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임현범 부장|강주현·이창현·윤승준 기자]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기업 내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어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업의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데다 명확하지 않은 법안 내용으로 직원들 간 유대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입법 취지와 달리 오히려 악용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법에 의한 처벌보다 기업문화를 개선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애매모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생산성 약화·갈등 조장 ‘부작용’ 속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말한다. ‘양진호 방지법’이라고도 불렸던 이 법안은 2018년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이후 각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예방·대응방안 등을 담은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업주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해야 한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취지는 좋지만 괴롭힘을 보는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현장에선 혼란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예방·대응 매뉴얼’에서 사례를 들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어떤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모호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이로 인해 업무 과정에서 상식적인 지적이나 지시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기업 활동이 전보다 위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 종사자 교육 협회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동호 씨(가명·43)는 ‘직장 내 괴롭힘’법으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데 투입되는 팀원들의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최근 코로나19 방역에 관한 업무까지 추가로 늘어 후배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괴롭힘’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해서다.
최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생 체온측정 및 교육장 방역 등의 업무 외적인 일까지 늘어나게 되는 등 업무량이 과도해 새로 입사한 여성 주임에게 교육장 방역을 부탁했지만 ‘방역기가 무겁고 본인도 바빠서 못 하겠다’며 ‘이러한 지시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원 모두 업무의 경계를 두기보다 서로 도우며 팀을 이끌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답변을 들으니 순간 당황스럽고 허탈했다. 남성과 여성, 상사와 부하직원의 개념을 떠나서 업무를 서로 도와주며 나아가길 바라는데 요새 흔히들 말하는 ‘꼰대’로 비춰져서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며 “팀원들에게 언행, 업무지시 등도 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업무 속도와 정확성은 떨어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2019년에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기업인식과 대응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괴롭힘 행위에 대한 모호한 정의’에 대해 애로사항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에 바라는 정책과제도 ‘모호한 규정들에 대한 정의’가 가장 많았다.
박준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정부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발간했지만 여전히 모호한 규정, 처벌규정 등으로 부작용과 집행 부담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법은 최소한의 보완책일 뿐이며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조직원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기업문화 개선활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회계 부서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동훈 씨(가명·37)는 업무 습득 속도가 느린 후배 직원을 교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후배 직원이 업무에 대한 책임감보다 근로자의 권리만 내세우며 실수를 연발해서다.
유 씨는 “업무 특성상 정확성이 없을 경우 기업 자체가 외감법 및 여러 법들의 규제를 받고 타 기업 등에 신뢰를 잃게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며 틀린 부분을 말해주곤 한다”며 “저도 사람이라 실수하는 경우가 있고 저도 거쳐온 길이기에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지만 이런 설명조차 귀찮다는 듯 듣지 않는 후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느 날 후배 직원의 실수가 많아 결산 전 감사일정에 문제가 생길 뻔 했다. 단호하게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따로 불러내 얘기를 했지만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후배가 되받아쳤다”며 “업무상 말했던 얘기들을 메모도 하지 않던 후배가 그런 말을 하니 ‘직장 내 괴롭힘법’이 어쩌면 상사를 괴롭히는 행위에 대한 방패 역할까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준희 경총 수석위원은 한 포럼에서 “기업들은 저성과자에 대한 성과향상 촉진 조치에 대해 당사자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할 경우 마땅한 대응을 할 수 없다”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성과 미달자에 대한 교육 및 향상 촉진 절차를 취업규칙 등에 성문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규정된 절차에 따라 성과 향상 촉진 조치를 이행하되 상급자의 주관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직원 간 유대 관계 악화… 저성과자 방패막이 악용 사례 빗발
또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인해 직원들 간의 소통도 단절돼 팀워크에도 지장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근감의 표시로 던진 장난스러운 한마디도 ‘괴롭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
한 대형 서점에서 책임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곽민석 씨(가명·33)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업무를 지시하는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사원들과 라포(유대관계)가 결여돼 회식 또한 사원들에게 전달하기 꺼려진다고 전했다.
곽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도입 이후) 회식이 사라지면서 일부 사원만 서로 작은 회식 자리를 만들어 다른 사원들을 소외시키는 것을 간간이 목격했다. 이에 따라 직장 내 따돌림이 심화됐다”며 “회식 대신 회식비와 자기계발비로 대체되면서 개인에겐 이익이라 생각되지만 회사와 관리자 입장에선 유대감 형성이 결여돼 조직문화가 위축됐다”고 말했다.
홍세욱 변호사(노무변호사회 회장)는 이 법이 처음 시행될 당시에도 ‘괴롭힘’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우려스러웠다고 전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사례가 굉장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홍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 시스템은 법원의 판례를 통해 법이 정형화되고 예측가능성이 생긴다”며 “하지만 이 법에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보니 재판을 진행할 수 없어 어떤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취지와는 반대로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빗발치고 있다. 객관적인 증거보다는 피해자의 주관적인 진술로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서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때로는 상급 관리자를 상대로 다른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지난해 9월 30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진정 사건(5658건) 중 2512건(44.3%)이 취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지도와 검찰송치는 각각 960건, 67건에 불과했다. 시행 이후 거의 절반 정도가 무분별한 신고였던 셈이다.
실제 회사에서 팀장 직을 맡고 있던 김성환 씨(39)는 직장 후배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당해 회사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았다. 업무에 관해 몇 번 주의를 준 것이 전부였지만 피해자의 허위 진술이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김 씨는 “신고자와 최근까지 아무런 갈등이나 접촉이 없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당해 회사 측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며 “그의 주장이 거짓임을 얘기했지만 회사에서는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느꼈다면 괴롭힘에 해당된다며 징계 처분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징계 받은 사유는 △신고자를 평소에 째려본 점 △신고자의 인사를 안 받아준 점 △점심 메뉴를 독단적으로 결정한 점 △본인만 빼고 업체와 식사한 점 등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친하게 지내지 않았단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박수현 씨(36)는 점심시간에 직장 후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대했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박 씨는 “점심시간에 후배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하는데 저는 모임의 주동자가 아니다. 친한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가진 것뿐이다”며 “무시하는 태도로 대한 적이 없고 오히려 주관적 판단으로 허위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해자로 지목된 것에는 과거 일에 대한 보복으로 판단된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주관적 감정만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며 “신고자가 사실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꼴 같아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완수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평가될 수 없는 사안이라도 가해자로 지목된 근로자에게 미치는 피해는 크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근로자는 직장 내 괴롭힘 조사과정에서 일단 잠재적인 가해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아야 하고 사내 소문과 평판 등에 있어서도 잠정적이나마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는 등 심리·감정·시간적 피해가 상당히 크다”면서 “사용자로서는 이를 대비해 객관적인 사실조사 능력을 갖추고 제도 악용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처를 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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