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3월30일 저녁 8시경 이스라엘 정보기관 요원들이 이스라엘군 대령 출신의 저명한 군사평론가인 한 인사를 미행·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텔아비브 외곽 한 레스토랑에서 누군가와 접촉했는데 이 사람은 이스라엘 주재 소련대사관의 외교관으로 위장 활동하고 있던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고위 요원인 소콜로프(Sokolov)였다. 요원들은 긴장하면서도 속으로 환호했다.
신베트(Shin Vet·이스라엘 국내정보부) 요원들은 그가 소콜로프를 만나러 갈 때 가지고 나갔던 서류 가방이 헤어진 후 없어졌다가 두 시간 후 서류 가방을 받아 들고 자신의 아파트로 귀가한 점에 주목했다. 귀가 직후 그의 집을 압수 수색했는데 많은 기밀문서가 발견되었다. 결국 그는 다음 날인 3월31일 아침에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는 놀랍게도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Dawid Ben Gurion)이 신뢰하는 측근 중 한 명인 이스라엘 비어(Israel Beer)였다. 비어는 이스라엘 건국 전후해 무려 16년간 이스라엘 국방부 등에서 암약해 왔던 이른바 소련 KGB의 두더지(mole·적국 정보기관에 침투한 스파이)였다. 그의 암호명 ‘쿠르트 동지’이다.
비어는 1912년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원래 이름은 게오르그 비어(Georg Beer)이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사회민주당 당원으로 오스트리아 육군장교학교를 졸업한 후 장교 생활을 거쳐 대령으로 진급했고 여단 사령관으로 복무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비엔나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국방부(IDF) 기록에 의하면 비어는 1934년 스페인 전쟁에 참전해 스페인 사회주의 세력을 위해 반(反) 프랑코 편에서 싸웠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 경력은 모두 허위였다.
1938년 비어는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1938년 10월 예루살렘 히브리대에 연구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이어 유대인 비밀군사조직인 하가나(Haganah)에 입대해 이스라엘 건국에 빛나는(?) 업적을 쌓아 갔다. 이때 인연을 맺은 이가 바로 시온주의(Zionism·유대인 국가 건설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였고 후에 이스라엘 초대 총리를 지낸 벤구리온이었다.
1940년에는 하가나의 영구 회원이 되었다. 1945년 비어는 벤구리온의 지원에 힘입어 갈릴리 북부지방에서 전개한 비밀작전의 책임자로 활약했다. 1948년 이스라엘 방위군(IDF) 설립 때는 정보부서 책임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또한 중령 때는 한 정보부서의 책임자로도 복무했다. 한때 그는 벤구리온 수상의 수행비서를 하면서 공식 일정을 관리하고 일지를 작성하면서 광범위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1949년 대령으로의 진급이 좌절되자 1950년 제대했다.
비어는 이스라엘의 사회주의 계열 정당인 마팜(Mapam)에 입당했다. 현역 시절에 마팜을 담당하며 정보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활동했던 인연으로 보였다. 당시 소련 공산당과 같은 노선을 취했던 당내 극좌파 그룹 수장인 모셰 스네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좌익 노선에서 이탈한 반당 행위자로 몰려 축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되어 복당되어 당의 정보부서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 과정 모두 비어의 스파이 활동을 은폐하려는 KGB의 전략이었다고 판단된다. 당이 해체되자 1954년 비어는 벤구리온이 이끄는 다수당 마파이(Mapai)에 가입했다. 당시 비어는 군 정보부에 복직하려 했으나 그의 활동에 의혹을 품은 모사드와 신바트 책임자였던 이세르 하렐(Isser Harel)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러나 벤구리온의 추천으로 1948년 이스라엘 국방부((IDF)에 대령급 계약직으로 채용되어 이스라엘 건국 전쟁사와 군사전략을 연구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어는 다양한 군사기밀을 접할 수 있었다. 1955년에는 이른바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팔레스타인전쟁사(1947~1949) 발간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이스라엘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1961년 체포될 때까지 국방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1959년에는 텔아비브 대학의 군사역사학과 학과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비어는 진짜가 아닌 가짜였다. KGB가 이스라엘 침투 공작을 위해 진짜 비어의 신분으로 철저히 위장한 것이었다. 진짜 비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모사드의 수장이었던 하렐은 비어가 KGB의 두더지일 것이라는 의심을 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특히 벤구리온 총리의 신뢰하는 측근이었기 때문에 공식 수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59년 KGB 폴란드지부에서 활동했던 미하일 골레니에프스키가 미국에 망명해 중앙정보국(CIA)에 비어의 신분을 제보했다. 이어서 CIA가 이를 이스라엘 정보부에 통보해 주면서 수사가 급진전되었다. CIA의 통보 내용은 이스라엘 국방부 고위층에 암호명 ‘쿠르트 동지’를 쓰는 소련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사드 수장 하렐은 반신반의하는 벤구리온 총리를 설득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1961년 3월30일 비어는 꼬리가 잡혔고 압수 수색 결과 확실한 증거도 나왔다. 체포 후 그는 자신이 비어가 맞고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해 왔으며 소련 측 인사를 접촉한 것은 소련의 대외정책을 친(親)이스라엘로 전환시키려는 애국적 발로에서였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모사드는 그가 주장하는 오스트리아 출생의 흔적이 없고 유대인이면서 ‘할례’를 받지 않은 점에 주목했고 오스트리아 장교 경력·박사학위 등 학력·스페인 전쟁에 참가해 전투한 경력 등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 냈다. 결국 가짜 비어는 간첩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했다가 형량이 15년으로 늘었는데, 복역 중이던 1966년 5월에 심장마비로 옥사했다.
신분을 위장해 이스라엘 건국운동 때부터 16년간 암약하며 이스라엘 초대 총리와 3대 총리를 역임한 벤구리온의 측근으로 활동해 왔던 비어의 활동상은 KGB의 스파이 역량이 지대함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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