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영업자가 은행 등 전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무려 10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친 2년 사이 자영업자들이 새로 받은 대출만 300조원에 육박하는것으로 조사됐다. 빚을 얻어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자영업자들은 엔데믹과 리오프닝(경기 재개)으로 이전의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물가가 폭등해 경기침체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매출이 좀처럼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는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로 올해까지는 채무 상환 위험이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내년부터 정부의 금융지원마저 종료되면 영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대출부실 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것이 바로 한은의 경고다.
자영업자 숨은 부실… 내년이 문제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윤창현 의원이 올 3월 말 주최한 ‘국내 금융시장 3대 리스크, 새 정부의 대응전략은’ 세미나에서 “코로나19 이후 가계대출 연체율이 금융지원·유예 및 완화조치 연장 등에 힘입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하지만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고 금융지원·완화 조치 종료시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부실위험이 현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4차례 연장, 종료는 9월 말로 미뤄진 상황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 관계자는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만기·이자상환 유예 등의 정부 금융지원 조치로 벌어진 착시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받는 대출 건수는 70만4000건으로 금액 규모는 133조4000억원에 달한다.
신 센터장은 “4차례에 걸친 연장으로 이들에 대한 총 금융지원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이와 관련된 부실 위험도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자영업자 금융지원 규모는 올 1월 말 기준 총 291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소상공인은 코로나19로 영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소상공인 매출액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대비 5% 감소한 반면, 영업이익률은 4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은 월 평균 158만원 수준이었고 이자 비용은 76만원으로 조사됐다.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조짐도 본격화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융부채를 보유한 자영업가구 중 적자가구는 약 78만 가구로 추정된다. 적자가구는 자영업가구의 소득에서 필수지출과 대출원리금상환액을 차감한 값이 마이너스인 가구를 의미한다.
이들의 금융부채는 177조원 규모로 전체 자영업 가구의 16.7%를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27만 가구는 금융 자산으로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이 1년 미만인 ‘유동성 위험 가구’로 분류된다. 정기예금 등 모아둔 돈을 다 쓰더라도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의미다.
또한 자영업자 대출자 가운데 과반 이상이 다중채무자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기준 다중채무 자영업자 수는 148만명으로 전체 자영업자 차주 중 56.5%를 차지했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같은 기간 630조5000억원으로 전체 자영업 대출의 69.3%에 달했다.
1000兆 빚에 깔린 자영업자
지난달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는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960조7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의 684조9000억원보다 275조8000억원이 불어 40.3%나 치솟았다.
대출의 질도 악화됐다. 같은 기간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자를 뜻하는 취약차주가 보유한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88조8000억원으로 이 역시 2019년 말의 68조원 대비 20조8000억원이 불어 30.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차주 수도 31만6000명으로 전분기 28만1000명 보다 3만5000명이나 늘어났다.
한은은 자영업자 채무 상환 위험이 올해까지는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내년부터 자영업자들이 빚을 제때 갚지 못한 채무 상환 위험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9월로 예정된 정부의 대출 만기연장·이자 상황 유예 등 금융지원이 종료를 앞두고 있고 대출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게 지급한 최소 600만원의 손실보전금 효과까지 사라지면 저소득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빚에 허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대출금리가 매년 0.5%p 오르고 정부의 금융지원과 손실보전금이 없는 상황을 가정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저소득(하위 30%) 자영업 가구의 DSR은 34.5%에서 내년 48.1%로 13.6%p나 올랐다. 반면 고소득(상위 30%) 가구 DSR 상승폭은 4.9%p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올해는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되더라도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에 따른 매출 회복, 손실보전금 지급 효과에 힘입어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위험은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금융지원 종료에 따른 영향이 본격화하는 데다 손실보전금 지급 효과도 끝남에 따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채무 상환 위험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금융지원과 손실보전금이 없어지는 ‘복합 충격’ 발생 시 자영업 가구의 DSR는 올해 38.5%, 내년 46.0%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소득분위별로 살펴보면 △저소득(하위 30%) 가구 2022년 34.5%→2023년 48.1% △중소득(40~70%) 가구 2022년 38.6%→2023년 47.8% △고소득(상위 30%) 가구 2022년 39.5%→2023년 44.4% 등이다
한은은 또한 DSR 상승 등 자영업자 채무 상환 위험이 증가하면 비은행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2금융권에서 취약차주 비중이 높고 담보·보증 대출 비중이 낮아 자영업자 대출 채무 상환 위험 증가 시 이들 업권의 대출부터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금융지원 조치를 단계적으로 종료하되, 채무 상환능력이 떨어진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채무 재조정 △폐업 지원 △사업 전환 유도 프로그램 등을 통한 출구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업황 개선이 늦어져 매출이 회복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해선 이자 유예만 종료하는 식의 유연한 방법을 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울러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금융지원 조치 종료의 영향이 본격화하는 경우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이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 방향을 유동성 지원 중심에서 채무이행 지원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취약차주의 경우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비은행금융기관들의 대출 비중이 높은 만큼, 2금융권에 대해 자영업자 대출 취급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부실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대손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추가 적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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