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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프라이드'
소수라는 이유로 차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성소수자의 이야기 연극 '프라이드'와 비주류 곡을 좋아하는 배우 임주환은 서로 닮아있다.
“연극을 너무 하고 싶었고 마침내 꼭 맞는 짝을 찾았다”는 임주환. 연극 프라이드와의 만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는 특히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 드라마에 이어 연극무대까지, 스크린과 무대를 바쁘게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가 국내 공연 전문회사 연극열전의 20주년 기념 연극 ‘킬롤로지’에 이어 3개월만 프라이드로 다시 무대에 복귀했다.
평소 꾸밈없는 모습으로 자주 찾는 노래방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덜한 비주류 곡을 선곡한다는 임주환. 그런 그의 모습과 닮은 작품에 올라서는 물아일체가 된 것처럼 혼신의 연기를 선보인다. 2003년에 데뷔한 그의 연기 경력은 어느새 20년을 훌쩍 넘어섰다.
임주환은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또 연극 작품으로 무대에 호출이 됐다”며 웃음을 지어 보인 뒤 “연극을 꼭 하고 싶어 항상 연극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그의 이야기처럼 연극 프라이드와 임주환의 만남은 마치 천생연분을 연상케 한다. 한창 전작에 열중하고 있을 때 프라이드 출연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연극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이번 작품을 만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작품명인 프라이드는 ‘자부심’이나 ‘긍지’를 뜻한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지배적인 관념에 목소리를 내고 맞선 저항의 역사를 상징한다.
프라이드를 향한 용기는 곧 유의미한 전진이자 변화를 만드는 목소리다. 임주환은 이 언어가 지닌 무게를 공감한다는 점에서 극 중 필립과 자신이 닮아 있다고 소개했다.
작품이 주류에 의해 다른 존재로 분류 받을 수밖에 없는 마이너 부류, 성소수자를 다뤘기 때문일까. 그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 같았다．
임주환은 “개인적으로 정말 필요한 목소리라면 내는 것이 곧 정답”이라고 확신한다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신념과 뜻에 따라 삶 속에서 자기 결정권을 찾는 행위 자체가 전부 프라이드가 될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작품은 성 지향성이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1958년과 이를 조금씩 용인하기 시작한 2008년 두 서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두 시대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화한다는 부분에서 대조를 이룬다.
임주환은 이 작품에서 ‘필립’ 역으로 캐스팅됐다. 그는 섬세한 표현력으로 차별받는 성소수자를 대변하면서 내면의 울림과 한층 성숙한 감정선을 완벽하게 그렸다.
임주환표 '필립'
필립은 만연했던 동성애 혐오나 차별적 시대상이 반영된 과거엔 사회의 압박과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침묵한 채 세상의 이목을 피했다. 50년이 흘러 시대적 요구가 바뀌면서는 피해자의 실상을 알리며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임주환의 호소력 짙은 연기가 돋보였던 지점이다.
임주환은 “작품을 만났을 때 성소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하면서 주인공 필립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선행하게 됐다”며 “성소수자라는 표현에서 이미 내재해 있지만 소수자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고민이나 아픔에 초점을 맞췄다”고 연기에서 역점을 기울인 부분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필립에 안타까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필립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에 부합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1958년이란 시대적 배경은 동성 간 연애에 대한 접근과 해석이 혼란을 유발하던 시기였던데다 사회적 인식 면에서도 동성애 혐오증이 만연하게 퍼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시기는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 시각을 제시한 ‘울펜덴 보고서’가 발표된 지 １년이 된 시점이어서 이러한 상반된 사회적 분위기는 이해 상충 발생 소지가 충분했다”고 부연했다.
필립은 당시 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밖에 없던 한 개인이었다. 그래서 동성애에 대한 법적 규제가 완화된 1960년대까지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끊임없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는 “사회에서 동성애를 그릇된 행위로 규정하고 치부하면서 필립은 자신이 가진 성적 지향성을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거나 이를 부정하고 심지어 고치려 했다”고 묘사했다. 가족 구성원 없이 혼자인 데다 동성애자로 인간관계에서 완전히 소외돼 그저 버틸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이는 필립의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공감대가 형성되고 동성애 언급이 가능한 사회가 되면서 작품의 주인공은 다 같이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공개적인 행보를 펼친다.
작품의 주인공은 필립·올리버·실비아다. 두 시기 모두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각각 다른 인물로 표현된다. 각기 다른 두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캐릭터 간 관계성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임주환은 “작품은 필립과 올리버의 사랑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이 되지만 필립만 놓고 보면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동성애를 유별난 감정으로 취급한 1958년에 필립은 실비아라는 이성과의 결혼을 통해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사랑하는 올리버와의 관계는 희망으로 남겨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억압 속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올리버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꿈을 갖기도 한다”고 했다.
필립이 꾸는 꿈
1958년과 2008년, 두 시기의 갈림길에서 임주환은 과거와 현재의 필립을 동일선상에 두고 볼 것인가 다른 인물로 생각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고심 끝에 주인공이 살아가는 시대적 배경, 물리적 공간이 다른 만큼 캐릭터가 별개 인물이더라도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배우가 소화하기 때문에 감정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임주환은 “결국 필립도 1958년이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사회 구성원 아닌가. 그렇다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할 수 있었다면 50년 후인 2008년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온당하지 않은 억압이 받아들여질 때 개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임주환은 필립을 ‘꿈을 꾸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는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진다는 점에서 두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는 “1958년에는 전반적으로 억압과 차별 그리고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 세상에 동성애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꿈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루지 못한 채 희망 사항으로 남겨둬야 했다. 반면 2008년에는 이 주제를 밖에서 이야기해도 그 어떠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치관을 연대하고 함께하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주환은 "프라이드가 비록 성소수자를 조명하고 있지만 다수와 소수로 나뉘는 구분 자체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며 "개개의 일원이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가 아닐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조금 특별하게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차별적 시선이 남아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작품에서 단편적으로 성소수자로 그려진 집단은 사실 사회에서도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을 지칭하는 포괄적 개념이 될 수 있다”며 “이들에게 고정관념을 거두고 사회 일원으로서 인정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세상이 변했지만 아직 강한 선입견이나 짙은 편견 탓에 변화의 바람은 현재 진행형이다. 더 이상 정체된 과거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사의 순간에 있는 우리에게 연극 프라이드가 진정한 프라이드를 향한 나비효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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