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주도의 주52시간 근무제가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이래 우리 사회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그동안 국내 산업계는 주40시간의 법정 근로 시간에 더해 연장 근로 시간 12시간, 주말 근로 시간 16시간 등 총 주68시간을 법적으로 근무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저녁이 있는 삶’을 국민에게 보장하겠다며 주52시간을 초과해 일을 할 수 없도록 강제로 규정했다.
직원 300인 이상 기업들부터 우선 적용된 주52시간 근무제는 계도기간을 거쳐 50~299인 중소기업에까지 확대 적용됐다. 당초 50~299인 중소기업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는 지난해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산업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추가로 1년 간 유예됐다. 유예 기간 동안 산업계에선 주52시간 근무제 확대 적용이 중소기업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미 1년 간 유예를 적용한 만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올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를 확대 시행했다.
50~299인 중소기업에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생산성 저하로 인해 경쟁력이 빠르게 약화되는 등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법정 근로 시간 축소에 따른 임금 저하로 중소기업을 떠나는 근로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주52시간 근무제를 국내 모든 기업들에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앞으로 사태의 심각성은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실 동 떨어진 근로시간 단축에 하나 둘 멈추는 공장들…“누구를 위한 법인가”
수도권에서 자동차 부품의 금형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현성(가명) 씨는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이래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법정 근로 시간이 주당 28시간이나 줄어들면서 생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처해서다.
김 씨는 “금형 제조업체 특성 상 기계를 24시간 내내 돌려야 하는데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면서 직원들의 법정 근로 시간이 줄어 연장 근무를 할 수 없게 됐다”며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에 맞춰 생산라인에 직원들이 투입돼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해진 상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직원 교대 제도를 개편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인력난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교대 제도를 바꾸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며 “그동안 2교대 제도를 통해서도 주문 물량을 충분히 생산해 왔으나 이젠 3교대 제도가 아니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라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인원을 충원하려 해도 국내 인력들은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고 고액의 임금을 주는 회사를 선호해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며 “외국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입국 자체가 불가하니 사실상 인력을 충원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52시간 근무제 적용을 1년 간 유예해 줬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사 사정이 꽤나 나빠졌기 때문에 유예기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며 “각 회사의 사정, 관련 업계의 사정 등을 고려해 법정 근로 시간을 차등 적용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사례처럼 50~299인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유예 기간이 지난해 말 종료되면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협동조합 회원사를 대상으로 주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수백곳 이상의 현장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중소기업들이 토로한 애로사항의 핵심은 인력난,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줄어든 법정 근로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 근무제 대응을 위한 준비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 2월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중소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인 50.3%가 아직 대응 방안이 부족하거나 대응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32.8%(복수응답)의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영향 중 인건비 상승을 가장 부담스러워했다. 주52시간 근무제를 맞추려면 노동자들의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바꿔야 하는 등 인력 충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어 △생산량 저하 23.8% △근로자 간 형평성 문제 18.5% △직원의 업무 효율성 저하 16.3% △새로운 근무 관리 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비용 12.8% △서비스 운영 시간에 차질 12.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주52시간으로 법정 근로 시간이 크게 줄면서 중소기업들은 불필요한 업무 감축(36.3%, 복수응답)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들도 28%에 이르는 등 현재 인력으로 어렵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산 차질이 우려돼 인력을 추가 채용했다는 응답한 기업들도 24.8%나 됐다. 이 외에 △집중 근무시간 운영 23.3% △회의·업무 보고 간소화 16.8% △설비 기계화 도입 9.3% 등이었다.
응답 기업 400개사 중 55%는 법정 근로 시간 축소가 채용(일자리 확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당장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인력 충원에 따른 추가적인 인건비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가 의도한 근로시간 축소에 따른 일자리 확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52시간 근무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냈다. 조사기업의 41.8%는 일간 또는 월간 사용 한도를 기업 재량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선택적 근로의 정산 기간 기준을 확대해 달라는 기업들도 32%나 됐고, 특별 연장 근로 제도의 인가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기업들도 20.3%를 차지했다.
줄어든 수입에 정든 일터 떠나는 근로자들…“국가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마저 침해”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주52시간 근무제는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부분은 수입 감소다. 2018년 8월 이전 법정 근로 시간은 주68시간이었으나 올해부터 주52시간으로 줄면서 근로자 개개인의 수입은 크게 감소했다. 기존엔 연장 근로, 휴일 근로 등 최대 28시간의 초과 근무를 통해 수입을 올릴 수 있었으나 이젠 해당 부분의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만약 중소기업 근로자가 기존의 법정 근로 시간대로 일했다면 올해 최저임금인 8720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주28시간의 연장·휴일 근로에 1.5배의 가산 수당이 책정돼 총 약 286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야간 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까지 계산하면 월 수입은 300만원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반면 주52시간으로 법정 근로 시간이 축소되면서 최대 주12시간까지만 연장·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을 적용받게 돼 월 수입은 약 202만원으로 쪼그라든다. 중소기업 근로자 입장에선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수입이 80만원 넘게 줄어드는 셈이다.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한규진(가명) 씨는 “중소기업 생산직의 경우 낮은 임금을 초과 근무를 통해서 보상받는 경우가 많다”며 “통상적으로 휴일에 근무를 하는 등 초과 근무에 따른 가산 수당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지난해 12월만해도 월급이 340만원 정도 됐는데 올해 1월 월급이 250만원으로 큰 폭으로 감소해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수입이 줄다보니 아예 직장을 떠나는 근로자도 늘고 있다. 근로시간은 길긴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생각에 묵묵히 일해 왔던 근로자들이 수입이 줄어도 보전할 방법이 없으니 결국 정든 일터를 떠나는 것이다. 최근 인력 수요가 많은 택배업계나 배달업계로 인력이 옮겨가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관련,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폐기해야 할 1순위 악법이다”며 “주 52시간으로 법정 근로 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노동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탁상행정식 입법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입법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적용 가능해야 하지만 이 같은 경우 적용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근로자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이득을 누리겠다는 개인의 선택을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사실상 사회주의식 발상에 가깝기 때문에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벽을 낮춰야 한다”며 “올 하반기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대 도입될 경우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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