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이 경제 회복을 의미하긴 하지만 빠르게 오를 경우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을 도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 시 주식 등 자산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증권업계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업종별 차별화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07.39로 1년 전보다 2.3% 올랐다. 2018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치(2%)를 넘어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0%대를 이어왔지만 올해 2월(1.1%) 1%를 돌파한 뒤 3월(1.5%)과 4월 연이어 오름폭을 키웠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4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망치(3.6%)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상승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8년 9월(4.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로도 0.8% 올랐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0.9% 상승하며 39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미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4월 PPI는 전년 동월 대비 6.2% 급등했다. 2010년 11월 통계 편제 이후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PPI는 전월과 비교해서도 0.6% 상승해 시장 예상치(0.3%)를 웃돌았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물가 급등에 대해 일시적 현상이라는 의견과 추후에도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데 최근 확인되는 경제지표로 미뤄볼 때 향후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주요국의 완화 정책에 지속적인 물가상승 가능성 대두
인플레이션은 일정기간 물가가 지속적이고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원인은 통화량의 팽창이다. 시중에 돈이 늘어나면 통화가치가 떨어져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코로나 발생 이후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많이 찍어냈다. 지난해 광의통화(M2) 증가율은 미국 24.6%, 유로존 11%, 중국 10%, 한국 9.8% 등에 달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지난달 1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 참석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코로나 방어용 경기부양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달리오 회장은 “시스템에 주입된 막대한 양의 돈이 지금의 큰 관건이다. 이렇게 풀린 돈이 유발할 위험에 대한 매우 신중한 균형잡기가 필요하다”면서 “정부는 돈을 찍어내면서 경기를 부양하고 있는데 이런 기조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달러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고 말했다.
공급 부족도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백신 보급으로 경기가 활성화하면서 수요가 커졌다. 다만 반도체부터 철강, 구리, 목재 등 원자재는 부족한 상태다. 공급 부족으로 상품 생산비가 증가해 가격이 오르며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철판 값이 뛰면 자연스럽게 자동차 가격도 오르는 것과 같다
김호정 연구원은 미국의 수입물가를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의 지속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월 수입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0.6% 급등했다. 이는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김 연구원은 “미국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부양책이 시행됨에 따라 수요의 회복 속도가 공급의 회복 속도를 앞서나가면서 수입 수요가 증가했다”며 “통상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 상승에 1개월 선행하는 경향이 있어 현재의 수입물가 급등이 향후 소비자물가의 추가 상승을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금리인상 피해 적은 금융·에너지 강세 예상…주식에서 빠진 뭉칫돈, 비트코인 거쳐 금으로
연초 무섭게 치고 올라가던 국내외 증시에 ‘인플레이션 경고등’이 켜졌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28일(현지 시간) 기준 나스닥지수는 1만3748.74로 3일(현지 시간) 이후 2.0% 하락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같은 기간 각각 1.8%, 0.3% 오르는데 그쳤다.
국내 증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8일 기준 코스피지수는 3188.73으로 3일 이후 1.3%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983.45에서 977.46으로 0.61% 감소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따른 금리인상 가능성을 우려한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국내 각 증권사들은 앞으로 물가 상승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혹시나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김성환 연구원은 한 보고서를 통해 “시장의 물가 기대치가 높아지는 구간에서 업종별 수익률 차별화는 심화되기 때문에 종목 선택 시 이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융과 에너지를 주목했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구간에서 매출 전망이 상향조정 △생산자물가 상승 구간에서 마진이 크게 개선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은 업종 등의 이유를 꼽았다. 김 연구원은 “두 업종은 가파른 마진 전망 개선이 이뤄지며 과거의 패턴을 재현하고 있어 하반기 물가 우려가 재부상 하더라도 타 업종 대비 안정적 주가 흐름이 기대돼 비중확대 매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8일 기준 ‘코스피 은행업 지수’는 230.19으로 3일 이후 11.9% 올랐다. 운수창고업(12.18%)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연초와 비교해선 24.35%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배당 축소 권고 등으로 연초에 부진했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이다. 보험업도 3일 이후 3.4% 올랐다.
기술주 역시 인플레이션 시기에 유망한 종목으로 꼽혔다. 최근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부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2012~2020년에 ‘미국 10년물 기대인플레이션율(BEI)’가 상승한 연도의 연평균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테크 분야가 10.4%로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연평균 주가 상승률도 25.6%로 테크 분야가 압도적이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과거(2002~2011년) BEI 상승 국면에서는 경기민감 업종의 EPS 실적 개선 및 주가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컸지만 최근(2012~2020년)에는 테크 업종의 EPS 및 주가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자산인 금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이 비트코인 가상화폐에서 금으로 전환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8일 기준 금 시세(99.99K)는 3일 이후 5.8% 오른 6만8020원을 기록했다. 26일에는 6만8540원으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해 8월 7만8440원까지 올랐다가 3월 31일 6만1400원까지 떨어진 바 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지부진하던 금 가격이 4월 이후 반등하더니 5월부터 추세적 상승을 시도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금리 흐름과 달러 약세가 금 가격 상승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중혁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효율적인 헤지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지난해 4분기부터 비트코인 신탁으로 자금 유입이 빠르게 전개됐다”면서 “이달 들어 비트코인 신탁의 자금이 급격히 줄어드는 가운데 금 상품으로는 자금 유입이 늘어났다. 최근 비트코인으로 옮겨갔던 인플레이션 헤지용 금 투자 수요가 돌아오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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