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풀린 돈, 인플레이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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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물가 급등 부추기는 정부

조선 말, 당백전으로 인한 화폐가치 붕괴로 경제 치명타
10년 만에 최고치 찍은 한국 물가… 추경 확대 그만둬야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2-10 00:02:45

조선은 개국하면서 유교, 특히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가르침을 국시로 삼았다.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고대 중국에서 상나라를 무너뜨린 무왕이 세운 주나라였다. 주나라에서는 토지제도로 정전제가 시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전제란 토지를 ‘우물 정(井)’자로 구분해 가운데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해서 세금을 납부하고, 나머지 8구역에서 나오는 작물은 각 구역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가지도록 하는 것으로 세금제도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사상기반에 전조인 고려시절 원나라가 발행한 지폐인 ‘교초’의 가치 하락으로 일종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조선의 사대부들은 ‘사농공상’에 입각한 중농주의를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상업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훈구파와는 달리 조선 건국에 반대하며 향촌 사회에서 세력을 형성한 사림은 중국의 여씨향약을 참고한 향촌 사회의 자치규약인 ‘향약(鄕約)’을 보급시키며 전통 농촌사회 지배질서 확립에 힘썼다. 향약은 임진·병자 양란으로 혼란한 중기 이후 사림이 지방에서 농민·노비 등 하층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앙법 등 농사법의 개량과 감자와 고구마 등 식용 작물의 유입으로 인해 발생한 잉여 농산물은 상업의 발전과 이어지며 ‘농자천하지대본’으로 표현되는 조선 사회의 기반을 서서히 약화시켰다. 여기에 정조대왕 사후 60여년에 걸친 세도 정치는 왕권과 중앙의 통제력을 현저히 무너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역사상 두 번째, 살아 있는 첫 번째 대원군(大院君)이 된 흥선군 이하응은 왕권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시책을 펼쳤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경복궁 중건이다. 당시 대원군은 임진왜란 당시 불탄 경복궁을 270여년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각종 부패로 얼룩진 당시 조정에는 세금이 제대로 징수되지 않아 재정이 매우 궁핍했다. 그러자 대원군은 경복궁 공사비 마련을 위해 ‘원납전’이란 기부금을 징수했고, 이도 모자라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했다.

당백전은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보다 액면가는 100배에 달한 반면 실제 구리의 함량은 6배 정도에 불과했다. 8개월 동안 1600만냥이 주조·유통됐는데 이는 대원군이 원납전으로 거둬들인 돈이 750만냥이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과도한 고액권의 남발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빈사상태였던 조선의 경제는 위조 당백전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그야말로 치명타를 맞았다. 푼돈을 말하는 ‘땡전 한 푼’에 쓰이는 ‘땡전’의 어원이 당백전일 정도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돈을 풀면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6% 오르면서 2012년 이후 10년 만에 4개월 연속 3%를 넘었다. 물가 오름세는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북해산 브렌트유에 이어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90달러를 넘기며 국제 유가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영향으로 석유류는 평균 15% 이상, 축산물도 10% 넘게 올랐다. 농산물·석유류를 뺀 근원물가도 지난달 3.0% 올라 2012년 1월(3.1%)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였다. 체감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4.1% 올랐다.

다른 나라도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3일(현지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8개 회원국의 지난해 12월 물가 상승률이 6.6%로 1991년 7월 이후 30여년 만에 최고치라고 밝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1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했던 2011년 이후 가장 높았다.

통화량도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화량은 2020년 평잔과 비교해 불과 1년도 안된 지난해 11월에 520조원(16.9%) 가까이 급증했다. 이처람 단기간에 시중에 풀린 돈이 급증하면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져 물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 정부는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제출했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민주당은 최소 21조원의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이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곳간지기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대하고 있다.

삼정의 문란으로 망조가 들어가던 조선과 10대 경제대국에 꼽히는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건 너무 가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고, 경기가 정상화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피해는 일반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치권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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