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지역부터 ‘봄의 전령사’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동북아에서 매화나무는 오랜 세월 예술적 표현의 소재이자 일상의 요긴한 식재료(매실)를 제공해 왔다. 뛰어난 인문학자 이어령(1934~2022)이 20여 년 전 한·중·일 문화코드 읽기 시리즈(매화 편)를 통해 ‘매화문화권’ 개념을 제출한 바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는 지난해(2월9일)보다 25일 정도 빠르게 매화가 피었다. 지난달 4일 최초로 매화 발아가 관측됐다. 평년보다 기온이 10℃가량 높은 18.4℃까지 오르면서 일찍 개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매화 축제도 앞당겨진다. 먼저 광양매화축제가 8~17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양산원동매화축제는 9~17일 경남 양산시 원동면 쌍포매실다목적광장 및 원동역 일원을 방문하면 즐길 수 있다.
이야기와 사연이 더해져 한층 유명해진 매화도 있다. 우리나라 4대 매화로 일컬어지는 △ 강릉 오죽헌 ‘율곡매’ △ 전남 구례 화엄사 ‘들매’ △ 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매’ △ 전남 순천 선암사 ‘선암매’가 그것이다.
매화에 관한 우리 민족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24년 항목이다. 삼국유사 제3권 아도기라(阿道基羅·아도和尙화상이 신라의 기초를 닦다) 맨 끝부분엔 “모랑댁(毛郞宅) 매화꽃 먼저 피게 하였네”라는 기술이 나온다. 매화가 당시 귀족들 사이에 정원수로 심어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동북아 중세를 거치며 매화는 사대부 정신적 미학을 구현하는 4군자의 하나로서 무수한 시·서·화에 등장한다. 추위를 이겨내고 심지어 잔설속에 꽃망울을 맺고 피워내는 매화의 생태가 지조·희망·재생·강인함의 상징이 됐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은 송나라 시인·은사(隱士) 임포(林逋·967~1028)를 등장시킨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를 남겼다. 주인공이 시동(侍童)을 거느리고 꽃핀 매화나무에 기대 눈 쌓인 산을 배경으로 학을 바라본다. 이를 이순미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현실의 부조리를 다 덮어버릴 듯한 추운 설산과 매화·은자를 (한 화폭에) 결합해 청빈과 올곧음 등 군자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유역이며 재배 역사가 30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3000년 전 고서로 알려진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매화의 약효 관련 기술이 있다. 20세기 들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중화민국(현 대만)이 매화를 국화로 정한 것은 유구한 역사성과 친근함 때문이다.
매화 사랑은 유학자 선비들만이 아니었다. 당나라 후기 승려 황벽(黄檗)선사는 게송(偈頌·불교찬가)에서 매화를 읊었다. “한껏 뼛속 사무친 추위를 겪어보지 않고 어찌 코끝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랴(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어려움을 이겨내야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매화의 생리에 비유한 것이다.
일본 역시 고대부터 매화를 사랑했다. 8세기 중엽 편찬된 일본 최초의 한시집 ‘회풍조’(懷風藻)엔 ‘연못 주위 매화나무·버드나무 무성한 정원에서 음악과 향기로운 술을 즐기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