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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성소수자 차별
연극 ‘프라이드’가 성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를 모색한다. 용기를 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게 작품의 목소리다.
프라이드는 동성애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1958년과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200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첫 번째 무대인 1958년, 주인공 필립은 부인 실비아와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한다. 그렇게 무난했던 필립의 인생은 부부 집에 초대된 동화 작가 올리버를 보고 사랑이라는 강한 끌림을 느끼며 한순간에 뒤바뀐다. 당시 시대상은 이성 간의 결합을 혼인으로 인정했으므로 실비아와의 관계만이 이 사회가 용인하는 테두리였다.
작품이 풀어낸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 당시 영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동성애 혐오증(호모포비아)가 만연했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이 있는 이 구간은 인식의 과도기로 묘사된다.
1년 전인 1957년 동성애를 우호적으로 표현한 ‘올펜덴 보고서’가 발표되며 동성애자들이 처벌이나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시대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성인 사이에 합의한 동성 간 성행위는 더 이상 범죄 행위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은 이러한 억압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필립은 올리버에 대한 사랑이 진심인 걸 알면서도 그를 용납하거나 감싸안지 못한다. 대신 그 감정을 애써 부정했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절 필립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부당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표현과 주장을 하지 않는 침묵을 택한다.
결국 필립은 정신병원으로 향하는데 당시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질환으로 치부됐다. 그리고 필립은 치료로 둔갑한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학대를 받는다. 실존했던 동성애 치료를 위한 접근방식은 가히 폭력적인 수준으로 묘사된다.
1950년대는 전문가들도 우울증이나 동성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거나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세기 동성애는 정신 질환 문제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한 보 진화된 역사
반세기가 흐른 2008년은 프라이드의 두 번째 무대로 사회적 인식이 비교적 진화된 시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립은 올리버와는 공식적인 연인 사이다. 하지만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올리버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갈팡질팡 방향을 잡지 못한다. 이때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의 친구로서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넨다.
실비아의 제안으로 필립과 올리버는 퀴어 축제로 향한다. 성소수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인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능동적 주체가 되고 한 발 나아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각인시키려 한다. 차별받고 침묵하는 사람들을 세상에 알리는 필립의 변화는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는 유기성을 갖는다.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목소리를 조금씩 냄으로써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통제된 환경이 바뀌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두 시대를 교차하는 구조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필립·올리버·실비아가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필립은 사회적 규율과 체면을 중요시한다. 이에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느끼며 내적 갈등과 극심한 심적 혼란을 겪는 과거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현재가 대비를 이룬다.
올리버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속 다수가 침묵을 택할 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랑 표현을 하며 용기를 택한다.
실비아는 결혼한 남편이 자신이 아닌 동성에게 단순한 감정 이상의 호감을 느끼며 고독과 무거운 외로움의 무게에 사로잡힌다. 50년이 지나 현재를 살아가는 실비아는 관계에 어려움을 직면한 친구를 보듬으며 자신을 짓눌렀던 고통으로부터 한결 가벼워진 모습을 보인다.
2025년 현재에서 보면 2008년은 확실히 반동성애 정서가 팽배한 1958년보다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며 그로 인한 차별과 혐오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 극복 측면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한 만큼 작품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만 목소리를 내는 것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점에서 작품이 다루는 본질이 다분 성소수자 이야기에만 국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목소리는 시대의 프라이드
연극 프라이드는 소수자의 성지향성을 조명하면서 다수에 의한 지배구조에 불만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배타성을 가진 사회에서 다양성이란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억눌리며 진통을 겪지만 이 고통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작품은 세상 속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진 사회 전체의 모습을 격려한다. 비록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구성원의 목소리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역사를 바꾸는 한 페이지가 된다.
이렇게 프라이드는 다양성이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내놓는 점에서 자신감의 원천을 찾는다.
이 구조 안에서 용기를 낸 구성원은 변화의 시작이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힘의 근원이다.
프라이드란 주제와도 맞닿은 이 힘은 존엄성을 가져다주며 가치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무엇을 원한다면 침묵하지 말고 표현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와도 부합한다.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긍심을 찾기 위한 소수집단의 작은 외침은 또 다른 희망을 꿈꾸고 있다.
주인공이 바라는 프라이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유기적인 구성원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임을 깨닫고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과 규칙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정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프라이드라며 작품의 구성원은 서로가 서로에 힘이 되어 함께 프라이드를 외치고 있다.
한편 프라이드는 국내 공연 전문회사 연극열전이 2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10번째 시즌 ‘연극열전10’ 작품 가운데 하나로 2008년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9개국 여러 도시에서 사랑받았다.
작품은 국내에서 2014년 초연된 이후 올해 다섯 번째 공연이 진행됐으며 6월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스24아트원에서 관객과 만난다.
‘필립’ 역에는 임주환·이형훈·김경남이 출연하며 ‘올리버’ 역은 권수현·김바다·김이준이 ‘실비아’ 역은 김수연·홍금비가 연기한다. 이 외 '남자' 역은 박성현·이강우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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