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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문용균 팀장|오주한·오창영 기자]올여름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엄청난 강수량을 기록한 집중호우, 태풍 등의 영향으로 올해 농산물 작황은 크게 부진한 상황이다. 잦은 비로 일조량이 부족한 데다 병충해 발생 등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가격 또한 급등하는 추세다.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는 연일 오르고 있다.
실제로 이달 14일 기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날 서울 경동시장에서 거래된 무 1개의 소매가격은 4000원으로 전월 2500원보다 60.0%(1500원)나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415원에 비해도 65.6%(1585원)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배추 1포기의 소매가격도 전월 8662원에 비해 42.0%(3638원)나 오른 1만2300원을 나타냈다.
주목되는 사실은 작황부진 피해를 상쇄하기 위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농작물을 제배하곤 산지가격이 크게 변함이 없는 데다 농산물 절대 소비량 자체도 감소한 탓이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초·중·고교들의 개학이 연기되면서 급식 또한 중단됐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주 납품처인 외식업계의 농산물 소비량도 줄었다.
명절 특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올 추석엔 고향 방문을 자제하고 차례상도 간소하게 차리도록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농산물 소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생산량·판로·소비 등이 모두 감소하는 사태에 맞닥뜨리게 된 농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농사만으론 밥 굶는다”… 농사 외 다른 돈벌이 찾기 급급한 농가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농가소득 추세 변화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동안 농가소득은 해마다 소폭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농사를 지어 얻는 농업소득이 아닌 농외소득 등의 상승으로 인한 결과였다. 농업 자체만으론 돈이 되지 않자 점차 농사 외 다른 곳에서 돈을 벌려는 농가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41.6%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24.9%까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농촌의 경제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농업의 축소는 유사시 국민이 먹을 식량을 자급하는 능력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평균 농업소득은 2018년 1399만원에서 지난해 1151만원으로 약 17.7%(248만원) 가량 하락했다. 세부적으로는 밭작물 농가의 농업소득은 2018년 1398만원에서 지난해 1151만원으로 감소했다. 높은 고정비용과 폭우로 인한 작황부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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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올해는 벌써부터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전례 없던 최장기간 장마로 농가 피해가 큰 데다 일조량도 크게 줄어 밭작물의 성장이 저해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제한되면서 농촌의 일손부족 현상과 인건비 상승효과도 농가소득에 타격을 입혔다.
자연스레 농가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작황부진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 농민의 피해는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몇몇 농산물을 제외하곤 농민들이 판매하는 가격은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데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농산물 절대 소비량이 줄어들어 판로를 찾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양파와 마늘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다른 밭작물과 달리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도 양파와 마늘의 도매가격은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고 있어서다.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소득을 올리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양파 생산량은 116만8227t으로 지난해 159만4450t보다 26.7%(42만6223t) 감소했다. 2017년 114만4000t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양파 재배 면적은 1만4673ha로 지난해 2만1777ha에 비해 32.6%나 감소했다. 1996년 38.9% 감소한 이래 24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마늘 생산량도 지난해 38만7671t보다 6.3%(2만4239t) 감소한 36만3432t에 그쳤다. 마늘 재배 면적 역시 2만5372ha로 지난해 2만7689ha보다 8.4% 줄면서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다. 양파·마을 생산량이 감소로 소매가격이 급등했지만 정작 농가의 수입은 그대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매가격은 예년에 비해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거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늘의 경우 전년 보다 하락하기도 했다. KAMIS에 따르면 올해 상품 양파 1kg의 연평균 도매가격은 전년과 동일했다. 마늘 농가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상품 국산 깐마늘 1kg의 올해 도매가격은 4695원으로 지난해 4805원보다 오히려 2.3%(110원) 하락했다. 2018년 6272원에 비해선 25.1%(1577원)나 낮다.
생산량 감소해 소매가 올라도 도매가는 요지부동… 눈물 마를 날 없는 농민들
전남 함평군에서 양파를 재배하는 김철희 씨(가명)는 최근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휩싸였다. 유통업체에 넘기는 양파 값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자재비와 인건비 등은 두 배 정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한 홉에 5~6만원이던 종자 값은 12만원으로 뛰었다. 인건비도 코로나 사태로 외국인 근로자가 사라지면서 일당 5~6만원 선에서 10~12만원 선까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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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김 씨는 “다른 농산물 가격은 조금이라도 다 올랐는데 양파 값은 요지부동이니 소득은 계속 줄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농사짓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올해 양파의 산지 가격은 1kg당 500원대다. 그러나 14일 서울 경동시장 기준 소매가격은 2500원이었다. 유통비용이 소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0%에 달하는 셈이다.
경북 의성군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최진규 씨(가명)는 올 여름 긴 장마와 폭우로 마늘 밭이 침수돼 한 해 농사를 망쳤다. 최 씨는 “코로나로 막힌 판로를 여름 농사로 만회하려고 했는데 장맛비에 희망도 다 쓸려 갔다”며 “다시 모종과 땅을 만들려면 최소 수개월 이상 걸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양파·마늘 농가의 생계유지를 위해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회의적인 반응이 뒤따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파·마늘 주산지 농협과 각 생산자단체 대표 등과 합의를 거쳐 7월 26일 양파·마늘 의무자조금의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양파·마늘 농가가 자율적 수급 안정, 연구개발, 수출 활성화 등 자조금 용도에 맞는 각종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조치다. 생산자인 자조금을 통해 수급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어 농업소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복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무자조금의 노력만으로 오랜 기간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 온 수급 안정이 해결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농산물의 경우 의무자조금 출범 이후에도 업계 현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농민의 참여율도 저조한 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생산자 스스로 생산·유통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농식품신유통연구원 관계자는 “단기적인 수급 안정 목적으로 의무자조금을 운영하기 보다는 품목별협의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의무자조금을 생산자 중심으로 조직해 자율적으로 수급 조절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지속 모니터링하며 관리하고 있으나 종국에는 생산자 중심의 수급 안정 체계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여러 의무자조금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출범했으나 소비촉진 등의 홍보를 담당하는 선에서 그쳤던 만큼 가격 변동성이 유독 심한 양파·마늘의 가격 안정을 위해 의무자조금이 품목별협의체로서 수급 안정이라는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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