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한 수집가가 마련한 전시회에 다녀왔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나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같은 세기의 걸작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휴대폰으로도 마음껏 찍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월28일부터 4개월간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 특별전에 다녀온 소감은 한마디로 흥겨웠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듯싶다.
조선시대 실물 백자 달항아리와 함께 김환기의 작품 ‘달과 항아리’를 나란히 전시해놓은 공간에선 한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책가도(冊架圖) 병풍’이라는 조선시대 작품은 책장에 책과 다양한 물건이 진열된 모습을 그려 놓은 병풍으로, 18세기 조선시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이 잘 표현돼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게다가 이 병풍 속 그림 내용을 소개하는 디지털 화면이 바로 옆에 비치돼 있어 몇 번의 터치만으로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IT강국의 자부심과 함께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특별전이어서 그런지 사진은 물론 동영상 촬영도 허용했을 뿐 아니라 전시장 곳곳에 체험공간을 만들어 작품의 질감을 직접 만지고 느껴볼 수 있도록 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은 별도의 공간에 따로 전시하며 바닥에 수련 그림을 투사한 영상을 움직이도록 해 미디어아트의 최신 트렌드도 체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3D애니메이션이 곁들인 디지털 인왕제색도를 감상하다 보면 잠시나마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시각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가끔 찾아보는 인왕산이 조선시대 유명화가가 바라보던 그 산과 다를 바 없다는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과 감회에 젖기도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수장고에만 머물던 과거의 유물들이 디지털 세상을 만나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그리고 혼합현실(MR) 등 다양한 IT기술과 접목돼 수백년의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현재와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겨운 경험이었다.
더욱이 정선은 중국의 화보를 보고 모방하던 관념적 산수화라는 기존 화풍을 과감히 탈피해 우리나라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독창적인 진경 산수화법을 완성한 국보급 화가가 아니던가.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은 지난해 4월28일 고인의 수집품 가운데 문화유산 2만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근현대 미술품 1488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건희 회장 사후 1년 만에 내린 이 같은 결정 덕분에 개인의 사유물인 ‘가보’가 국가적 공유물인 ‘국보’로 거듭나게 됐다. 익명을 의미하는 ‘어느 수집가’라는 초대전의 제목은 ‘이건희 특별전’이라는 취지를 더욱 빛나게 하는 추임새로 여겨졌다.
같은 그림이라도 삼성과 관련이 있는 호암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것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에 내걸리는 것은 격(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삼성이나 오너 일가의 소유물에서 대한민국 즉 국민의 소장품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건희 특별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갑자기 ‘어느 수집가의 아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자마자 제일 먼저 경기도 평택의 삼성반도체공장을 방문해 만난 사람도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박3일간의 방한기간중 열정적인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바이든 대통령 특유의 실용적인 세일즈외교는 단연 돋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거액의 대미투자 계획을 발표한 삼성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방한 첫날 삼성반도체 평택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마지막 날에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단독회동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기차 등 전략물자공급망 등에 관해 논의하며 정 회장으로부터 통큰 대미투자 약속을 받아 내기도 했다.
바이든은 이번 방한을 통해 삼성, 현대차 등 유수의 한국기업으로부터 50조원이 훨씬 넘는 대규모 대미투자 약속을 이끌어 냈으니 가시적인 성과를 확실히 챙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재계에서는 요즘도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일부 기업인에 대한 사면·복권이 화두가 되고 있다.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긴급한 경제상황이 닥칠 때마다 대한상의나 전경련 등이 나서 이들에 대해 선처를 요구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2일 경제단체장들과 첫 대화의 자리를 갖는다고 하니 규제 완화에 대한 각종 이슈 외에 사면복권도 현안의 하나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6·1 지방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만큼 이번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모든 공직자들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 가며 국민의 흥을 북돋워 주는 촉진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4
감동이에요1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