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길자의 가족이 되기를 거부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것도 포기했다. 아내는 두 번 다시 가족 관계를 권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만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것까지 거부할 만큼 나는 모질지 못했다. 나는 내 가족과 함께 고향 마을에 내려가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방을 배정받은 뒤 천길자는 침상 테이블 위에 액자 두 개를 나란히 올려놓았다. 그들 세 식구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과 아내가 건넸을 나의 가족사진이었다. 힐끗 바라본 아버지는 매정하게 그들의 사진을 내던져 버렸다. 서운했을 텐데 달봉이도, 천길자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가져왔다면서 추도식 때 쓰고 있다는 내 어머니의 사진을 대신 올려놓았다.
“그래요. 여기서는 당신 좋은 분하고 지내세요.”
천길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오래전 기억이라도 되돌리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비좁은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몸부림치고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물어뜯었다. 액자를 집어 던지고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고는 늑대처럼 울며 고함쳤다.
“치매 환자 절반 이상이 행동 심리 증상을 보입니다.”
의사가 설명했다.
“심리적으로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고 환각을 보기도 합니다. 끝없이 질문을 하거나 특정 물건을 숨기는 분도 계세요. 민망할 정도로 성적인 말과 행동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지요. 아버님처럼 화내고 욕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비명을 지르는 이상행동은 흔히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부부간의 의무나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오랫동안 내면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온 분일수록, 이성이 손을 놓는 순간 감정이 폭발하는 것이지요.”
진정제를 맞고서야 아버지는 아기처럼 순하게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오랜 세월 누르고 견뎌 온 것은 자신과 어린 아들을 버리고 간 아내에 대한 원망과 분노였다. 잃어버린 삶에 대한 노여움이었다. 신의 이름으로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업을 끝내는 벨 소리가 울렸다. 노인들이 하나둘 방을 나왔다. 아버지는 일어서지 않았다. 나는 방에 들어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았다. 빗어 넘긴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은 짧고 부스스했다. 환자복의 브이넥으로 드러난 목과 쇄골은 앙상했다. 마르고 주름진 손으로 그림을 색칠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닿지 못할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 하고 부르지도, 마른 손을 잡지도 않았다. 빨간색 크레파스를 새로 집어 들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구요?”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나를 경계하는 게 역력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를 낳은 아버지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나는 나를 누구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아드님이세요?”
청소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훑어보며 물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의자들을 바로 넣고 테이블 위를 정돈하던 중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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