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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임현범 부장|강주현·윤승준·홍승의 기자] 거의 유일하게 국가에서 인정한 도박장이 있다. 바로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장과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강원랜드 카지노다. 최근 말산업 육성, 지역경제 활성화 등 거창한 명분을 앞세워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두 곳의 도박장은 당초 취지를 잃고 심각한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이유로 폐지론에 휩싸였다. 자연스레 운영주체인 한국마사회와 강원랜드 역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퇴색된 말 산업 육성 명분… 남은 것은 국민정신 좀먹는 사행성 도박뿐
고요한 도시외곽에 푸른 수풀로 둘러싸인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앞. 하천 위를 지나 조그마한 길을 걷다 보면 경마장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 도착하면 도박에 빠진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한눈에 봐도 가족·연인 나들이객과는 구별되는 이들은 퀭한 눈빛으로 OMR카드 용지를 뭉텅이로 든 채 모니터 화면만 쳐다본다. 이들은 일명 ‘마쟁이’라고 불리는 경마 중독자다.
경주마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 때마다 이들은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욕설을 내뱉으며 돈을 건 말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른다. 그러나 승부가 끝난 뒤 남는 건 소수의 환호와 다수의 탄식이다. 경주가 끝나면 이들 중 절반은 흡연을 하러 가고 나머지는 테이블에 앉아 경마 전문지를 바라보며 다음 베팅을 준비한다. ‘마쟁이’의 소굴이 돼 버린 이곳은 공기업인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렛츠런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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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
한국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 산하 말 산업 육성 관련 공기업이다. 말 산업의 진흥과 축산발전,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원활한 보급을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고 국민의 여가선용을 도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주요 사업은 경마사업, 말산업진흥사업, 사회공헌사업 등이지만 사실 경마사업 비중이 절대적이다.
올해 한국마사회의 사업 예산 비중은 경마 98.8%(7조4179억원), 말산업진흥 1%(770억원), 사회공헌사업 0.2%(164억원) 등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말산업진흥은 23% 대폭 삭감됐지만 경마는 0.1% 줄어드는 데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목적인 말산업진흥은 점차 소홀해지고 있다.
한국마사회의 편중된 예산집행은 공공의 이익보단 공공의 폐단만 낳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말 산업 육성’이라는 거창한 명분에 가려져 있던 도박중독자 양산 부작용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2018사행산업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박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로 하고 있던 사행활동으로 경마(30.7%)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시간과 비용을 많이 사용한 사행활동도 경마(31.6%)였다.
“강원랜드 매출 60% 오를 때 정선군은 도박중독자의 도시로 전락했다”
첩첩산중에 기찻길을 따라 정선군 사북읍에 도착하면 네온사인으로 불을 밝히는 수십개의 전당포와 마주하게 된다. 화려한 조명에 비해 사북읍의 거리는 지나가는 사람 없이 너무 조용하다. 문 닫은 식당과 텅 비어있는 재래시장 그리고 곳곳에 즐비한 모텔 등을 지나면 저 멀리 산중턱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강원랜드 건물이 나타난다.
평일 오전에 방문한 강원랜드는 코로나 여파에 따른 제한적 영업으로 비교적 한산했다. 전날 ARS로 미리 예약한 1200명만이 입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부터 카지노 입장이 시작되지만 이미 1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등산복 및 트레이닝복 차림의 중년이 많았지만 젊은 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화려한 옷을 입고 밝은 표정을 한 채 입장을 준비했지만 누군가는 초췌한 차림에 눈의 초점마저 흐릿한 모습이었다. 보안요원의 철통같은 검사를 받고 입구를 통과하면 천장에 촘촘히 박힌 수천개의 감시용 CCTV와 요란한 소리를 내는 슬롯머신이 입장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을 근거로 1998년에 설립된 강원랜드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시장형 공기업이다. 국내 17개의 카지노 중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낙후된 폐광지역의 경제를 진흥시켜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과 폐광지역 주민의 소득증대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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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
그러나 수조원대의 강원랜드 매출액과는 반대로 폐광지역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실정이다. 인구 4만명이 조금 넘는 정선군에 위치한 강원랜드는 1조5000억원이 넘는 매출액과 4000명 가까운 직원을 고용할 정도로 큰 규모다. 수치만 놓고 보면 강원랜드는 지역경제에 엄청난 활력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다.
강원랜드의 매출액은 2007년 1조665억원에서 2016년 1조6965억원으로 8년 동안 무려 59% 성장했다. 같은 기간 정선군의 지역내총생산(GRDP)는 2007년 1조2329억원에서 2016년 1조2329억원으로 0.5%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강원랜드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 강원랜드가 들어서고 정선군의 인구는 5만4000명에서 3만6000명으로 2만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정선군의 ‘5~9세 인구 대비 25~29세 인구의 비율’과 고령화율은 각각 44.9%, 19.2% 등이었다. 전남 고흥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청년 순유출이 높다. 폐특법 이후 수조원 가량의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폐광지역은 여전히 낙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강원랜드의 세금 납부 비중은 국세 71%, 지방세 및 폐광지역개발기금 29% 등이다. 지역투자는 정부에 내는 세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 영향에 따라 영업적자를 기록해 순이익 25%를 납부하는 폐광지역개발기금이 아예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민들은 폐광지역 경제 진흥이라는 강원랜드의 설립 취지는 퇴색된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사북읍에서 자영업을 하는 주민 C씨는 “강원랜드가 들어선 이후 기대했던 만큼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됐는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강원랜드의 매출 중 카지노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1조5200억원 중 카지노 매출은 무려 88%(1조3423억원으로)에 달했다. 관광 기능을 하는 호텔, 콘도, 골프장, 스키장 등은 다 합쳐서 겨우 10%를 넘기는 수준이다.
이처럼 사행성 사업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니 폐광지역 주변은 ‘도박 중독자 밀집지역’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북읍을 돌아다니면 전당포와 주차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주차장에 직접 들어가 확인한 결과 오랫동안 방치돼 먼지로 뒤덮인 자동차들을 볼 수 있었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담보로 돈을 많이 빌린 흔적이다. ‘무직자·무담보·신용불량 가능’이라는 문구가 써진 휴대폰 결제 대출 현수막도 거리 곳곳에 즐비했다.
[윤승준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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