 주목 받았다.
1988년 서울을 배경으로 자타공인 최고 드라이버 동욱(유아인 분)과 친구들이 최고 권력자의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 ‘서울대작전’도 레트로한 감성을 자극하고 나섰다.
지난해 8월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1988년을 드러내는 소품들에 요즘 시대 감성을 더했다. 포니 픽업 등 올드카를 개조해 차량 추격신에 사용했으며, 작품 곳곳에는 강렬한 비트의 올드 스쿨 음악과 패션이 녹아있다.
영화를 연출한 문현성 감독은 “가상의 이야기와 1988년을 자연스레 연결하기 위한 핵심 고리로 상계동을 포함한 설정을 영화 곳곳에 배치했다”며 “그런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도 함께 느껴보시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요계를 비롯해 극장과 안방가에 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레트로 바람의 원인으로 요즘의 젊은 세대들과 과거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각기 다른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켰기 때문으로 지목했다. 서로 다른 동기에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두 세대가 소통하고 만나는 접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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